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슬림’ 같은 표현서 편견 드러나···“우린 무슬림 이전에 사람”

2018.07.01 08:37 입력 2018.07.05 14:36 수정
백철 기자

6월 18일, 제주에 입국한 예멘인들이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긴급 구호물품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6월 18일, 제주에 입국한 예멘인들이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긴급 구호물품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4년 전부터 시작한 예멘 내전이 올해 들어 외국 군대의 개입 등으로 인해 격화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에 의하면 예멘 출신 난민은 전세계에 28만명 이상 존재한다. 이들 대부분은 요르단, 이집트, 수단 등 인근 국가에 들어갔지만 일부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올해 제주도에 입국한 540여명의 예멘 난민들이 그들이다.

예멘 난민들이 한국에 온 건 2016년부터다. 이미 지난해까지 49명의 난민이 한국에 입국해 난민신청 절차를 거치고 있다. 6월 27일 저녁, 인천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아흐메드(가명·30)도 그 중 하나다. 아흐메드는 지난해 초 한국에 왔다. 이미 내전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이라 정상적인 방법으로 비행기를 타고 올 수는 없었다. 일단 예멘 서부의 수도 사나를 출발한 아흐메드는 남쪽의 아덴에 도착했다. 거기서 한 달에 두 번밖에 없다는 비행기를 타고 수단에 도착한 뒤, 에티오피아와 두바이를 거친 끝에야 아흐메드는 한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예멘에 살던 시절 아흐메드는 실험실에서 일하며 의사가 되는 과정을 밟고 있었다. 하지만 난민이 된 지금 그는 과거 중동 파견 건설노동자가 운영하는 카센터에서 하루종일 세차를 하고 있다.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고향에서 전쟁이 멈출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인들 불안심리는 이해”
아흐메드는 기자에게 “한국에서 제주 난민들을 쫓아내자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흐메드는 난민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반응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미 예멘에서도 그는 인종차별을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다.

예멘은 서남아시아 아라비아 반도의 남서부, 즉 사우디아라비아의 남쪽에 위치한 나라다. 예멘 남부의 아덴만을 넘어 아프리카 대륙으로 가면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등이 나온다. 아흐메드는 “아버지께 듣기로 우리 조상이 수단에서 왔다고 한다. 그래서 피부색이 다른 예멘 사람들보다도 검은 편이다. 예멘에서도 평소에 ‘아프리카 노예 같다’, ‘소말리아 사람이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예멘에서도 피부색 때문에 일자리 구하기에 어려움을 겪은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그는 예멘에서처럼 소수자로 살아가고 있다. 지하철을 타도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갑자기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앉기도 한다. 한국에 온 지 1년 4개월이 됐지만 난민심사 진행상황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그는 난민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아랍권 국가 난민 중 예멘, 시리아, 이집트 등 내전 혹은 정치적 격변이 있었던 나라 출신이 대부분을 이룬다. 그는 “저도 그렇고 난민들은 다 전쟁이 진행 중인 나라에서 온다. 한국도 예멘처럼 남북으로 갈라져 전쟁을 한 바 있고, 지금도 북한 때문에 남한에서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불안감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전쟁이 진행된 지역의 외국인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에도 외국의 전쟁이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도 그렇고 예멘 사람들은 대부분 무슬림이지만 테러리스트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 뉴스에서 이슬람 관련 소식은 주로 IS(이슬람국가)나 테러리스트밖에 없으니 불안해할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아흐메드는 한국사람들이 난민들은 돌아갈 곳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미 예멘은 두 그룹으로 갈려져 전쟁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난민들은 이미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병원과 학교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고 온 사람들이다. 특히 젊은 예멘 남성의 경우 예멘으로 돌아가면 원치 않는 전쟁에 강제로 끌려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때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예멘 난민을 추방하자’는 취지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에 찬성한 이도 20만명 가까이 됐다. 하지만 청와대는 부적절한 내용의 청원이라 여기고 이 글을 삭제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용을 조금 바꿔 ‘난민법을 폐지하자’ 등의 주장을 담은 청원이 새로 올라왔다. 6월 28일까지 난민법 폐지 청원에 서명한 이는 52만명을 넘겼다. 6월 30일에는 서울 동화면세점 앞에서 난민법을 폐지하자는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런 난민에 대한 반대 정서의 근원은 무엇일까. 책 <우리는 왜 이슬람을 혐오할까>의 저자 김동문 목사는 예멘 난민들에 날선 반응이 일어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첫째는 이들이 다름 아닌 무슬림이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한국에 유색인종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여론이 있기는 하나, 500명의 난민들이 비이슬람 국가 출신이었더라도 이렇게 청원을 올리고 반대집회를 열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예멘 청소년 난민들이 난민 신청을 돕고 있는 제주시 삼도동 천주교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를 방문한 후 임시숙소로 향하고 있다./정지윤기자

