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몸은 몇점인가요? 점수로 표현되는 몸

2024.01.28 08:00 입력 2024.01.28 16:03 수정

③ 다름을 알려준, 장애가 있는 몸

김상희씨(오른쪽)가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으며 지하철역 개찰구로 향하고 있다. 뇌병변장애를 가지고 있는 김씨는 장애인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결과 3구간에 속해 월 420시간(하루 14시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김씨는 “내 몸을 정해진 항목에 우겨넣어 숫자로 도출하는, 취약성만 강조하는 지금의 체계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동훈 기자

김상희씨(오른쪽)가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으며 지하철역 개찰구로 향하고 있다. 뇌병변장애를 가지고 있는 김씨는 장애인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결과 3구간에 속해 월 420시간(하루 14시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김씨는 “내 몸을 정해진 항목에 우겨넣어 숫자로 도출하는, 취약성만 강조하는 지금의 체계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동훈 기자

장애가 있는 몸은 점수로 수치화되기도 한다. ‘장애인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종합조사)에 의해서다. 혼자 할 수 없는 게 많을수록 높은 점수가 매겨지고, 이 점수를 바탕으로 정부가 지원하는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결정된다. 점수를 매기는 가장 큰 이유는 행정적 편의 때문이다.

정부는 2019년 장애인을 1~6급으로 판정하는 장애인 등급제를 폐지했다. 의학적 손상으로 나누는 판정 기준이 너무 제한·획일적이라 사회보장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실은 폐지라기보다 단순화 또는 통합에 가까웠다. 여섯 단계를 ‘중증’과 ‘경증’ 두 단계로 바꾼 것이다. 그러면서 기존 1~3급만 받던 활동지원서비스의 대상을 등록장애인 전체로 확대했다. 활동지원서비스는 혼자 일상·사회 생활 등을 하기 힘든 장애인에게 매달 일정 시간 활동지원사를 통해 지원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서비스 시간, 즉 정부에서 지원받는 시간의 양은 종합조사로 결정된다. 조사 항목은 ‘일상생활동작(옷 갈아입기, 식사하기 등)’ ‘인지행동특성(주의력, 환각·망상 등)’ ‘사회활동(직장생활 등)’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각 항목의 점수를 합산해 15구간으로 나누고, 구간에 따라 차등 지원한다. 몇 구간에 속하는지에 따라 활동지원 시간이 정해지는데 구간마다 월 30시간씩 차이가 난다. 가장 높은 1구간은 월 480시간(하루 16시간)이고, 가장 낮은 15구간은 월 60시간(하루 2시간)을 지원받는다.

2023년 6월 기준 ‘장애인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15구간별 수급자 현황. 산정특례자 14,621명 포함힌 자료로, 산정특례는 인정조사 수급자가 종합조사 이후 급여가 감소한 경우 종전 인정조사급여 지급한 것을 말함.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제공 이미지 크게 보기

2023년 6월 기준 ‘장애인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15구간별 수급자 현황. 산정특례자 14,621명 포함힌 자료로, 산정특례는 인정조사 수급자가 종합조사 이후 급여가 감소한 경우 종전 인정조사급여 지급한 것을 말함.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제공

장애계에서는 공급자 중심의 종합조사 방식, 지원 시간·대상 확대 등 종합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무엇을 못하는지 기능 제한에 초점을 맞춘 조사는 피조사인에게 열패감을 줄 뿐 아니라 장애 유형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똑같은 항목으로 조사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지체 장애가 아무리 심해도 인지행동특성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 1구간에 속하기는 힘들다. 반대로 지적 장애 정도가 심해도 실내 이동과 같은 일상생활동작에서는 점수가 낮을 수밖에 없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혜영 의원실(더불어민주당) 자료를 보면, 지난해 6월 기준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이들은 14만2143명이었다. 82.6%는 12구간(하루 5시간)~15구간(하루 2시간)에 속했다. 하루 11시간 이상 받는 이들은 3.11%였고, 1구간에 속하는 이들은 24명(전체의 0.01%)에 불과했다.

서비스를 받는 이들도 부족한 지원 시간에 불만을 느꼈다. 한국장애인개발원 ‘2022 장애인삶 패널조사’를 보면 서비스 이용자의 97.3%가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고, 이들 중 46.7%가 추가로 월 80시간 이상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백인혁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정책국장은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 활동지원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이들은 현재 수급자의 2배가 넘는 40만명으로 추산된다”면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14만명에 속해도 다수는 최저 구간인 하루 2시간밖에 받지 못해 제도 자체가 예산에 맞춰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활동지원 시간은 삶의 질, 생존권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일률적 항목이 아닌 세밀하고 다원화된 수요자 중심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은 “장애인에게 활동지원 시간이 줄어드는 건 줄어든 시간만큼 삶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라며 “관리하고 통제하기 편한 비장애 중심적 관점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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