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왕산에 ‘곤돌라 존치’하면서 복원이라고?

2021.06.14 16:51 입력 2021.06.14 17:15 수정

‘…멸종위기에 처해 있던 한계령풀, 금강제비꽃, 도깨비부채 등 희귀자생식물 복원, 천연 활엽수와 산나물, 산약초, 야생화가 만발하는 천상의 화원으로 산림유전자원을 보전·증식’. 산림청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가리왕산에 대한 설명이다.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에 위치한 가리왕산은 2008년 ‘희귀식물 자생지’임을 인정받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국무조정실과 환경부·산림청은 지난 11일 이 가리왕산에 2024년까지 곤돌라(소형 케이블카)를 한시 운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산림 생태계 보전을 위해 특별히 보호·관리하기로 한 구역에 곤돌라 운행이 어떻게 허가됐을까.

2015년 공사 마무리 단계에서 촬영된 가리왕산 알파인 스키 경기장. 김영민 기자

2015년 공사 마무리 단계에서 촬영된 가리왕산 알파인 스키 경기장. 김영민 기자

■ 단 며칠 간의 올림픽을 위해 깎인 산

시작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었다. 정부는 2011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지만 국내에는 동계 올림픽 주요 종목인 활강 스키를 할 만한 경기장이 없었다. 그러자 강원도는 가리왕산 중봉에 3㎞가 넘는 스키 슬로프를 4개 설치하겠다고 했다. 환경 파괴 논란이 일었지만, 결국 가리왕산 중봉이 아닌 하봉 쪽으로 위치를 변경하는 선에서 스키장 건설이 결정됐다. 산림청은 2013년 7월, 가리왕산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서 일부 해제(2475ha 중 78.3ha)했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지 5년 만이었다.

단 며칠 간의 올림픽을 위해 보호림을 훼손하기로 한 만큼, 전제 조건은 ‘사후 전면복원’ 이었다. 산림청이 사후 전면복원을 전제로 강원도에 내 준 국유림 사용허가기한은 2018년 12월31일까지였다.

■ 올림픽 끝나자 ‘곤돌라 존치’ 몽니 부리기 시작한 강원도

올림픽이 끝나면 바로 복원을 시작하려 했기 때문에, 올림픽을 치르기 전인 2017년에 이미 ‘가리왕산 생태복원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논의가 구체적으로 진행됐다. 산림청은 2017년 5월 가리왕산 복원 계획 적정성 검증을 위한 태스크포스(TF)을 꾸렸다. 가리왕산을 복원하하려면 강원도가 생태복원계획을 수립해 산림청 중앙산지관리위원회에 제출하고, 중앙산지위가 이를 승인해야 한다. 산림청, 환경부, 강원도 등 이해관계자와 각계 전문가 20여명으로 꾸려진 생태복원추진단은 10여차례의 회의를 거쳐 가리왕산 복원의 범위와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했다.

2017년 12월 열린 제12차 생태복원추진단 회의에서 결정된 ‘생태복원추진단 심의 결정사항’에는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겨있다.

‘결정사항’은 가리왕산의 복원 목표를 “산림청에서 제시한 산림유전자원보호림에 준하는 수준”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한 세부 내용으로 “인공구조물 철거”가 담겼다. “지상구조물은 전체 철거하고, 지하구조물은 지형복원 저촉구간에 한해 선택적으로 철거하며, 생태환경 영향 최소환 방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계획 한다”고 했다. 인공구조물 철거 범위도 명확히 나왔다. “지상구조물은 전체 철거(곤돌라 포함)”.

하지만 이 결정사항은 이행되지 못했다. 강원도가 갑자기 ‘곤돌라 존치’를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강원도는 2018년 1월 산림청 중앙산지위에 ‘곤돌라 존치’ 내용을 담은 복원계획서를 제출했다. 불과 1달 전 열린 추진단 결정사항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넣은 것이다. 중앙산지위는 강원도에 이 내용을 보완해서 다시 제출하라고 했고, 강원도는 다시 복원계획을 제출했지만 여전히 곤돌라는 존치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중앙산지위는 2018년 8월 “강원도가 제출한 보완계획은 당초 전면 복원에서 곤돌라 및 운영도로 일부 시설 존치로 변경됐다. 이는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환원이라는 목표와 맞지 않다”는 의견을 내며 재보완을 요청했다. 하지만 강원도는 같은해 12월 또다시 곤돌라 존치를 전제로 한 복원계획을 제출했고, 결국 가리왕산 생태복원 기본계획은 마련되지 못했다. 올림픽이 끝나면 전면 복원한다는 것을 전제로 보호림을 훼손해놓고, 올림픽이 끝나고 수 개월이 지나도록 전면 복원을 위한 계획조차 수립하지 못한 것이다.

