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오늘의 이야기는 <사랑의 통장>이에요. 이야기 속으로 출발! 모두 신나게 잘 들어보아요. 귀는 쫑긋, 눈은 반짝, 준비됐나요, 출발합니다, 빵빵!”
짙은 자줏빛 옷고름의 색동저고리 한복을 입은 김봉희씨(69·서울 구로구)가 선창하자 20명 남짓 되는 다섯 살 어린이들이 목청 높여 노래를 따라 부른다. 옆자리 친구와 장난을 치던 아이도, 바닥을 보며 손가락을 빙빙 돌리던 아이도 이내 고개를 들어 김씨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김씨는 10년차 ‘이야기할머니’다. 이야기할머니는 60여시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여성 노인들의 자원봉사 활동으로, 주 2~3회 유아교육 기관에서 아동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역할을 한다. 2009년 시작해 지난 3월 기준 3305명이 전국 8500여개 기관에서 활동 중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던 김씨는 올해 활동을 재개했다.
‘○린이’ 등 아이들을 낮잡아 부르는 표현이 남발되고, 어린이의 입장 자체를 금지하는 ‘노 키즈 존’은 여전히 득세한다. 사회 곳곳 아이들 발 디딜 곳은 줄어들지만, 어린이의 세계에는 문턱이 없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에서 만난 김씨와 12년차 이야기할머니 성혜선씨(74·서울 용산구), 2년차 서춘희씨(69·강원 홍천군)는 아이들과의 만남을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이야기할머니들에게 쉬이 곁을 내어준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이 듬뿍 묻어났다.
“다른 사람들은 다 늙은이라고, 요즘 말로 ‘꼰대’라고 여기는데, 아이들은 저희를 참 진지하게 생각해주거든요.” 노년의 나이에 어린이 세계에 들어간 이들은 “어리게만 봤던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게 됐다”며 “또박또박 자기 생각을 밝히는 아이들을 보면 절대 어린이라고 무시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평균 나이 70세. 노년 여성들이 바라본 아이들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이야기할머니가 되고서야 ‘나’로 사는 법의 재미를 알게 됐다고 말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를 들었다.
“1년에 30편 외우고 외워…아이들 눈 보면 ‘진짜’ 이야기 나오더라고요”
■장원급제, 그게 뭐 별거더냐
- 이야기할머니가 된 계기가 궁금해요.
성혜선(이하 성) = 2010년에 서울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에서 이야기 관련 수업을 들었어요. 거기 선생님이 안동(한국국학진흥원)에서 이야기할머니를 모집한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해서 지원했어요. 서울에서만 50명을 뽑았습니다. 경쟁률은 4 대 1 정도였을 거예요.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간식 해놓고 그런 뒷바라지만 해서 면접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걱정했지요. 근데 나이 60이 넘어서 숙명여대에서 퇴계 이황 선생님에 대한 공부를 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면접에서 그거 하나 딱 물어보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퇴계 선생님 아니었으면 떨어졌을지도 몰라요.(웃음)
김봉희(이하 김) = 저도 그 무렵 신문에서 이야기할머니에 대한 기사를 읽었어요. 이미 2기 모집은 끝났더라고요. 3기 모집할 때 원서를 냈어요. 면접에서 봉사활동 이력을 물었는데 “먹고살고 하느라고 봉사활동한 게 전혀 없습니다” 했더니 떨어졌어요. 나이를 먹어도 불합격은 자존심 상하더라고요. 다음 해 4기를 모집하는데, 지원할까 말까 고민했어요. ‘또 떨어지면 삼수하지 뭐’ 하는 생각으로 면접을 봤죠. 재수했다고 이실직고했는데, 다행히 붙었습니다. 삼수하겠다는 결심을 해서 된 것 아닐까요. 안 그랬으면 또 떨어질까 겁이 나서 원서도 못 냈을 거예요.
서춘희(이하 서) = 옛 직장 동료인 친구가 같이 지원해보자고 했어요. 처음엔 회의적이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옛날 할머니 이야기를 듣겠느냐고 그랬지요. 되면 되고, 말면 말자는 심정이었어요. 면접에서 지원 동기를 묻는데, 이 질문을 받을 것이라곤 예상을 못했어요. 전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자란 세대거든요. 그런데 직장을 다니면서 바쁘게 살다 보니까 막상 제 아이한테는 한 번도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없어요. “이제 좀 여유가 있으니까 아이들에게 내가 아는 이야기 좀 해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솔직하게 답했더니 (면접관) 마음에 들었나봐요.
