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로, 처마 밑으로…‘기후 기본권’ 찾아 헤매는 취약계층

2023.08.01 06:00 입력 2023.08.02 18:42 수정

해마다 온열질환자 급증…80대 이상, 10만명당 6.4명 ‘최다’

전기요금 올라 에어컨 못 켜고, 카페는 자릿세 부담 못 가고

전문가 “기후위기 시대 생명권 차원서 냉방 대책 점검 필요”

<b>태양을 피하는 방법이라곤 이것뿐</b> 낮 최고 기온이 35도 안팎을 넘나드는 폭염이 이어지고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3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의 그늘 아래에서 노인들이 쉬고 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라곤 이것뿐 낮 최고 기온이 35도 안팎을 넘나드는 폭염이 이어지고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3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의 그늘 아래에서 노인들이 쉬고 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31일 오전 9시30분쯤, 서울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에서 만난 김모씨(79)는 신도림역에 다다르자 다른 노약자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곳에만 계속 앉아 있으면 답답하니까.”

김씨는 이따금 다리를 쭉 뻗으며 스트레칭을 하기도 했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한 김씨는 지하철 객차 안에서 2시간 동안 시간을 보낸 뒤 집에 돌아가 점심을 먹을 계획이라고 했다. “(밖은) 너무 더워서 숨이 막히잖아요. 경로당은 사람들과 계속 얘기해야 해서 불편하고요. 지하철은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주니까 자주 타요.”

폭염 경보가 내려진 지난 주말 경북 경산시, 문경시, 예천군 등에서 고령자 사망 소식이 이어졌다.

이날에도 서울 최고기온이 33도 넘게 오르는 등 더위가 꺾이지 않자 노인들은 냉방시설이나 그늘이 있는 곳을 찾았다.

카페, 식당 등의 ‘자릿세’를 내기 부담스러운 취약계층 노인들은 지하철, 경로당, 동네 처마 밑을 전전하며 여름을 버티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45분, 영등포구 영등포역사에서 만난 이모씨(78)는 백화점 연결통로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폭포 영상이 나오는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씨는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역사 내 대형 에어컨과 텔레비전이 있는 기차 대합실이나 백화점 입구 쪽은 이씨가 애용하는 곳이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인 이씨는 독거노인이다. “노인정에 가도 뭐(선물)라도 돌리는 분위기이고. 은행에 오래 있으면 눈치 보이고. 옷차림이 이래서 백화점에서 땀 식히긴 눈치가 보이니까요. 그냥 여기 앉아 있으면 돼요.”

북정마을은 성북구 북악산 자락 가파른 언덕에 있다. 이날 오전 11시, 김기순씨(94)와 안모씨(80·가명), 요양보호사 김경자씨가 마을 주택 처마 밑 그늘에서 햇볕을 피하고 있었다. 김기순씨와 안씨는 “에어컨 전기요금이 걱정돼 못 켜겠다”며 집 밖으로 나왔다.

김씨는 매일 오전 이곳을 찾고, 오후에는 집 안에서 선풍기 바람을 쐰다. 아들이 퇴근하고 집에 와서야 에어컨을 튼다.

허리에 복대를 차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김씨가 걸어서 마을 밖으로 가는 건 “꿈도 못 꾸는 일”이다. 냉방시설이 있는 지하철역, 은행, 주민센터 모두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먼 거리에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매년 5월20일부터 7월29일까지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2021년 910명(온열질환 추정 사망자 12명 포함), 2022년 1005명(추정 사망자 7명), 2023년 1015명(추정 사망자 10명)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인구 10만명당 온열질환자가 가장 많은 세대는 80대 이상(6.4명)이었다. 이어 70대(4.3명), 50대(4명), 60대(3.8명) 순이었다.

온열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 낮 시간대(낮 12시~오후 5시)에는 야외 작업과 운동을 자제하고 시원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 외출이 불가피하면 양산이나 모자 등으로 햇볕을 차단하는 게 좋다. 샤워를 자주 하고, 헐렁하고 밝은색의 가벼운 옷을 입으면 체온을 내릴 수 있다. 갈증이 없더라도 물을 규칙적으로 자주 마시는 것도 좋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는 “정부는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하고, 특히 기후위기 시대에 폭염으로 취약계층이 침해받고 있는 생명권과 건강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며 “지방자치단체는 어떤 곳이 취약한지, 무더위 쉼터가 실질적으로 기능을 하는 공간인지, 이용자들이 냉방시설이 있는 곳에 안 간다면 왜 그런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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