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의 태동

2021.01.05 00:05 입력 2021.01.11 06:16 수정

196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오래 전 ‘이날’] '지소미아'의 태동

■2011년 1월5일. 광복 후 최초의 한·일 군사협정
10년 전 오늘 경향신문에는 “사상 처음으로 한·일간 군사협정 체결이 추진된다”는 소식이 실렸습니다. 기사는 당시 국방부가 “2011년 1월4일 기타자와 도시마 일본 방위상이 다음주 한국을 방문해 김관진 국방장관과 군사비밀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 협정 체결 문제 등을 논의한다고 밝혔다”고 전합니다. 그러면서 “올해 중 체결을 목표로 한다”고 체결 시점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해방 후 한국과 일본 사이에 처음으로 추진된다는 이 군사협정은 실제로 과연 체결됐을까요?

네, 일부는요. 상호군수지원협정은 자위대의 한국 진입을 허용할 우려 때문에 불발됐지만 군사비밀보호협정은 체결됐습니다. 그리고 이 군사비밀보호협정은 훗날 ‘지소미아(GSOMIA)’라 불리게 되는, 최근 한·일 무역 분쟁에서 ‘뜨거운 감자’가 됐던 바로 그 협정입니다.

체결 추진은 보도 시점 한 해 전인 2010년 10월 일본이 먼저 제안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연원을 따져보면 최초로 제안한 건 한국이었습니다. 1989년 노태우 정권은 당시 대북 정보수집을 위해 일본의 휴민트(Humint·인적 정보), 즉 일본 내 조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회) 내부의 대북정보에 눈독을 들였었는데요. 그러나 당시 일본은 한국의 제안에 미온적 반응을 보였고 협약은 성사되지 못합니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한 핵실험 등으로 불안을 느낀 일본이 한국에 역제안을 했고, 한국 측도 천암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등으로 필요성을 느끼면서 재추진된 겁니다.

그러나 이때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핵실험 등으로 북·일 관계가 단절되다시피해 조총련의 휴민트가 예전만 못했고, 탈북자 등을 통해 직접 얻는 정보가 더 정확할 수 있는 등 실효성 논란이 나왔습니다. 또 일제 강점기를 거친 한국 국민들의 반일 정서, 북한은 물론 중국·러시아를 자극하게 될 거라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특히 당시 이명박 정부가 협약 체결을 비밀리에 추진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가서명 단계까지 간 협약 체결은 결국 취소됩니다.

이후 2016년 박근혜 정권 당시 북한이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재개하자 그해 10월27일 양국은 체결을 재추진했고, 11월23일 결국 협정은 서명됩니다. 당시에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제대로 된 국민적 논의도 없이 한 달여 만에 속전속결로 체결해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후 양국은 26건 정도의 군사 정보를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국은 일본에 북한에서 발사된 각종 탄도미사일 정보를 주고, 일본은 북한 잠수함 기지 및 SLBM 개발 동향,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분석결과 등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1년 1월5일자 경향신문

2011년 1월5일자 경향신문

‘지소미아’는 사실 체결국 간에 정보 제공을 강제하는 협정이 아닙니다. 단지 주고받는 정보를 타국에 누설하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정보를 주고받는 보안절차를 특정하는 협약입니다. 그러나 민감한 군사정보를 주고받기 위해서는 이 협약이 거의 필수적입니다. 내가 주는 정보를 다른 이에게 누설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없이 함부로 민감한 정보를 줄 수는 없으니까요. 한국은 일본 뿐 아니라 세계 30여개국과도 지소미아를 체결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과 미국, 미국과 일본 사이에도 각각 지소미아가 체결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사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지소미아를 체결하지 않아도 정보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14년 한·미·일 3국 간에 체결된 정보공유협정(TISA)을 통해서 말이죠. TISA는 한·미 간에 맺어진 지소미아와 미·일 간에 맺어진 지소미아를 근거로, 한국이 미국에 제공한 대북 정보를 미국이 한국 국방부의 허가를 받고 일본에 제공할 수 있고, 일본이 미국에 제공한 대북 정보 역시 미국이 일본 방위성의 허가를 받고 한국에 제공할 수 있도록 한 협약입니다.

또 한·일 간 체결된 지소미아가 일본에게 더 득이 되는 협약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일본 입장에선 조총련의 휴민트가 예전같지 않고,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본토를 향할 경우 요격을 위해선 한국군의 레이더 정보를 신속히 받는 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시각들은 최근 한·일 무역분쟁 때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파기를 압박용 카드로 꺼내든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미국의 경우 한·일 간 지소미아와 관계 없이 양국으로부터 대북 정보를 얻을 수 있고, TISA를 통해 한·미·일 3국간 정보 공유도 원칙적으로는 가능하기 때문에 미국도 크게 반대하지는 않을 거라 예상했던 듯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예상과 달리 강력하게 반발했고, 지한파 미국 정치인들조차 ‘한·미 동맹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결국 지소미아는 파기되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는 “종료 통보의 효력 정지”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연장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이 예상보다 강력하게 반발했던 이유는 ‘지소미아’의 실효성보다 상징성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즉, 북·중·러에 맞서 한·미·일이라는 삼각 동맹을 구축하려던 미국에게 지소미아는 그 삼각 동맹의 핵심 상징 중 하나였다는 겁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지소미아’가 추진 한 달 만에 체결된 것도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압박 때문이었고, 비슷한 시기 이뤄진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배치도 이런 목적의 일환으로 한국을 (미사일 방어체계)MD 체계로 편입시켜 북·중·러를 압박하려는 목적이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물론 이 같은 시각이 옳은 것인지 결론 내리긴 쉽지 않습니다. 다만 적어도 ‘지소미아’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뜨거운 감자’였던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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