- 합격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성 = 아휴, 장원급제한 기분이었죠. 남편이 애들한테 “느이(너희) 엄마, 합격했단다야” 자랑하고 난리가 났어요. 친구들 모임 가서도 “집사람이 이야기할머닌가 뭔가 됐대” 어찌나 얘기하고 다니는지.
김 = 이번엔 됐구나. 삼수 안 해도 되겠네 싶었고요. 쌍둥이 딸들이 “엄만 잘할 거야” 말해주는데 참 힘이 됐어요.
서 = 합격 확인하는 것도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홈페이지에 합격자 이름이 뜨는데 가운데 글자는 가리고 ‘서○희’가 있더라고요. 근데 제 번호가 아니었어요. 남편한테 “나 떨어졌어” 하고 밭에 가서 풀을 뽑고 있었죠. 그때 친구에게 전화가 왔어요. “서춘희 축하해~” 그래요. “뭐 나 떨어졌는데” 이러니까 “너 됐어” 하더라고요. 다시 보니 ‘서○희’가 둘이었어요. 같이 지원한 친구는 이번에도 했는데 또 떨어졌대요.(웃음)
■1년에 이야기 30편, 전부 외워요
이야기할머니의 준비물엔 ‘책’이 없다. 이야기를 모두 외워서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주로 동물이 등장하는 우화나 실존했던 선현의 미담이다. 마음씨 착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해 개와 고양이가 구슬을 찾아 나서는 모험담을 담은 전래동화 <개와 고양이와 구슬>, 자신을 살린 선비를 위해 목숨 바쳐 은혜를 갚은 꿩 이야기 <은혜 갚은 꿩> 등 1년에 26~30편을 외워야 한다. 이야기 한 편에 1500~2000자, 수업 시간은 1회에 20여분이다.
- 이야기는 어떻게 외우세요.
성 = 옛날엔 휴대폰에 녹음 기능도 없었잖아요. 작은 녹음기에 이야기를 녹음해서 항상 듣고, 잘 때도 자장가 삼아 외웠어요. 그냥 읽는 것보다도 입으로 말해야 잘 외워지더라고요. 친구들이랑 걸을 때도 이야기를 해주고 다녔지요. 한 번은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어디 가면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냐”고 묻더라고요.(웃음) 이야기 외우는 건 매번 어려워요. 계속해서 열심히 하는 게 비법인 것 같아요. 우리 이야기할머니들은 치매도 안 걸릴 거라고 늘 말해요. 예쁜 어린이들 만나니 또 젊어지고요.
김 = 집에선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그런지 집중이 안 돼요.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차 타고 가면서 중얼중얼 외우고요. 손주 업고 재우면서도 많이 외웠어요.
서 = 저도 이야기를 인쇄해서 끌어안고 살다시피 해요. 신경 써서 말해줘야 하는 부분은 동그라미를 많이 해놓고요. 잘 외우고 가야 아이들 앞에서 자신감 있게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오늘도 서울 오는 차 안에서 이야기 외웠어요.
■K할머니, 아이들을 만나다
- 첫 수업 기억하시나요.
성 = 그럼요. 처음 갔을 땐 정말 ‘무릎 교육’이었어요. 아이들을 무릎 앞에 동그랗게 앉혀놓고 바닥에 같이 앉아서 이야기했지요. 아이들이 제 무릎에 기대기도 하고, 눕기도 하고요. 어린이집에 금요일마다 갔는데, 원래 체육 수업이 인기가 제일 좋았대요. 제가 간 뒤로 이야기할머니가 1등이 되고, 체육 선생님이 2등으로 밀려났어요.(웃음) 아, 이렇게 좋은 게 없구나. 이야기할머니 하기를 잘했구나. 무릎에 앉히고 한 명씩 “둥개둥개 둥개야, 오이 크듯, 호박 크듯, 쑥쑥 잘 자라라, 금자동이, 은자동이” 이렇게 해주면 애들이고, 지켜보는 선생님이고 다들 좋아했어요.
김 = 처음 맡은 반이 5세 반이었어요. 애들이 재밌게 들을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불안감에 많이 떨었어요. 그런데 너무 잘 들어주는 거예요. 그 친구들 덕에 ‘내가 해냈구나’ 자신감을 얻었어요. 옛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니 한복을 자주 입거든요. 그럼 아이들이 치맛자락 매달려서 질문을 쏟아내요. “할머니는 옛날 집에서 살아요?” “할머니 머리는 왜 하얀색이에요?” 아이들한테 봉사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에게 받은 게 훨씬 많아요.
