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태원 참사 1주기-(2)밝히지 못한 진실

검경 수사기록 곳곳에 등장하는 ‘대통령실’

2023.10.26 17:12 입력 2023.11.01 14:18 수정

이태원 참사 관련 수사보고서 및 피의자 신문 조서. 권도현 기자

이태원 참사 관련 수사보고서 및 피의자 신문 조서. 권도현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책임의 화살은 용산경찰서와 용산구청에 집중됐다. 참사 이후 구조 대응, 참사 이전의 안전 대비가 너무나도 부실했던 탓에 ‘왜 그럴 수밖에 없었나’라는 질문은 주목받지 못했다. 참사 직후 일선 경찰들 사이에서 ‘대통령실 이전 이후 업무가 과중했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윤희근 경찰청장은 “대통령실 이전이 이태원 참사의 직접적 이유가 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통령 경호실은 국정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후 하위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수사와 재판이 이어지면서 대통령실을 향한 관심도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경향신문이 입수한 검·경 수사기록 곳곳에는 대통령실이 등장한다. 대통령실 이전 이후 업무량이 크게 늘었다는 경찰·지자체 공무원들의 직접적인 진술도 여러 차례 확인됐다.

용산경찰서장, 이태원 현장 가면서도 “대통령 관저 괜찮나”

이태원 참사 관련 수사보고서 및 피의자 신문 조서. 권도현 기자

이태원 참사 관련 수사보고서 및 피의자 신문 조서. 권도현 기자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와 검찰의 수사기록을 보면,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참사 직전 이태원으로 향하면서도 한남동의 대통령 관저를 신경썼다. 아직 윤석열 대통령이 입주하기도 전이었다. 이 전 서장은 참사 당일 집회 관리·식사를 마치고 오후 9시47분 인근 식당에서 이태원파출소로 이동했다. 이 전 서장은 오후 10시쯤 녹사평역 인근에서 차가 막히자 운전 기사에게 대통령 관저 방향으로 우회할 것을 지시했다. 녹사평역에서 이태원 파출소까지의 거리는 불과 700m였다. 운전 요원은 검찰 조사에서 “서장님이 ‘차가 이렇게 밀리는데 대통령 관저는 이상이 없나. 대통령 관저 방향으로 돌아서 이태원파출소에 가자’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실제 관용차는 대통령 관저 쪽으로 갔다. 운전 요원은 “대통령 관저 쪽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차가 막히자 서장님이 ‘이태원을 가려는 차들 때문에 관저가 꽉 막혔다. 이럴 때 대통령이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방지책을 세워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 전 서장이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한 것은 참사 발생 후 40여분이 지난 오후 11시5분이었다.

수사관이 ‘인파가 몰리는 지점이 아닌 하얏트 호텔이나 한남역 쪽으로 우회한 것은 대통령 관저 부근의 교통상황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느냐’고 추궁하자 이 전 서장은 “이태원로 외에 다른 곳의 상황도 보려고 했었다. (관저 언급도) 앞으로 인근에 집회나 시위가 있으면 큰 문제가 아니냐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답했다.

정보 경찰·112 상황실 대원·구청 직원 모두 “대통령실 이전으로 업무 과부하”

이 전 서장만 대통령실을 신경쓴 것이 아니었다. 김진호 전 용산서 정보과장은 특수본 조사에서 “용산에 대통령실이 이전하면서 인근의 집회·시위를 관리하려고 온갖 노력을 했다”며 “폭증한 업무에도 직원들과 함께 불만 없이 자부심을 갖고 지내왔다. 평일은 사무실에서 숙식을 하고, 주말 저녁에 퇴근하면서 바쁘게 지냈다. 휴가는 하루도 가지 못했다”는 내용의 자필 진술을 남겼다.

