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 사망’ 이주노동자 병 키운 고용허가제

2021.01.01 14:11 입력 2021.01.01 23:17 수정

입국 뒤 3년 넘게 의료 접근 차단

2019년에야 지역보험 건보 가입

‘직장보험 가입 의무’ 사업자등록증

농축산업은 제시 안 해도 허가받아

지난해 12월20일 경기 포천시 비닐하우스에서 간경화로 사망한 캄보디아 국적 이주노동자 A씨가 최초 입국한 뒤 3년여간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던 사실이 확인됐다. 국내에서 질병이 발병됐거나 악화됐더라도 제대로 된 치료가 한동안 어려웠을 수 있다.

1일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건강보험공단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보면 A씨의 건강보험 가입 시기는 2019년 7월16일부터 사망 시점인 지난달 20일까지다. 고용허가제로 A씨가 한국에 입국한 2016년 3월15일부터 2019년 7월5일까지 3년4개월간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상태였다. 비전문취업비자(E-9-03) 농업 종사자로 입국한 A씨는 2018년 10월 사업장 변경을 신청해 한 차례 직장을 이동했는데 두 직장 모두에서 직장보험에 가입되지 않았던 셈이다.

A씨는 6개월 이상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직장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을 경우 지역보험에 의무 가입하도록 한 보건복지부 정책에 따라 2019년 7월16일 지역보험에 가입했다. 사용자와 노동자가 보험료를 절반씩 나눠 부담하는 직장보험과 달리, 지역보험은 월 11만원 이상의 보험료를 노동자가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A씨를 고용한 사업주들이 직장보험 없이도 A씨를 고용할 수 있었던 것은 현행 고용허가제의 허점 때문이다. 고용허가제 신청 단계에서 제조업·건설업·서비스업은 직장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사업자등록증 제시가 필수적인 반면, 농축산업은 사업자등록증 없이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장이 발급하는 농업경영체등록 확인서만으로 고용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주노동자 중에도 농어촌 노동자들만 높은 액수의 지역보험료 부담을 져야 한다는 의미다.

최정규 변호사는 “사업자 등록이 어려운 것은 아님에도 농장주들이 하지 않는 것은 면세 혜택 때문”이라며 “(농업도) 사업자등록을 한 사업장에만 (이주노동자) 고용허가를 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우 변호사는 2019년 12월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이주노동자의 임금은 내국인보다 낮은 것이 일반적”이라며 내국인들이 부담하는 액수와 동일한 일률적 보험료가 아닌, 실제 이주노동자의 소득을 반영한 보험료 책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 사망 사건 대책위원회 측은 A씨 사망 원인인 간경화가 국내 입국 후 발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2016년 A씨가 국내 입국 후 받은 최초의 건강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소변검사, 빈혈, 혈당, 지질, 간기능, 흉부간·직촬, 결핵 등을 검사하는 건강검진에서 탈락할 경우 본국으로 강제 귀국시키고 있다.

대책위는 지난해 12월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직장보험도 아닌 지역보험에 작년에야 가입한 A씨 사례를 보듯이 이주노동자의 의료접근권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권, 건강권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획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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