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다큐
2018.04.13 17:22 입력 2018.04.13 18:13 수정 강윤중 기자

‘생존자’라는 말은 아프고 무겁다. 누군가의 죽음을 전제하고 있어서다. 장애진씨(22)의 이름 앞에는 ‘생존자’ ‘생존학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애진씨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수학여행 중이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중 한 명이다. 어쩌면 평생 짊어지고 살아갈 ‘세월호 생존학생’이라는 무게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부담스럽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장애진씨는 오른 손목에 노란리본과 20140416을 문신으로 새겼다. ‘그날’은 살아남은 이들에게 지워지지도, 지울 수도 없는 문신이다.  /강윤중 기자

장애진씨는 오른 손목에 노란리본과 20140416을 문신으로 새겼다. ‘그날’은 살아남은 이들에게 지워지지도, 지울 수도 없는 문신이다. /강윤중 기자

애진씨는 참사 이후 유치원 교사의 꿈을 접고 응급구조사가 되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응급구조과(동남보건대)에 진학했다. 현재 3학년인 그는 최근 안산소방서 월피119안전센터 구급팀에서 현장실습교육을 받았다.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는 중이다. “그날의 나와 친구들처럼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고 싶어요. 세월호를 기억하는 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안산 단원고 생존학생 장애진씨(22)가 현장 실습교육을 받고 있는 소방서 구급팀의 유니폼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대학 응급구조과에 재학중인 그는 참사 이후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고 싶다”며 응급구조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강윤중 기자

세월호 참사 당시 안산 단원고 생존학생 장애진씨(22)가 현장 실습교육을 받고 있는 소방서 구급팀의 유니폼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대학 응급구조과에 재학중인 그는 참사 이후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고 싶다”며 응급구조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강윤중 기자

지난 5일 안산에서 만난 장애진씨는 단원고 들머리 상가건물에 마련된 청소년 쉼터인 ‘쉼표’로 향했다. 세월호 생존학생 모임 ‘메모리아’의 활동이 있는 날이다. ‘메모리아’는 세월호의 기억과 진상규명을 위해 할 수 있는 일과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모임이다. 지난해 “이제 당사자인 우리가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애진씨의 제안으로 결성됐다. 대학 3학년인 세 명의 친구들이 ‘세월호 참사 4주기’ 행사 때 시민들에게 나눠줄 엽서, 스티커, 리본 등 기억물품을 포장했다. 각 대학에 붙일 대자보 형식의 모임 소개글을 쓰느라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학교수업과 과제, ‘미투’ 등 또래의 얘기로 밤이 깊어갔다.

‘메모리아’ 모임에서 애진씨와 친구들이 세월호 4주기 행사 때 시민들에게 나눠줄 엽서, 스티커, 팔찌 등 기억물품을 포장하고 있다. ‘메모리아’는 세월호 생존학생들의 모임이다. /강윤중 기자

‘메모리아’ 모임에서 애진씨와 친구들이 세월호 4주기 행사 때 시민들에게 나눠줄 엽서, 스티커, 팔찌 등 기억물품을 포장하고 있다. ‘메모리아’는 세월호 생존학생들의 모임이다. /강윤중 기자

세 명의 친구들이 쉼터에 모여 각 대학에 붙일 대자보 형식의 ‘메모리아’ 소개글을 논의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세 명의 친구들이 쉼터에 모여 각 대학에 붙일 대자보 형식의 ‘메모리아’ 소개글을 논의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단원고로 이어지는 길가에는 벚꽃이 한창이었다. 쉼터를 나선 애진씨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벚꽃이 피면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나요. 애들이 좋아했어요.” 4월이라는 달력 숫자보다 봄꽃으로 그리움은 더 짙어진다. “살아있으면 대학생이 돼서 지금쯤 벚꽃 앞에서 사진도 찍고 그랬을 텐데….” 말을 하는 동안 그런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듯했다. 방금까지 밝고 쾌활하던 표정 위에 아픔이 지나갔다.

안산 단원고로 이어지는 길가에는 벚꽃이 만발했다. 애진씨는 “벚꽃이 피면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강윤중 기자

안산 단원고로 이어지는 길가에는 벚꽃이 만발했다. 애진씨는 “벚꽃이 피면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강윤중 기자

세월호 참사 이후 네 번째 맞는 봄이다. 애진씨는 삶의 순간마다 문득 찾아드는 고통과 상처, 그리움과 울음을 마주하며 살았다. 그 세월동안 성숙하고 단단해졌다. “여전히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저도 힘들 때가 있어요.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없잖아요. 우리의 일이고 친구들의 일입니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고 추모공원을 만드는데 힘쓸 거예요.” 그리고 덧붙였다. “언젠가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날 부끄럽지 않아야 되니까요.”

애진씨가 단짝 친구인 고(故) 김민정양의 단원고4·16기억교실 책상 위에 절절한 그리움을 적어 놓았다. /강윤중 기자

애진씨가 단짝 친구인 고(故) 김민정양의 단원고4·16기억교실 책상 위에 절절한 그리움을 적어 놓았다. /강윤중 기자

단원고4·16기억교실 2학년1반에 걸린 2014년 4월 달력에 ‘수학여행’이 표시돼 있다. /강윤중 기자

단원고4·16기억교실 2학년1반에 걸린 2014년 4월 달력에 ‘수학여행’이 표시돼 있다.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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