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공모제는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2019.12.01 09:07 입력 2019.12.01 16:42 수정

‘교장공모제(교사와 학부모가 교장을 뽑는 제도)’는 안착할 수 있을까.

2007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초빙형·내부형·개방형으로 구성된 교장공모제가 시범 운영된 이래 12년간 이 물음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15년 이상의 교직경력이 있는 교사’를 교장으로 뽑을 수 있는 내부형 공모교장 제도가 보다 확대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신청학교 가운데 15%만 지정하던 비율을 50%까지 늘리는 것에 그쳤다. 한국교총 등 보수 교원단체의 극심한 반발에 정부가 한 발 뒤로 물러난 모양새다. 이마저도 보수 교원단체 등은 비판하고 있다. 교장공모제를 비판하는 쪽의 논리를 간략히 정리하자면 ‘교장이 되기 위해 최소 25년 이상 승진가산점 취득 및 교육연구, 벽지 및 험지 근무를 자처했던 교사들의 노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장공모제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고 있다. 한 번이라도 내 손으로 학교장을 뽑는 절차에 참여해본 학부모와 교사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학교장의 유형을 세우고, 거기에 맞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학부모, 교사 모두 만족도 높아

김갑성 한국교원대 교수가 2010년 한국교육개발원의 용역을 받아 작성한 ‘교장공모제 성과분석 및 세부 시행모형 개선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공모유형과 별개로 공모교장이 발령교장에 비해 솔선수범하는 모습이나 책임감, 리더십 등의 면에서 학부모와 교사로부터 더 큰 만족도를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의 교육력을 높이는 업무수행능력, 신뢰도 면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또 공모교장은 4년 단임 임기 중 2년차에 한 차례 평가를 받기 때문에 교육에 필요한 시설설비 구비를 끌어오고, 관리하는 면에서 승진교장에 비해 더 많은 성과를 내놓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간평가 기간 및 단임제 4년이라는 한정된 기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끌어내야 하는 공모교장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 김갑성 교수 및 연구진들의 분석이다. 학교 구성원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제도라면 교장공모제를 확대해나가는 것이 교육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문제는 이 제도에도 몇 가지 맹점이 드러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극히 일부지만 교장공모제도 악용을 의심할 만한 사례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이는 그러나 교장공모제 확대를 반대하는 근거로도 활용된다.

경기도의 한 혁신고등학교는 지난해 공모교장 선발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공모교장 공고가 나기 전 지원자 중 한 명이 학교운영위원장을 미리 만나 사전협의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 지원자는 현재 해당학교 교장이다. 학교운영위원장이 공모교장 심사가 있는 날 학부모 심사위원을 불러 다른 후보를 떨어뜨리고, 현재의 교장을 당선시키도록 지시했다는 것이 현 교장의 반대 측 주장이다. 해당 학교는 현재도 교장과 교사들 간에 갈등을 빚고 있다.

또 다른 경기도의 한 혁신초등학교는 매 회 교장공모제로 교장을 뽑아왔지만 올해 처음으로 교장공모제의 타당성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사실상 학부모대표단이 학교 일에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일종의 ‘허수아비’ 교장을 데려오려 한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그동안 교사 및 학부모 전원 100% 찬성으로 교장공모제를 신청해왔다. 그러나 올해 처음으로 비공개 투표로 의견을 모아 학부모 90명 찬성, 13명 반대, 2명 기권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일부 학부모는 학부모 소모임 밴드에 ‘학교 정신에 위배되는 반대표가 나왔다’는 글을 썼다가 해당 글을 삭제하기도 했다. <주간경향>은 해당 글이 삭제되기 전 캡처본을 확인했다.

물론 학부모 찬성 비율(85.7%·교사 100%)로만 보자면 여타 공모제신청 학교에 비해 높은 수치다. 그러나 100% 찬성이었던 과거와 비교하자면 ‘균열’이 생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학부모 중 한 명은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현 교장선생님이 물러나면 학부모대표단에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이 학교 교사 출신 평교사를 내부형(B형) 공모교장으로 데리고 온다는 소문이 부모 사회에서 돌고 있다”면서 “그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게 올바른 공모교장의 모습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학교 관계자는 그러나 “교장공모제 절차나 규정상 특정 학부모가 원한다고 해서 특정 교사가 교장이 될 수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다만 학부모들 사이에서 몇몇 갈등이 불거져 있는 것을 알고 있고, 원만히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교장제도개혁모임’은 이 제도가 교장의 임기연장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한다. 통상 교직원이 교장승진대상자가 되기까지는 20년에서 25년 이상의 교직경력이 필요하다. 여성 교직원이나 군 면제 남성 교직원의 경우 일찍 임용됐을 경우 만 23세 무렵 교직생활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각종 승진가산점 등을 일찍 채우거나, 교육전문직으로 근무하면 40대 후반~50대 초반에 교장 자격을 얻게 된다. 교장은 통상 최대 8년(4년 중임)가량 근무하고 정년퇴임을 한다. 그러나 일찌감치 교장승진대상자에 오른 교원들은 8년의 교장 임기를 채우고도 정년이 남는 경우가 있다. 이때 이들이 교장공모제를 임기연장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모제로 교장이 된 교원의 93.5%(2017년 기준)가 교장자격증을 가진 교원이란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공모제교장의 임기(4년 단임제)는 승진교장 임기(4년 중임)의 예외로 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공모제교장을 한 차례 한 뒤 교장발령을 받을 경우 최대 12년간 교장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불법도, 편법도 아니다.

기존 교장의 임기연장 수단으로

교장제도개혁모임은 지난 11월 22일 열린 교장제도개혁 토론회에서 “공모제를 악용하는 사례를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비교적 일찍 교감·교장이 되는 교육전문직의 경우 그들 사이에 서열을 매겨 공모학교를 배분하는 모의가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교장공모제와 함께 주장했던 ‘교장선출보직제’가 안착되지 않고 있는 점도 공모제의 한계로 지적된다. ‘교장선출보직제’란 쉽게 말해 교장을 하나의 보직으로 보고, 교장 임기가 끝나면 다시 교사로 돌아가도록 하는 순환제도를 말한다. 문제는 이 제안을 했던 전교조 출신 교사들이 교장자격을 취득한 후(공모제교장은 교장이 된 이후 교장자격을 사후에 얻는다) 일부를 제외하고 다시 교사업무에 복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전교조 소속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로 복귀한다는 교장이 나타나면 그 자체가 뉴스가 될 정도”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장공모제는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강점은 학교 구성원들이 원하는 교장의 모습과 교장의 역할을 정하고, 이에 맞는 교장을 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2020학년도 공모제 학교로 선정된 많은 학교들이 각종 ‘요건’을 달아 교장공모를 하고 있다. 발령에 따라 일방적으로 부임하는 교장이 아닌 학교가 원하는 맞춤형 교장을 뽑을 수 있는 기회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ㄱ학교는 ‘스마트융합교육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고, 확고한 추진의 뜻이 있는 자’를 우대조건으로 공고하는가 하면 ㄴ학교는 ‘기존의 혁신학교 정신을 잘 살릴 수 있는 자’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ㄷ학교는 ‘진로교육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자’를, ㄹ학교는 공모교장 임기가 끝나면 공모 이전 직위로 복귀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기도 했다. 교장공모제도 확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정재석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팀장은 “교육의 3주체인 학생·학부모·교사가 바라는 교장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점은 공모제도의 강점”이라며 “공모교장제의 긍정적인 사례가 더 많이 나온다면 기존의 승진제의 벽도 허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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