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취업성공패키지’ 포기하고 ‘청년수당’ 선택한 이유

2016.08.11 08:52

청년단체 소속 청년들이 지난 3일 사회보장위원회가 입주해 있는 국민연금 서울 충정로사옥 앞에서 서울시의 청년수당 지급에 대한 복지부의 시정명령 결정을 규탄하고 있다. 이날 서울시는 2831명의 청년에게 첫 청년수당을 지급했다. /강윤중 기자

청년단체 소속 청년들이 지난 3일 사회보장위원회가 입주해 있는 국민연금 서울 충정로사옥 앞에서 서울시의 청년수당 지급에 대한 복지부의 시정명령 결정을 규탄하고 있다. 이날 서울시는 2831명의 청년에게 첫 청년수당을 지급했다. /강윤중 기자

“저는 무소속 청년입니다. 졸업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무소속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저는 사회 구성원이 아닌 그저 그림자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여자인 데다가 나이가 많은 구직자는 취업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왔습니다. 취업성공패키지 프로그램도 참가해보았지만 제가 원하는 바를 얻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서울시에서 처음 시행하는 청년활동지원사업은 기존의 프로그램과는 달리 구직자가 주체성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는 생각에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8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기자들을 만나 서울시의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을 비판하며 “모든 지방자치단체장이 현금을 주는 쪽으로 공약하게 되면 청년 일자리 정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국가가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취업성공패키지와 일학습병행제는 평균이 1.7년, 장기훈련은 4년까지 이르는 지원 서비스”라며 “한 사람에게 1년에 1000만원씩 비용이 들어가는데, 청년수당을 받기 위해 이를 취소한다면 진짜 큰 기회의 박탈”이라고도 했습니다. 노동부는 청년수당을 받기 위해 취업성공패키지 신청을 취소한 청년이 38명이라고 밝혔습니다. 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하는 경우 청년수당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취업성공패키지는 청년을 포함한 취업취약계층에 ‘진단·경로설정(상담)→의욕·능력증진(직업훈련·창업교육)→취업알선’ 등 3단계로 나눠 지원하는 제도로, 1단계 참여 시 최대 20만원, 2단계 참여 시 최장 6개월 간 최대 월 40만원의 수당도 나옵니다. 청년수당은 서울에 1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 만 19~29세 가운데 주당 근무시간이 30시간 미만인 저소득층 청년 3000명에게 매달 50만원씩 최장 6개월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그렇다면 청년들이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시행하는 취업성공패키지를 포기한 이유가 뭘까요? 취업성공패키지에 신청·참여한 적이 있는 청년수당 신청자들의 활동계획서에 정부 정책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앞서의 ‘무소속 청년’에게서 알 수 있듯이 청년수당은 구직청년이 취·창업에 도움이 되는 분야에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취업성공패키지는 노동부 위탁기관에서만 교육·훈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원하는 교육이 없어 지원할 수가 없다”, “특화된 훈련과정이 부족하고, 참여자 수 쿼터가 있어 훈련 가능 여부가 불분명하다”, “면접을 보면서 어학실력 한계에 부딪혔지만 (외국어학원은 지원하지 않아) 독학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소득이 한 푼이라도 있으면 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년들은 참여를 아예 포기했습니다. 반면 청년수당은 주당 근무시간이 30시간 미만이면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풀타임으로 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상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한 청년은 “집에서 도움을 주기 어려운 형편이라 취업성공패키지에 지원하기 어려웠다”며 “아르바이트로 버티다가 지인의 추천으로 청년수당을 신청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졸업 후 생계를 위해 영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니 자격요건이 되지 않았다”, “참여하려고 했지만 개인 비용이 든다는 걸 알고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청년들도 있었습니다. 취업성공패키지는 훈련 종류에 따라 10~30%의 자기부담비용이 발생합니다.

지난해 초 취업성공패키지에 4개월 간 참여해 코딩 수업을 들었던 이모씨(23)는 이 사업의 여러 문제점을 지적해 줬습니다. 초보자와 전공자가 함께 한 수업을 듣다보니 강의 수준이 오락가락했고, 초보자가 4개월 만에 코딩을 익히는 건 무리였다고 합니다. 이씨는 “수업 중에 강의실 한쪽에서 공사가 진행되는 등 환경도 좋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또 “취업 준비를 위해 학원만 다닌 게 아니라 스터디도 했는데, 이런 건 전혀 구직활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소득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근로계약서를 쓰지 못하고 밤에 술집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수당만 가지고는 월세 내기도 버겁기 때문에 계약서 없이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하는 걸 많이 봤다”며 “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하고 있는 걸 알면 가게 주인들이 이를 악용해 부당하게 일을 시킨다”고 전했습니다. 이씨는 교육 기간이 끝난 뒤에도 결국 취업하지 못했습니다.

정부와 민간수탁기관들이 취업률에 집착해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한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2014년 이 사업으로 취업에 성공한 청년 4만3372명 중 1년 이상 고용을 유지한 비율은 45.5%로 절반이 못 됐고, 월 평균 150만원 이상 임금을 받은 청년은 46.7%에 불과했습니다. 올해 국회예산정책처는 노동부가 제출한 추가경정예산 사업 4개 중 취업성공패키지와 실업자능력개발 사업을 사업 집행률과 성과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감액조정 대상으로 분류했습니다.

취업성공패키지에 직접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지만, 정부의 청년고용정책이 청년에 직접 지원하기보다 사업주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주로 이뤄지다보니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청년에게 직접 지급하는 취업장려수당의 고용 효과는 1억원 당 59.9명이었지만, 사업주를 지원하는 신규고용촉진장려금은 13.9명으로, 4배 넘는 차이를 보였습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국 만 18~29세 7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정부 취업지원정책 중 취업성공패키지의 만족도(10점 만점에 6.11점)가 가장 낮았습니다.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39%에 불과했습니다. 불만족한 이유(복수응답)로는 취업능력 향상미흡(48.6%), 교육·훈련과정의 단순함(43.2%), 훈련기관 선택제약(40.5%) 등을 꼽았고, 개선사항으로는 교육·훈련기관의 선택 범위 다양화(42.9%)가 가장 많았습니다. 청년들은 취업에 가장 중요한 스펙으로 취업성공패키지에서 지원하지 않는 외국어능력(30.4%)을 선택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8조가 넘는 돈을 청년 일자리 예산으로 투입했고 올해도 2조1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중앙정부의 정책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지난 6월 역대 최고치 10.3%를 기록했고, 전체 실업률의 세배에 이른다”며 “다른 시도, 다른 방안이 필요하다. 서울시의 청년수당도 그런 취지”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존의 공급자 중심 정책에서 수요자 중심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청년들의 필요에서 설계된 정책이 청년수당”이라고 했습니다. 청년수당을 받는다고 청년들의 삶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현재의 청년정책은 큰 틀의 변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맞서 싸울 것이 아니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힘겹게 살아가는 청년들을 위해 고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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