서 = 우리는 시골이니까 아이들 수가 적거든요. 5~6세 반 아이들 11명 정도가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둔 채 앉아있더라고요. 원피스 입은 아이가 걸어나오더니 제 것이라면서 의자를 놓아줬어요. ‘고마워’하고 말하는데 가슴이 찡했어요. 아이들 눈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진짜’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전래동화 <개와 고양이와 구슬>에 푹 빠져서 신나게 이야기했어요. 그렇게 하니까 애들도 더 잘 듣고요. 끝나고 나서 원장님이 고생했다고 꽃차를 주는데 그것도 어찌나 고맙던지. 더 열심히 해야겠다 다짐했지요.
- 어린이들이 집중은 잘하나요.
성 = 산만한 아이들이 간혹 있지만 일일이 신경 쓸 수 없어요. 그렇다고 이 아이들이 이야기를 안 듣는 게 아니에요. 딴짓하면서도 귀로 다 듣고요. 다음 시간에 가서 ‘지난주에 한 이야기가 뭐냐’고 물으면 줄줄 다 이야기해요. 아이들도 얼마나 고생이에요. 이야기 듣는 것도 힘들잖아요. ‘꾹 참고 잘 들어줘서 할머니가 고맙다고 사랑한다’ 그러면 씩 웃어요.
김 = 당장에 말썽 좀 부린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조급한 건 어른들이고,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잘 자라거든요.서 = 이야기 중간에 지루해하는 기분이 들면 잠깐 말을 멈추면 돼요. 그러면 ‘왜 말을 안 하지?’ 하면서 쳐다보거든요. 언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나 귀를 기울여요. 목소리 크기를 조금씩 줄이는 것도 방법이에요. 소리를 더 잘 들으려고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집중해요.
■짠해 죽겠네, 마스크 쓴 그 얼굴
지난 13년 동안 이야기할머니들은 쉼 없이 옛이야기를 실어 날랐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할머니들의 활동에도 차질이 생겼다. 일부 교육기관이 폐쇄됐고 1년 이상 아이들을 만나지 못한 할머니도 있었다. 수업이 비대면·동영상 수업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대면 수업을 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방역수칙을 철저히 하는 건 기본, 무릎맡 대신 2m 간격을 지켜 거리를 두고 아이들을 마주했다.
- 건강 관리도 각별하겠어요.
성 = 그럼요. 밖에서 마스크 절대 안 벗고, 손도 열심히 씻고요. 사람 많은 데는 안 가요. 누가 “할머니 건강 어떠세요” 물으면 “제가 얼~마나 소중한 몸인 줄 아십니까. 자라나는 새싹을 키우는 사람이고, 가정에 들어가면 가족 건강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몸입니까. 얼마나 건강을 잘 지키겠어요.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이렇게 대답해요.(웃음)
- 아이들은 어떤가요.
성 = 짠해 죽겠어. 처음에는 마스크가 답답하니까 벗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이제는 습관이 됐는지 어른들보다 더 잘 써요. 아이들이 안기려고 ‘할머니~’하고 달려오는데 안아주지 못하는 게 제일 안타까워요. “코로나 끝나면 안아줄게”하며 밀어내는 마음이 좋지 않아요.
김 = 마스크를 쓰고 대화하니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것이 참 미안해요. 로봇 이름 같은 걸 말하는데, 유아어를 쓰니까 또 몇 번이고 되묻기도 하고요. 반대로 어른들이 가능한 한 똑바로 말하려고 하지만 아이들이 잘 알아듣지 못할 때도 있고요.
서 = 지난해 이야기할머니 활동을 시작한 뒤로 아직 아이들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요.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만 가지고도 어찌나 소통하려고 애를 쓰는지. 안쓰럽기도 하고, 또 고맙기도 하고. 어쩌다 아이들이 마스크를 끼고 살게 됐나, 어른들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크지요.
- 수업을 못하게 된 경우도 있지요.
서 = 홍천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해서 조금 쉬자고 연락 온 곳들이 있어요. 아이가 셋뿐인 병설 유치원은 여전히 수업하고 있고요. 열심히 연습했는데, 수업을 못하면 조금 아쉽죠. 그래도 아이들이 저 때문에 감염되면 안 되니까 서운하거나 그런 건 전혀 없어요.
