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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연 후원금 유용 의혹’ 3년, 한국사회에 무엇을 남겼나

2023.02.12 17:27 입력 2023.02.12 17:48 수정

지난 1월29일 서울 종로구 소송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주변에 경찰 펜스가 설치돼 있다. 정희완 기자

지난 1월29일 서울 종로구 소송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주변에 경찰 펜스가 설치돼 있다. 정희완 기자

정의기억연대(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후원금을 유용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미향 무소속 의원(59)이 지난 10일 1심에서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기소된 8개 혐의 중 업무상 횡령죄만 일부 인정했다. 사건은 2020년 5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윤 의원의 기부금 횡령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정의연 사태’의 후폭풍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은 1심 판결이고 ‘검찰의 무리한 기소였다’ ‘법원의 솜방망이 판결이다’는 상반된 비판이 나오지만 이 사건의 소비 방식과 정치적 활용 방식에 대해선 한번쯤 짚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운동권 정부 민낯’ 프레임에서 진보 시민단체 ‘돈줄 죄기’ 명분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이던 2020년 9월 이용수 할머니를 만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약속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 크게 보기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이던 2020년 9월 이용수 할머니를 만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약속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연 사태는 초기부터 빠르게 정치화됐다. 보수진영은 문재인 정부의 이중성과 운동권 엘리트의 부패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시’로 활용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정의연 사태를 언급하며 “시민단체의 공금 유용과 회계 부정을 방지할 수 있는 ‘윤미향 방지법’ 통과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윤 대통령 당선 직후 꾸려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제2의 윤미향 사태’를 막겠다고 했다.

정의연 사태는 정부가 진보 시민단체의 ‘돈줄’을 죄는 명분이 됐다. 지난해 12월 전국 243개 지자체는 자체 계획을 수립해 이달까지 시민단체에 지원한 지방보조금 사용 현황을 전수조사하기로 했다. 세금 누수를 줄인다는 명분을 들었으나 진보 성향 시민단체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은 정의연 사태를 두고 12일 “진보 NGO 단체들에 대한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된 첫 번째 사건”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서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민단체를 ‘다단계조직’ ‘시민 혈세를 뽑아내는 ATM 기계’ 등으로 표현하면서 매번 정의연 사태를 언급했다”며 “이런 발언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되면서 기업의 시민단체 후원이 절반 수준으로 줄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는 동안 정부가 정작 위안부 문제 해결에는 손을 놓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의연 후원금 유용 의혹을 맨 처음 제기한 이용수 할머니가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을 찾아 항의하는 일도 벌어졌다.

극우단체 ‘혐오 배출구’된 수요시위···피해 당사자와 활동가에 ‘트라우마’

지난해 9월14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561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건너편에서 엄마부대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위안부상 철거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해 9월14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561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건너편에서 엄마부대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위안부상 철거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정의연 사태 이후 30년 역사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알리기 운동의 동력은 크게 떨어졌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수요시위) 주변 풍경부터 달라졌다. 극우단체들은 2020년 6월부터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 소녀상 앞 집회신고를 선점했다. 수요시위가 열리는 낮 12시가 되면 확성기를 켜고 “위안부 사기극의 상징, 소녀상을 철거하라” “좌파 세력 척결”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일본에서는 ‘한국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상실했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정의연 사태는) 한미일 극우세력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 위안부 운동에 대한 후원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 활동도 위축됐다”며 “극우세력은 윤미향 개인에서 시작해 종국엔 위안부 피해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피해자 개개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한미경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는 “거대한 비리 단체로 지목되며 활동가들의 트라우마가 상당했다”면서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을 비롯해 부정적 보도가 쏟아지면서 활동가 심리지원도 진행됐다“고 말했다.

검찰이 ‘사기’ 지목한 시민단체 관행···재판부는 “문제 없다” 판단

윤미향 의원(무소속)이 지난 10일 서부지법에서 ‘정의연 후원금 횡령’ 사건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미향 의원(무소속)이 지난 10일 서부지법에서 ‘정의연 후원금 횡령’ 사건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각에선 시민운동에 대한 검찰의 몰이해가 무리한 기소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를 들어 1심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 등 명목으로 1억7000만원을 개인계좌로 모금한 혐의에 대해 무죄 판단을 내렸다. “장례식 특성상 일회적 활동에 그치기 때문에 김복동 할머니 시민사회장례위원회는 기부금품법상 사회단체, 친목단체로 보기 어렵다. 기부금품법에 따라 등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김복동 할머니의 상징성, 피고인 윤미향의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윤미향이 김복동 할머니 장례식을 시민사회장으로 진행하고 이에 따른 장례 비용을 김복동 할머니를 추모하고자 하는 시민들로부터 모집한 행위는 동기와 목적 상당성이 인정된다”면서 “시민사회장까지 형사 처벌의 영역으로 확대한다면 시민사회장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여성가족부 사업을 수행한 활동가들이 인건비 명목으로 받은 돈을 정대협에 기부한 것도 문제 삼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역시 무죄로 판단했다. 활동가들이 인건비 일부를 운영비가 부족한 시민단체에 기부하는 건 관행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볍지 않은 윤 의원의 잘못

물론 1심 판결에 따르더라도 윤 의원의 잘못은 가볍지 않다.

재판부는 윤 의원이 후원금을 개인 계좌 등에 보관하면서 사용처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금을 관리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십시일반 기부한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단체였기에 누구보다 후원금 관리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었는데도 피고인 윤미향은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채 범행을 저질렀다”며 “정대협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 영향력, 피고인 윤미향의 역할과 지위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인 윤미향의 죄책은 결코 가볍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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