(33)제주 소주방 여주인 피살사건…범인은 ‘단골? 뜨내기?’

2016.06.06 13:01

그림|김상민 화백

그림|김상민 화백

평화로움마저 감도는 화창한 날씨의 일요일 오후, 정적을 깨는 한통의 전화가 제주 경찰에 접수된다.

2006년 9월3일 오후 2시40분쯤.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한 소주방에서 50대 여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신고였다. 이 여인은 다름 아닌 소주방의 주인이었던 한모씨(52)였다. 전날부터 가게 문이 닫힌 채 연락이 닿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긴 동생이 잠긴 문을 따 들어가 보니 한씨가 쓰러진 채 숨져 있었던 것이다.

일요일 오후, 시신으로 발견된 여인은 몸에 난 상처로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고 있었다. 여인의 몸 여러 군데 끝이 부드러운 둥근 무엇인가로 콕콕 찔린 듯한 상처가 있었다. 혈흔도 발견됐다. 타살이 의심될수 밖에 없었다.

여주인 피살사건이 발생한 소주방 내 당시 현장 상황을 재연한 모습

여주인 피살사건이 발생한 소주방 내 당시 현장 상황을 재연한 모습

2006년 제주항 인근에 위치한 소주방에서 여주인 피살사건이 발생했다. 현재 정비사업이 진행중이지만 당시에는 인적과 차량이 드물고 CCTV조차 설치되지 않아 사건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2006년 제주항 인근에 위치한 소주방에서 여주인 피살사건이 발생했다. 현재 정비사업이 진행중이지만 당시에는 인적과 차량이 드물고 CCTV조차 설치되지 않아 사건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 범인, 소주방을 드나들던 단골일까

한씨의 소주방은 제주시 건입동 제주항 인근에 위치했다. 항 주변은 본디 뜨내기들이 밀물처럼 밀려들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곳이다. 반면 제주항이 있는 건입동은 오고가는 외부인만큼이나 오랜 기간 뿌리를 내린 채 살고 있는 이들이 많은 제주의 오랜 주거지역이기도 하다.

항을 오고가는 뜨내기에 의한 살인일수도, 혹은 소주방을 자주 드나들던 단골에 의한 범죄일 수도 있었다.

경찰은 범인은 피해자와 잘 아는 면식범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에 착수했다. 한씨의 소주방을 자주 출입했던 단골이나 한씨와 친분이 있는 주변인물일 것으로 본 것이다. 이유는 당시 현장 상황 때문이었다.

한씨가 발견된 곳은 주방으로, 하의가 벗겨진 채 엎드린 자세로 발견됐다. 다만 한씨의 몸에는 얇은 이불이 덮여있었다. 넓지 않은 소주방 홀 내 한 탁자에는 술잔과 술병, 안주 등 누군가 술을 먹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술잔과 안주의 배치는 범인이 누군가와 마주앉아 술을 먹었음을 의미했다.

범죄를 저지른 후 범인은 가게 안 전기 스위치를 끈 채 사라졌다. 사라지는 순간, 출입문을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다. 출입문을 잠그기 위해서는 밖에서 열쇠를 이용해야 했다.

소주방 건물 위층에는 한씨의 가족이 살고 있었다. 이들이 비명소리를 듣지 못한 점도 면식범에 의한 살인이라는 추정에 무게를 더했다. 사라진 물건은 14K 팔찌와 목걸이 등 귀금속이다.

경찰은 이러한 정황을 감안할 때 범인이 피해자와 잘 아는 사이, 또는 소주방을 자주 출입했던 인물일 것으로 추정하고 수사의 초점을 맞췄다.

부검 결과 한씨의 사인은 누군가에 의해 목 졸려 숨진 질식사였다. 몸 여러 군데 찔린 듯한 외상은 직접적인 사인이 아니었다. 금품을 노린 협박과정에서 생긴 상처일수도 있다는 추측만 나온다. 사망 시각 역시 전날 새벽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시각은 나오지 않았다.

■ 사건은 ‘미궁’으로

경찰의 수사는 활기를 띠는 듯 했다. 경찰은 숨진 한씨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분석해 소주방을 자주 드나든 단골 고객의 명단과 친분이 있던 주변인물에 대한 정보를 추려냈다.

경찰은 확보한 리스트를 통해 이들의 당일 행적을 조사했다. 소주방 내 탁자와 탁자 위 컵, 술병 등에서 지문을 검출하는 작업도 진행됐다.

하지만 결과는 다소 허망했다. 결정적인 물증이 될 것이라 여겼던 탁자 내 지문이 감정 불능이라는 판정이 나왔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나온 지문은 불특정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술집인 만큼 용의자의 것이라고 단정 짓기에 무리라는 의견도 나왔다.

거짓말 탐지기도 동원됐다. 행적이 의심스러운 인물에 대해 거짓말 탐지기를 들이댔지만 ‘죽이지 않았다’는 진실 반응이 잇따랐다. 경찰은 당시 한씨의 주변인물 70여명에 대해 사건 당일 행적을 조사했지만 확실한 물증과 사건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빨려 들어갔다.

제주지방경찰청이 올해 중요미제사건전담수사팀을 신설해 2006년 발생했지만 해결하지 못했던 건입동 소주방 여주인 피살사건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했다.

제주지방경찰청이 올해 중요미제사건전담수사팀을 신설해 2006년 발생했지만 해결하지 못했던 건입동 소주방 여주인 피살사건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했다.

■ 유사한 범죄 발생, 하지만…

20여일이 지나도록 진척을 보이지 않던 수사는 같은 달 25일 인근에서 또 다른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9월25일 새벽 건입동 소주방 살인사건이 발생한 곳과 멀지 않은 삼도동에서 한 카페 여주인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카페 여주인 정모씨(48)를 목 졸라 살해하고 10만원권 수표 3매와 현금 등을 훔친 혐의로 ㄱ씨(당시 42)를 붙잡았다.

범행 현장에서 ㄱ씨의 체모가 발견되고 피해자의 손톱에서 ㄱ씨의 유전자형이 검출된 점, ㄱ씨가 피해자의 수표 및 현금을 소지하고 있다가 사용한 점, ㄱ씨의 몸에 있는 상처 등이 증거였다.

경찰은 당시 정씨 살인사건을 수사하며 소주방 피살사건과 여러 유사점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ㄱ씨의 연쇄살인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확대했다.

경찰은 두 사건 모두 새벽시간대 여성이 혼자 운영하는 술집에서 발생한 점, 피살된 여성들이 목 졸려 숨진 점, 범행 후 출입문을 잠그고 전기 스위치를 끄고 달아난 점에 주목했다. 살인 후 금품을 훔친 점도 같았다.

하지만 ㄱ씨를 소주방 피살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할 만한 뚜렷한 물증은 없었다.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도 죽이지 않았다는 진실 반응이 나왔다. 이후 ㄱ씨는 정씨 살인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2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다.

경찰은 이후 제주항을 오가는 뜨내기로 범위를 확대하고 수사에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소주방이 있던 제주항 인근은 제주의 대표적인 구도심 지역으로, 최근 재개발 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2006년 당시만 해도 저녁이 되면 인적과 차량이 드물고 CCTV 역시 거의 설치되지 않은 지역이었다. 제주경찰 관계자는 “물증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라고 말했다.

제주 소주방 50대 여주인 피살사건 관련 제보는 제주지방경찰청 중요미제사건전담수사팀(064-798-3370)으로 하면 된다.

다음 미제사건은 광양 중마동 주차장 피살사건입니다.

▶[미제사건, 시그널을 찾아라](32)“천변따라 영영 가버린 내딸”…나주간호사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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