2018년 촬영된 가리왕산 알파인스키 경기장. 정지윤 기자

2018년 촬영된 가리왕산 알파인스키 경기장. 정지윤 기자

■ “곤돌라는 전면복원 아니야” 수 차례 얘기해도 꿈쩍 안 한 강원도

그러다 2018년 12월31일자로 강원도의 국유림 사용허가기간이 끝났다.

산림청은 2019년 1월, 강원도에 가리왕산 복원명령을 통보했다. 산림청은 당시 “강원도와 전면복원에 대해 수차례 협의했지만 강원도에서 곤돌라와 운영도로 존치를 요구했다”며 “1월31일 이후에도 강원도의 전면복원 이행의사가 없을 경우 행정대집행법에 따라 산림청 주도 전면복원을 위한 행정절차에 돌입한다”고 했다.

원주지방환경청도 “(곤돌라는) 생태복원 방향과 부합되지 않는다”며 강원도에 계획서를 다시 내고, 그렇지 않을 경우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 미이행에 따른 조치를 적용하겠다고 경고했다. 곤돌라 철거와 별도로 개발사업 후 사후환경영향조사를 지대로 실시하지 않았다며 과태료 800만원을 부과했다.

■ 수 년에 걸쳐 몇 번씩 ‘곤돌라 철거 필요’ 결정 내려놓고도…역할 회피한 정부

버티던 강원도가 제시한 것은 ‘사회적 합의기구 구성’ 이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가리왕산 경기장을 어느 정도까지 복원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전면적 원상복구, 자연 복구, 부분복구 등 상당한 편차들의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는 명분을 들었다. 초기부터 환경 파괴 논란을 겪은 끝에 ‘전면복구’를 전제로 국유림 사용허가를 받아놓고 막상 복구를 할 때가 되자 이미 끝난 사회적 합의를 재검토 할 또다른 합의기구 구성을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강원도의 주장은 받아들여졌고, 결국 2019년 ‘가리왕산의 합리적 복원을 위한 협의회’가 구성됐다. 국무조정실을 주축으로 한 이 협의회는 2년 뒤인 2021년 6월, 강원도의 주장을 수용한 ‘곤돌라 존치’를 발표한다. ‘가리왕산 전면복원을 위해 곤돌라를 철거해야 한다’는 주요 관계부처들의 기존 입장과는 정반대의 결론이 나온 것이다. 2018년 12월 산림청이 낸 보도자료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강원도에서 곤돌라, 관리용 도로 존치 계획을 담은 ‘가리왕산 생태복원 기본계획을 최종 제출함에 따라 전면복원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곤돌라 존치는 전면복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가리왕산 복원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펼쳐놓고 있다. 정지윤 기자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가리왕산 복원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펼쳐놓고 있다. 정지윤 기자

■ ‘곤돌라 존치’ 하면서 ‘복원 착수’로 홍보

기존 입장과 이렇게 다른 결과를 내놓으면서 정부는 지난 11일 “가리왕산 알파인 경기장은 즉시 복원에 착수된다”고 홍보했다. 곤돌라 존치 이유로는 “복원에 앞서 복원계획을 수립하고, 묘목준비 등 사전준비가 필요하고, 올림픽 유산이라는 정선 지역주민의 요구를 감안”했다고 했다. 운영기간(2024년 12월31일)이 끝난 뒤 곤돌라 존치 여부에 대해서는 “정부는 향후 곤돌라 시설의 유지 여부를 검토해 결정하게 되는데, 이때 검토 기준, 방법 등은 정부에 일임된다”고 했다.

이제 가리왕산 복원을 위해서는 2017년에 했던 것과 같은 절차를 다시 반복해야 한다. 생태복원추진단을 꾸리고, 다시 가리왕산 복원기본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은 정부 발표 직후 성명서에서 이렇게 비판했다.

“가리왕산 전면 복원은 환경영향평가협의사항이며, 생태복원추진단이 합의했다. 모든 것을 법과 절차에 따라, 숙의 민주주의의 과정마저 완벽히 거쳐 합의한 가리왕산 전면복원 약속이 엎어졌다. 이 황망한 상황을 대변할 문장을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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