지난 21일 예멘 청소년 난민들이 난민 신청을 돕고 있는 제주시 삼도동 천주교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를 방문한 후 임시숙소로 향하고 있다./정지윤기자

이슬람 혐오세력의 반이슬람 이슈화
반난민 여론이 올라온 두 번째 이유는 한국인들이 예멘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이다. 아랍권 국가 중에서 사우디, 이란, 아랍에미리트 등 규모가 크고 부유한 국가는 한국에 잘 알려져 있다. 반면 예멘의 경우 아시아 대륙인지 아프리카 대륙인지, 아시아 대륙의 어디에 위치한 나라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잘 모르는 대상일수록 불안과 공포는 더 크게 마련이다.

김 목사가 이번 예멘 난민 사건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은 오랫동안 진행된 혐오세력의 반이슬람 이슈화다. 김 목사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보수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이슬람 혐오를 조장하려는 시도가 계속됐다고 분석했다. 김 목사가 대표적으로 꼽은 것이 2008년 <국민일보>와 사랑의교회가 공동 기획한 ‘이슬람이 오고 있다’ 특별연재 기획이다. 그는 노승숙 당시 <국민일보> 회장이 사랑의교회 행사에서 한 “이슬람권이 우리나라를 정복하겠다는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는 발언이 근거없는 괴담을 이용한 ‘이슬람 공포증’ 확산 시도의 한 예로 봤다. 이슬람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는 괴담은 10여년에 걸쳐 꾸준히 재생산됐다. 할랄 인증을 받은 음식을 구입하면 그 수익금이 IS의 테러자금으로 들어간다든지, 무슬림 인구가 한국 인구의 5%를 넘으면 한국이 이슬람화가 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최근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힘을 잃고 있는 극우세력이 이슬람 혐오를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극우세력은 종북 프레임, 성소수자 반대운동을 꾸준히 전개했으나 큰 지지는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슬람에 덧씌워진 테러집단 이미지를 활용한 이슬람 혐오 전략은 어느 정도 먹혀들어가는 모양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정치성향과 무관하게 대부분의 계층에서 예멘 난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입장이 높게 나타났다.

김 목사는 극우세력의 이슬람 혐오 활용의 예시로 ‘문슬림’이라는 표현을 들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과 무슬림의 합성어로, 문재인 지지층을 광신도로 비난하는 용어다. 김 목사는 “다른 표현도 많을텐데 굳이 ‘문슬림’이라는 표현이 나온 이유가 무엇이겠나. 문정인 특보가 무슬림이라는 소문은 왜 퍼졌겠나. 그만큼 무슬림 혐오정서가 광범위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9년 시리아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압둘 와합 헬프시리아 사무국장(34)은 무슬림 안에도 다양한 종파가 있고 신앙심의 정도도 제각각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한국인들이 무슬림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보니 무슬림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가 쉽게 확산될 수 있다고 보고 있었다.