김 = 저는 작년에 코로나19 때문에 1년을 꼬박 쉬었어요. 아쉬움을 머금고 다른 일을 했죠.
- 어떤 다른 일이요.
김 = 시니어 모델 겸 배우 활동을 시작했어요어떻게 보면 이야기할머니 덕분인데요동기 할머니가 시니어 모델을 모집하니까 지원해 보라고 했어요오디션에서 장기자랑을 해야 하는데 할 게 없더라고요정 그러면 ‘이야기할머니 활동하니까 이야기라도 들려달라’고 하더라고요8분짜리 이야기인데 심사위원들이 끝까지 다 들었어요하여튼 합격이 됐어요.(웃음) 85명 중 15명이 뽑혔거든요본업인 이야기할머니를 못하는 바람에 부업인 모델 활동을 하게 된 셈이에요.
“누구의 아내, 엄마로만 살았는데…내 이름으로 살자 모든 게 달라져”
■세상에 나오니, 노년의 기쁨이 있더라
김봉희(1952년생)
아나운서 꿈 접고 은행에…결혼 후 바로 퇴사 많이 후회
무기력하게 살아오다 이야기 할머니 되면서 활기 되찾아
어딜 가든 뭐든 겁내지 않고 주어진 일 다 하고 싶어
첫 만남의 서먹함에 기자의 얼굴만 바라보던 세 할머니는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점차 가까워졌다. ‘내 이야기’를 조금씩 털어놓자 생애사가 담긴 이야기 보따리가 술술 풀렸다. 서씨가 일과 가정을 병행하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자, 성씨가 “고생했어”하며 어깨를 다독였다. 반대로 성씨가 “돈을 벌 줄 몰랐다”며 전업주부로 살아온 세월에 아쉬움을 표하자 양옆에 앉아있던 서씨와 김씨가 “애들 도나스(도넛) 만들어 먹이는 것도 얼마나 힘든 일인데”하면서 위로했다. 이야기할머니들의 활동 전 직업은 전업주부(48.1%·2015년 기준)가 가장 많다.
- 전에 어떤 일을 하셨나요.
서 = 20년 좀 안 되게 서울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어요. 서울시청에서 시작해 은평구청에서도 꽤 오래 일을 했어요. 아이가 중학교 들어갈 때까지는 계속 일을 했으니까요. 그러다 16년 전 남편 건강이 안 좋아져서 강원도 홍천으로 같이 내려왔지요. 목사 남편 만나서 직장, 가정, 교회 오가며 정말 치열하게 살았어요.
김 = 결혼 전에는 은행에 다녔어요. 원래 아나운서가 꿈이었거든요.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못 가고 은행을 들어간 거예요. 마음속에 있던 아나운서 꿈은 접었어요. 결혼하면서 남편 직장을 따라 부산으로 갔죠. 날짜도 기억해요. 1979년 12월. 사실 결혼하고 한 달도 안 돼서 후회했어요. ‘직장을 괜히 그만뒀다. 아이들 중학교 들어가면 나도 대학 다녀야지’ 했는데, 말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제가 풀타임으로 일을 해야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게 됐죠. 그렇게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세월을 보냈어요.(옆에서 지켜보던 성씨가 눈물을 찍어냈다. 옆에 있던 서씨도 따라 울었다. 한바탕 눈물바람이 지나갔다.)
성 = 저는 돈 버는 법을 몰랐어요. 좀 해봤으면 좋았을 텐데, 난 그런 건 못하는 줄 알고 살았어요. 나 때는 이렇게 사는 것이 정상인가 보다. 나가서 뭘 해야 되겠다 생각을 못했지요. 사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뭐라도 해보려고 하면 왜 그런 걸 하려고 하느냐 해서 말도 못했어요. 결혼을 스물셋에 했어요. 아이들 간식 만들어놓고 학교 다녀올 때까지 기다리고, 그리 살았어요.