경찰이 집회·시위 관리로 인력난에 시달렸다는 진술도 있었다. 서울청 112치안종합상황실 관계자는 “대통령 집무실이 이전하면서 용산서 지역 경찰이 경호에 많이 동원돼 힘들어한 적이 있다. 고충을 전해 듣고 용산서에 인력을 충원해준 적도 있다”고 진술했다. 정현욱 용산서 112상황실 운영지원팀장은 “지구촌 축제 때 서울청에 기동대 2개 중대 배치를 요청했는데 축제 당일 아침에 기동대 배치가 안 된다고 통보받았다. 그때 물어보니 ‘핼러윈 데이 때는 집회·시위 때문에 더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용산서 정보분석팀장은 참고인 진술에서 “용산서 인력 부족 문제는 2022년 5월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및 2022년 7월 경찰 하반기 인사 이후에 계속 언급됐던 문제였다. 하반기 인사에도 충분한 인력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며 “몇 차례에 걸쳐 각 기능별로 인력이 왜 부족하고, 얼마나 더 필요한지 보고한 적이 있다”고 했다.

해당 팀장은 “용산서에는 하나하나 꼼꼼히 챙겨야 할 현안이 있었다. 매주 집회가 열렸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나 대통령 출퇴근 같은 사안이 계속 있었다”며 “그러다 보니 서장이 이태원 핼러윈데이를 업무의 우선순위에 두지는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용산구청도 상황이 비슷했다. 용산구가 작성한 ‘종합상황실 운영 개선 문건’에는 “대통령실 이전 등 환경 변화에 따라 집회 행사로 현장 민원 처리 요청이 많아서 인력이 부족하고 처리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기재됐다.

이태원 참사 관련 수사보고서 및 피의자 신문 조서. 권도현 기자

이태원 참사 관련 수사보고서 및 피의자 신문 조서. 권도현 기자

참사 당일에도 대통령실 인근 집회에 총력 대응한 경찰·구청

참사 당일에도 구청과 경찰의 주요 관심사는 대통령실 인근 집회였다. 당시 촛불승리전환행동·신자유연대 등 4건의 집회가 삼각지역 인근에서 열렸다.

경비 경력은 집회로 쏠렸다. 이날 집회에 62개 부대(51개 경찰관기동대·3개 의경부대·지방청 8개 기동대)가, 핼러윈 교통 상황에 대비에 교통기동대 1개 제대(20명)가 배치됐다. 용산서 112상황실 운영지원팀장은 추가 인력지원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핼러윈 때는 집회·시위가 더 많아 지방에서 경찰관기동대까지 지원받는 상황이라 서울청에 기동대를 요청하더라도 지원받기 어렵겠다고 판단했다”고 진술했다.

정보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용산서 정보계 외근 및 내근 정보관 전원이 집회에 동원됐다. 이태원 축제에는 정보계 정보관 없이 외사계 정보관 두 명만 배치됐다. 이들의 업무는 외국인 관련 범죄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용산서 소속 정보관 A씨는 “핼러윈 때 이태원에 나가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더니 정보과장이 ‘주말이니 집회에 총력대응 해야 한다’고 했다”며 “정보관이 2~3명만 현장에 배치됐어도 이같은 참사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대통령실 이전의 영향도 직접 거론됐다. 김진호 전 용산서 정보과장은 수사관이 ‘이전에는 핼러윈 축제 때 정보관들이 배치되지 않았냐’고 묻자 “그건 대통령실이 이전되기 전의 일”이라며 “대통령실 이전으로 상황이 바뀌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정보기능의 주요 역할로 중요 시설·요인을 보호하는 것이 있다. 핼러윈 축제 당시 대통령실 근처에서 맞불 집회가 있었고 대통령실에 구체적인 위험성이 있는 상황이라 집회 관리에 집중했다”고 했다.

참사 당시 용산구청 종합상황실 직원들은 박 구청장의 지시로 집회 현장의 대통령 비방 전단을 수거했다. 당시 당직사령이었던 조모 주무관은 박 구청장의 공판에서 “대통령실 이전으로 불법 적치물이 많이 발생할 테니 경찰의 요청이 오면 같이 처리하라는 명령이 당직근무 공문서에 적혀 내려온다. 당일에도 전단지 제거 요청을 두 차례 받았다”고 진술했다.

2023.10.22 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합동 분향소.  권도현 기자

2023.10.22 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합동 분향소.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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