9년 전 압둘 와합 사무국장은 유학생 신분으로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2012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면서 그는 사실상 난민이나 다를 바 없게 됐다. 그는 언론 인터뷰나 기고문을 통해 시리아 내전의 현실을 한국 등 국제사회에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지금은 학생 비자로 한국 생활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저도 난민신청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압둘 와합 사무국장은 한국 내 반이슬람 커뮤니티에서 도는 무슬림의 이미지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슬람, 무슬림의 모습이 너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난민들은 조용히 살길 원한다”며 “시리아 출신 난민들과는 오랫동안 교류를 해왔지만 막상 헬프시리아에서 공개행사를 하려고 하면 잘 안 온다. 일부에서 생각하듯 자기들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치외법권 지대를 형성하기는커녕 최대한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게 실제 난민들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압둘 와합 사무국장은 특히 시리아나 예멘처럼 독재정권과 전쟁을 겪은 이들은 국가 권력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시리아 난민의 경우 몇십 년간 독재정권 밑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한국이 시리아와 다른 나라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한국 경찰도 마치 시리아 경찰처럼 자신들을 해코지하고 조금만 튀는 행동을 하면 시리아로 돌려보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끔 저한테도 ‘이슬람의 위험한 13개 교리’ 같은 카톡이 온다. 무슬림인 나도 모르는 내용의 교리인데 그게 다 사실이면 저도 코란이 싫어지고 이슬람이 싫어질 거다. 누가 기독교 교리를 엉터리로 왜곡해서 전파해도 아무도 안 믿지 않나. 이슬람도 한국사람들에게 익숙했다면 애초 그런 가짜뉴스는 통할 리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카페에서 압둘 와합 헬프시리아 사무국장이 한국에 온 무슬림 난민의 생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백철 기자

서울의 한 카페에서 압둘 와합 헬프시리아 사무국장이 한국에 온 무슬림 난민의 생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백철 기자

무슬림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
김동문 목사는 기독교인에도 근본주의자가 있고 엉터리 신자가 있듯, 무슬림 중에도 형식적으로만 종교를 믿는 사람도 있고, 종교에 심취한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예멘 난민을 반대하는 커뮤니티에서는 ‘그들이 한국에 정착하면 일부다처제 등 반인권적인 행위를 하려 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퓨리서치센터 등 여론조사기관에 따르면 아랍국가 중에서도 일부다처제에 부정적인 여론이 높은 나라도 여럿 있다. 요르단이나 레바논의 경우 남녀 모두 일부다처제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김 목사는 “심지어 아랍권 국가도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점점 개방적으로 가고 있는데 왜 우리는 더욱 폐쇄적으로 가는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김 목사는 “터키의 경우 과거 라마단을 지키지 않으면 법으로 처벌했다. 그런데 이제는 라마단도 선택사항이 됐다. 사우디에서도 여성 복장이 일부 자율화되고 허용되는 등 점점 변화되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압둘 와합 사무국장은 난민들은 언젠가 본국으로 돌아갈 사람들이고, 거기서는 한국에 왔던 난민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는 시리아에서 태어난 100% 시리아 사람인데도 한국 사회의 문화나 이런 것을 많이 받아들였다. 한국에서 인생의 3분의 1 이상을 살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랑 인사할 때나 악수할 때나 완전히 한국식이 돼버려서 오히려 아랍권 사람들이 이상하게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터키나 다른 아랍국가 사람이 저한테 한국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볼 때가 많고 저는 한국 대변인이나 된 것처럼 적극적으로 설명한다. 난민들이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그들은 각자 나라에서 한국에 대해 잘 아는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압둘 와합 사무국장은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아니라 한국을 찾은 사람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무슬림인지 아닌지를 갖고 사람을 평가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온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살펴보면 된다. 나쁜 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은 인간적으로 대해주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한국법으로 처벌하면 된다. 난민들이 원하는 건 큰 게 없다. 혜택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사람으로서 인정만 해주면 나머지는 자발적으로 우리 힘으로 살아가겠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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