서춘희(1952년생)
아이 중학교 입학 때까지 계속 일하다 남편 따라 시골살이
뒷전에 밀려나는 세대인데 친구·동반자 만난 기분
혼자 사는 분들과 함께하는 삶의 공동체 만드는 게 꿈
- 제2의 인생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성 = 아이들 다 키우고 적적하니 있는데, 농협에 가면 주부대학이 있대요. 가보니까 봉사를 하라고 하대요. 한림대학교 병원에 가서 거즈 접는 봉사를 했어요. 수다 떨면서 거즈를 접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사람들이 예절원에 가면 공부를 할 수 있대요. 거기 가서 뭘 또 배웠어요. 84세 된 우리 언니가 그걸 보더니 “너 여성프라자에 가서 공부해라” 했어요. 그렇게 뭐 가르쳐준다고 하면 쫓아가서 별걸 다 배웠어요. 대금도 배우고, 가야금도 배우고. 손주들이 하다가 내던진 바이올린 주워다가 복지관에 가서 무료로 배웠어요. 제대로 하는 건 하나도 없는데 그렇게 즐겁더라고요. 연극 <백석과 자야>에서 내가 ‘자야’ 역할도 해봤지. 누가 나한테 노래라도 시키면 우리 남편은 그 사람 할 줄 모른다고 자기가 대신한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보니까 다 할 수 있더라고요.
김 = 저도 환갑이 넘어서야 제2의 꿈을 꾸고 저 김봉희라는 사람의 이름으로 살게 됐어요. 누가 젊은 시절로 보내준다고 해도 싫다고 할 거예요. 나이를 먹는다는 건 많이 너그러워지는 것 같아요. 이해 못할 것도 없고요. 정말 하늘에서 ‘너 그만 살고 오라’고 해도 ‘네, 가겠습니다’ 할 정도로 이제야 나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됐어요.
- 이야기할머니 활동 전과 후 달라진 점은 뭔가요.
김 =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어요. 정말 어리게만 봤던 아이들이 하나의 인격체구나. 아주 의젓하게 또박또박 자기 생각을 말하는 걸 보면 절대 어린이라고 무시할 수가 없어요. 저 역시도 아이들 만난 뒤로 굉장히 밝아졌고요. 전에는 남편이랑 대화하는 것도 재미가 없고, 무기력했어요. 그랬던 제가 아이들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하니까, 남편이 제일 좋아해요. 사람이 활기가 생겼다고. 아이들이 주는 에너지 덕분이에요.
성 = 아이들이 ‘사랑한다’는 말을 참 잘해요. 계단까지 따라와서 “할머니 안녕. 사랑해요” 하는데, 사랑받는 기분이 참 좋잖아요. 우울하다가도 아이들 보고 오면 싹 내려가고. 아이들 만나기 전에 어떻게 살았을까. 저보고 많이 웃는다고, 사람들마다 달라졌다고 해요. 한복 입고 가면 아이들이 “할머니 돌잔치 가요?”라고 물어요. “그래. 돌잔치나 결혼식 같은 좋은 날에 한복을 입지? 할머니는 우리 친구들 만나는 날이 제일 좋은 날이라서 한복을 입고 왔지” 그러면 깔깔 넘어가요. 그리고 얼마나 옷이랑 화장에 민감한지.(웃음) 한 번은 원숭이가 그려진 덧신을 신고 갔는데, 난리가 났어요. 아이들이 좋아해서 10년을 신었더니 밑에 구멍이 났어요. 그래도 너무 좋아하니까 기워서 신고 다녀요. 아이들 때문에 수업 가기 전에 열심히 꽃단장합니다. 아이들 아니면 우리한테 누가 이렇게 관심 가져주겠어요.
서 = 아이들 만날 때마다 에피소드가 하나둘 생기니까 웃음이 늘 수밖에 없어요. 한 번은 제가 도착하기 전에 장난감 거미로 뭘 꾸며놨더라고요. 사실 하나도 안 무섭잖아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더니 “할머니가 무서운 거미를 그냥 지나갔다”고 온갖 호들갑을 떨어서,(웃음) 죽을 것처럼 연기하면서 다시 지나가야 했던 적이 있어요. <이건 내 떡>이란 전래동화를 들려줄 때는 말 안 하고 누가 오래 참는지 내기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럼 끝까지 말을 안 해요. 정해진 시간이 있으니까 제가 먼저 “아휴, 내가 졌어” 하면서 말을 시작하면 떡 내놓으라고 난리예요. 자기 이름 외웠나, 안 외웠나도 어찌나 확인하는지요.
성혜선(1947년생)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일찍 결혼하며 전업주부 생활
아이들 만나면 행복, 만나는 사람마다 웃음 많아졌다고 해
앞으로 환경 공부 열심히 해 지구 살리는 일도 하고파
- 아이들과 교감하며 언제가 가장 좋은가요.
