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의 마지막 길은 외롭지 않았다

2019.02.01 19:58 입력 2019.02.01 20:30 수정

“평생 사랑이란 걸 모르고 지냈다”던 그도 마지막 가는 길 만큼은 외롭지 않았다. 전시 성폭력 생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1925~2019)이 먼저 세상을 등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곁에서 영면에 들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평생 평화와 인권을 위해 싸운 고 김복동 할머니의 유해가 1일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장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평생 평화와 인권을 위해 싸운 고 김복동 할머니의 유해가 1일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장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고인을 실은 운구행렬이 1일 오후 4시20분쯤 장지인 천안 망향의동산에 도착했다. 망향의동산에는 먼저 세상을 등진 위안부 피해자 51명이 묻혀있다. 김복동 할머니와 인연을 맺었던 시민단체 활동가 및 자원봉사자 등 200여명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상주인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가 유골함을 묘역 앞에 내려놓으면서 하관식이 시작됐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 이용수 할머니가 손에 흙을 담아 고인의 유골함에 덮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잘 가세요. 일본에 사죄받고 먼 훗날 언니한테 갈게요.” 뒤이어 다른 활동가들도 유골함에 흙을 뿌리며 고인과의 인연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감정이 북받친 듯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평생 평화와 인권을 위해 싸운 고 김복동 할머니의 유해가 1일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장되는 동안 참석자들이 허토를 하며 애도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평생 평화와 인권을 위해 싸운 고 김복동 할머니의 유해가 1일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장되는 동안 참석자들이 허토를 하며 애도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김 할머니의 묘역에는 ‘고(故) 김복동의 묘’라는 단촐한 비석만 세워졌다. 묘역 주변은 생전 고인을 사랑한 이들이 보낸 조화로 가득했다. 추모객들이 보낸 조화에는 “편히 영면하소서” “사랑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희망나비 소녀상 지킴이로 활동 중인 중학생 강한비양(15)은 발인부터 하관식까지 장장 11시간 넘게 이어진 김 할머니의 장례 절차에 모두 참여했다. 강양은 지난해 김복동 할머니와 윤 대표가 함께한 ‘할머니의 삶’ 강연을 듣고 고인에 대한 존경심을 품게 됐다고 했다. 그는 ‘김복동 할머니를 어떤 분으로 기억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의를 위해 열심히 싸우신 분이었다”며 “이제는 저희가 그 뜻을 열심히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열리고 있다. 운구행렬을 함께 한 시민들이 노랑나비를 흔들며 고 김복동 할머니를 추모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열리고 있다. 운구행렬을 함께 한 시민들이 노랑나비를 흔들며 고 김복동 할머니를 추모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이날 김 할머니의 장례 일정은 오후 5시30분 하관식 종료와 함께 모두 마무리됐다. 김 할머니의 발인식은 오전 6시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진행됐다. 운구차량은 고인이 생전 머물던 서울시 마포구 ‘평화의 우리집’을 들른 뒤 시민들이 기다리고 있는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오전 10시30분부터는 매주 수요집회가 열린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민 1000여명이 함께한 가운데 영결식이 엄수됐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