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제주 어린이집 보육교사 피살사건

2016.07.03 10:52

그림|김상민 화백

그림|김상민 화백

제주시 애월읍은 제주에서 가장 번화한 도심과 20~30여분 거리에 불과하지만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모습이다. 밭과 목장, 오름과 숲이 대부분으로, 한적함마저 느낄 수 있다. 2009년 2월8일 오후 1시50분쯤 마을주민 ㄱ씨(당시 67세)는 평소처럼 산책에 나섰다. 2월이라 쌀쌀한 감이 있었지만 산책하기에는 무리 없는 날씨였다. 고내오름을 끼고 편도 1차로 포장된 길을 걷던 중 그의 시선에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가 잡혔다. 수풀에 가려져 있지만 고내오름 옆 농업용 배수로에서 길 다란 무엇인가가 있는 듯 했다. ‘사람 모양인 것 같은데, 마네킹인가?’ 뒷덜미가 서늘해지고 온몸의 털이 쭈뼛하게 서는 기분이었다. 이 곳은 인적이 없다고 하지만 도로변이었다. 김씨는 ‘설마…’ 하는 마음에 주변에 있던 마을 주민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마을주민 ㄴ씨는 최근 20대 여성이 실종됐다는 뉴스를 접했던 것을 기억했고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일했던 이모씨(27)가 실종 8일 만에 애월읍 고내오름 옆 농업용 배수로에서 발견됐다. 웃음이 고왔던 20대 아가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자 평화로웠던 시골 마을은 공포와 슬픔으로 발칵 뒤집혔다.

이씨의 시신이 발견된 제주시 애월읍 고내오름 옆의 농업용 배수로.

이씨의 시신이 발견된 제주시 애월읍 고내오름 옆의 농업용 배수로.

이씨의 시신이 발견된 제주시 애월읍 고내오름 옆 농업용 배수로. 왕복2차선의 도로변이지만 주변은 밭이나 오름이 대부분이어 인적이 드물고 교통량도 적다.

이씨의 시신이 발견된 제주시 애월읍 고내오름 옆 농업용 배수로. 왕복2차선의 도로변이지만 주변은 밭이나 오름이 대부분이어 인적이 드물고 교통량도 적다.

■실종 8일째 발견된 주검

이씨는 2월1일 새벽 3시쯤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남자친구 집에서 나온 뒤 실종됐다. 휴대전화 신호는 남자친구와 헤어져 집에서 나온 뒤 4시4분쯤 제주시 애월읍 광령초등학교 부근에 있는 기지국에서 끊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의 주검이 발견된 애월읍 고내오름은 이씨의 집에서 4㎞, 휴대전화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애월읍 광령초등학교 인근에서 12㎞ 떨어진 지점이다. 왕복2차선 아스팔트 도로 옆이지만 농촌 마을인 탓에 인적이 드물고 잡풀이 우거져 있는 곳이다. 가로등도 많지 않고 CCTV도 없었다.

발견 당시 이씨는 실종 당일 입고 나간 밤색 무스탕 점퍼만 입고 있었다. 하의는 벗겨진 채 엎드린 자세였다. 특별한 외상이나 타박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씨의 가방은 주검이 발견되기 이틀 전인 2월6일 제주시 아라동 도로변에 있는 밭에서 발견됐다. 아라동은 이씨의 주검이 발견된 하가리와는 30여㎞ 떨어진 지역이다. 가방에는 이씨의 휴대전화와 주민등록증 등 소지품이 대부분 고스란히 있었다.

제주 어린이집 보육교사 실종 위치도

제주 어린이집 보육교사 실종 위치도

■ 저항없이 차를 탔다면 범인은 택시기사?

경찰은 공개수사에 착수했지만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하면서 시작부터 난항을 이어갔다. 경찰은 이씨가 남자친구의 집에서 나온 뒤 곧바로 납치돼 피살된 것으로 봤다.

경찰은 이씨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와 휴대전화 신호가 끊긴 지점, 가방이 발견된 지점 등을 종합해 범인이 이동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로를 따라 수사에 착수했다.

시간과 거리를 감안했을 때 경찰은 범인이 제주시 용담동 주변에서 이씨를 차에 태우고 살해한 뒤 애월읍 하가리에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봤다. 이후 하가리에서 중산간 방향으로 이동해 광령리 인근에서 휴대전화를 끄고 30㎞거리에 있는 제주시 아라동으로 다시 이동해 가방을 버리고 도주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씨의 몸에 외상흔적이 없는 점을 볼 때 저항없이 차를 탔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경찰은 이씨가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고 이 과정에서 범죄가 일어난 것으로 봤다. 택시 기사들이 대거 용의선상에 올랐다.

■사망시점은?…혼선에 혼선

수사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부검 결과 이씨는 목 졸려 숨진 전형적인 질식사로 판명됐다. 특별한 외상이나 둔기, 강한 외력에 의한 타박상과 같은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뚜렷한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망시점을 둘러싼 혼선도 이어졌다. 부검의는 시신의 건조와 부패 상태, 체온, 사체의 피부반점 등을 고려할 때 시신이 사망한지 일주일이나 경과됐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부검의는 바로 사망한 게 아니라 발견 시점에서 1~2일 전에 숨졌을 것, 실종 이후에도 음식물이 계속 공급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반면 경찰은 부검의 의견에 난색을 표했다. 이씨의 시신이 부패가 거의 없었던 것은 당시 추운 날씨, 발견 장소가 춥고 햇볕이 거의 들지 않는 응달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손발에 묶였던 외상 흔적이 없던 점을 감안할 때 성인여성이 납치 감금돼 스스로 음식물을 먹었다는 설정 자체가 무리라는 것이다.

경찰은 2009년 발생한 20대 어린이집 보육교사 피살사건에 대한 다각도 수사를 벌였지만 사건 발생 8년째인 올해까지 미해결 사건으로 남았다.

경찰은 2009년 발생한 20대 어린이집 보육교사 피살사건에 대한 다각도 수사를 벌였지만 사건 발생 8년째인 올해까지 미해결 사건으로 남았다.

■ 사건은 미궁으로

경찰은 현장감식과 이동경로가 예상되는 곳에 설치된 CCTV 26대를 시간대별로 분석하며 광범위한 탐문수사를 벌였다.

이씨가 마지막으로 포착됐던 제주시 용담동과 휴대전화 신호가 끊긴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 일대, 이씨의 가방이 발견된 아라동 일대까지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다. 그 결과 택시기사를 중심으로 용의자를 여러명으로 압축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이 확보한 유전자와 일치하는 용의자는 없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에서 유전자를 확보한 상태였다. 사건 당일 범인의 이동경로로 예상되는 곳에 설치된 CCTV에 찍혀 행적이 의심되는 40대 택시기사에 대한 수사도 진행됐다.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거짓이라는 반응이 나오면서 수사가 탄력을 붙는 듯 했으나 경찰이 확보한 유전자와 일치하지 않았다. 경찰은 뚜렷한 물증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다시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갔고 20대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억울한 죽음은 사건 발생 8년째인 올해까지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제주 어린이집 보육교사 피살사건 관련 제보는 제주지방경찰청 중요미제사건전담수사팀(064-798-3370)으로 하면 된다.

다음 미제사건은 수원가출소녀 살인사건입니다.

▶[미제사건, 시그널을 찾아라](36) '예비 간호사' 목포여대생 살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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