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구청, 미신고 아동복지시설 '방치' 의혹....시민단체 고발 후 폐쇄

2021.05.23 17:04 입력 2021.05.23 20:12 수정

국제아동인권센터 등 시민단체들이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미신고 아동복지시설 운영과 아동학대 혐의로 서초구 생명의샘 교회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제아동인권센터 등 시민단체들이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미신고 아동복지시설 운영과 아동학대 혐의로 서초구 생명의샘 교회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청이 아동학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생명의샘 교회 아동복지시설이 미신고 불법시설이라는 것을 제보받고도 방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2월 교회 자원봉사자가 구청에 미신고 시설에서 아동학대가 발생한다는 의심이 든다고 제보했지만 이를 묵살했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6월에는 이 시설에서 아동 사망사건이 일어나 경찰 수사까지 진행됐지만 관계기관들은 미신고 시설이라는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구청은 시민단체들이 시설관계자들을 고발한 이튿날인 지난 11일에야 폐쇄조치했다.

23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생명의샘 교회 자원봉사자 A씨는 지난 2월 서초구청에 전화해 생명의샘 교회에서 미신고된 아동복지시설을 운영하고, 무자격자들이 아이들을 돌보면서 아동학대가 일어나고 있다고 제보했다. 구청 직원은 “미인가 시설은 (구청에서) 관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A씨는 직원이 안내해준 아동학대 관련 부서로 다시 연락을 취했지만 계속 통화 중이어서 닿지 않았다. 이 교회는 당시 아동복지시설 운영을 구청에 신고하지 않아 아동복지법과 사회복지사업법을 위반하고 있었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제보자와의) 통화 부분은 (구청) 내부 소통의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해당 시설에서 생후 2개월 영아가 질식사하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 수사가 벌어질 때도 관계 기관들은 미신고 시설임을 확인하지 못했다. 경찰은 당시 이 시설 운영자인 교회 B목사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지만 검찰은 기소유예 처분했다. 이 과정에서 구청 등 관계 기관들은 미신고 시설이라는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당시 사건 현장엔 아동보호전문기관도 투입됐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영아사망에 집중하느라 시설의 허가 여부는 몰랐지만 아이들이 있어 점검이 필요하다고 보고 (담당 구청) 직원에게 관리를 요청하는 공문을 구청에 보내고 구두로도 협조를 요청하도록 했다”며 “당시 구청에서는 신고되지 않은 시설은 행정처분 대상이 아니라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조사 결과 공문 등이 접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고, 당시 (사건) 수사관은 (시설 점검을 요구하는) 공문을 (구청에) 보낸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아동인권단체들은 지난 10일 아동복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생명의샘 교회의 아동복지시설 종사자 2명과 B목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이들은 “생명의샘이 2019년부터 불법 아동복지시설을 운영하며 10여명의 영·유아들에게 폭언·폭행을 하는 등 상습적으로 학대했다”며 “지자체 등은 불법 시설임을 알면서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질식사한 피해아동의 부모는 경찰에 재수사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 서초구청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경찰은 A씨 등 여러명의 제보자와 고발인인 시민단체 관계자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B목사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다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신고 아동복지시설에 대해 당국의 관리감독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르면 지자체는 관내 미신고 아동복지시설 실태를 파악해 반기마다 복지부에 보고토록 하고 있지만 권고사항일 뿐이다. 실제로 2016년 이후 복지부에 관련 내용을 보고한 지자체는 없다. 이 때문에 미신고 시설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통계도 없다. 지자체가 미신고 시설을 방조해도 이를 제재할 법적 근거도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제보가 없으면 미신고 시설을 사전에 발견하기가 어렵다”면서 “생명의샘 같은 관리·감독의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아동단체 등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부는 지침을 강제화해 구멍난 제도를 보완하고, 미신고 시설을 운영할 경우 처벌 기준을 더 강화해야 한다”며 “불법 시설에 아이를 보낼 수밖에 없는 부모들을 제도권으로 끌어올 수 있는 대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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