김 = 얼굴을 맞대고 집중해서 제 말을 들어주는 것, 그 자체요. 아이들 입에서 ‘행복’이란 단어가 나올 때도 참 좋아요.
서 = 우리 세대는 이제 입을 다물어야 하잖아요.(웃음) 어떻게 보면 뒷전으로 밀려나는 세대인데, 어린이집에서 내 얘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아이들을 보면 동반자라고 할까요? 친구가 생긴 기분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다 늙은이라고, 요즘 말로 ‘꼰대’라고 하는데, 아이들은 저희를 참 진지하게 생각해주거든요. 기적이죠, 기적.
- 배우 윤여정씨가 성혜선 할머니와 연세가 같아요. 또래 여성의 성취를 바라보는 마음은 어떻습니까.
김 = 열두 살 많은 언니가 있거든요. 윤여정씨가 아카데미에서 수상하는 걸 보더니 “늦게 시작했지만, 우리 봉희도 할 수 있지 않겠어?” 하는 거예요.(웃음) 참 꿈도 크셔요. “언니, 저는 그냥 노는 거예요”라고 대답했지만, 기분은 좋았어요. 모델 활동하면서 ‘현장’에 가면 젊은분들을 볼 기회가 많거든요. 정말 열심히 치열하게 살더라고요. 배우는 게 많아요. 나이 들었다고 다 아는 게 아니잖아요. 특히 여자분들이 많은데요. 무거운 카메라도 거뜬히 메고 다니더라고요. 정말 성역이 없다고 느꼈어요.
성 = 윤여정씨 참 멋져요. 내가 그랬어요. 봐라, 건강하면 뭐든 다 할 수 있다. 나도 건강이 허락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생각했지요.
-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성 = 이야기할머니 말고도 ‘초록선생님’이라고 환경교육 봉사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아이들한테 미세먼지나 플라스틱, 기후변화같이 환경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지금 공부를 하고 있어요. 근데 학교에서 나이 먹은 사람은 환영하지 않는다고 누가 그러대. 슬퍼요, 슬퍼. 그래도 열심히 환경 공부를 하니까 육식을 좀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부터 배워서 실천하려고 해요. 1등으로는 건강해야겠다 싶고요. 다음으론 지구를 살리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김 = 꿈은 없어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주변을 보니까 나이 들어서 가는 사람도 있지만, 사고로 갑자기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요. 어딜 가든, 뭐든 겁내지 않고 지금 나에게 주어지는 건 다 실천해보고 싶어요. 세상으로 나오니까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나한테 오더라고요. 드론도 날려보고요. (손주들이) 게임하는 걸로 잔소리하는 할머니이긴 하지만, 게임기 들고 게임도 해보고요. 아이들처럼 호기심을 잃지 않고 오늘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게 목표라면 목표예요.
서 = 첫 번째는 이야기할머니가 프로그램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삶에 작은 변화라도 일으키는 교훈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비록 시작은 미온적, 회의적이었지만 욕심이 생겼어요. 두 번째는 누가 먼저 갈지 모르겠지만, 제 남편이 저보다 (몸이) 약하니까 먼저 가실 것 같거든요.(웃음) 저를 비롯해서 혼자 사는 분들이 많을 거 아니에요. 그런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사는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꿈이 또 있어요.
성 = 어머, 저 예약하겠습니다. (서씨의 손 위로 손을 포개며) 나, 예약했어요. 하하하.
이야기할머니 사업은 한국국학진흥원이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한다. 이야기할머니 모집대상은 만 56~74세 한국 국적 여성으로 구연에 필요한 기본 소양과 재담을 가졌다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다만 고정된 직업이 없는 경우엔 2차 면접에서 가산점이 부여된다.
주최 측은 안내문을 통해 “자원봉사자로서 이야기할머니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고, 본인 명의의 사업자등록증을 소유하지 않은 분들을 우대하여 선발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1차 서류심사와 이야기 구연 능력을 포함한 2차 면접 심사를 통해 예비 합격자를 결정한다. 예비 합격자들은 약 5개월 동안 60여시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 평가를 거쳐 최종 선발된다. 선발된 이야기할머니는 5년간 거주 지역 인근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우리 옛이야기를 어린이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해까지 5664명이 참가했고, 이 가운데 3000여명이 활동 중이다. 1회당 4만원의 활동비가 지급된다. 동화 구연과는 달리 과장된 목소리 연기를 하지 않고, 이야기를 모두 외워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