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자에게 걸림돌 되진 않겠다”···성폭력 수사·재판 ‘디딤돌’ 주인공들

2024.02.01 17:56

지난달 31일 오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시민감시단 시상식이 열렸다. 성폭력 피해자 인권 보장에 기여해 (특별)디딤돌로 선정된 손영남 울산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경위(맨 왼쪽), 이하나 대전경찰청 사이버수사과 이하나 경위, 이기림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활동가가 수상소감을 밝히고 있다. 전성협 제공

지난달 31일 오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시민감시단 시상식이 열렸다. 성폭력 피해자 인권 보장에 기여해 (특별)디딤돌로 선정된 손영남 울산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경위(맨 왼쪽), 이하나 대전경찰청 사이버수사과 이하나 경위, 이기림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활동가가 수상소감을 밝히고 있다. 전성협 제공

“앞으로 성범죄 피해자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수사하고 피해자 인권을 생각하겠습니다.”

지난달 31일 서울 동작구 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전성협) 시민감시단 시상식. 단상 위에 오른 여성 세 명이 꽃다발을 들고 수상소감을 밝히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주인공들은 이날 디딤돌상을 받은 울산경찰청 여성청소년과 손영남 경위, 대전경찰청 사이버수사과 이하나 경위와 특별디딤돌상을 받은 이기림 동행 활동가였다. 성범죄 피해자 인권 보장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은 이들은 “피해자가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성협 시민감시단은 2004년부터 전국 경찰서·검찰청·법원의 성폭력 사건 수사·재판 과정을 모니터링 했다. 피해 생존자의 인권을 보장한 이들은 ‘디딤돌’로, 침해한 기관은 ‘걸림돌’로 선정했다. 2023년 모니터링 결과로 디딤돌 10건, 걸림돌 6건, 특별디딤돌 2건, 특별걸림돌 1건이 선정됐다.

지적장애인 피해자의 특성 이해하고 공감한 경찰

손영남 울산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경위가 지난달 31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시민감시단 시상식에서 디딤돌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송이 기자

손영남 울산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경위가 지난달 31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시민감시단 시상식에서 디딤돌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송이 기자

손 경위는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인 중증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2년 동안 성폭행·강제추행한 사건을 지난해 3월부터 6개월간 수사했다. 피해자 증언이 불확실하고 물적 증거 대신 진술뿐이라 수사의 어려움이 컸다. 손 경위는 피해자의 일관되지 않거나 불명확한 진술에 매달리기보다,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모았다. 지적장애인인 피해자의 특성을 이해한 결과였다.

시민감시단은 “손 경위는 피해자가 조사 과정에서 심리적 괴로움을 호소하자 적극적으로 공감하며 피해자를 안정시켰다”며 “지적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기반으로 수사하고자 노력했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손 경위는 “피해자와 수시로 연락하며 평소 특성이 어떤지 듣고, 피해자가 거절하는 기준은 비장애인과 다르다는 점을 보이려 노력했다”며 “피해자를 돕고 싶은 마음이 컸던 사건인 만큼 도움이 돼 영광이고, 앞으로도 여성·청소년 사건을 수사하며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밝혔다.

디지털 성범죄 적극적 수사로 피해자 불안 줄여

이하나 대전경찰청 사이버수사과 경위가 지난달 31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시민감시단 시상식에서 디딤돌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송이 기자

이하나 대전경찰청 사이버수사과 경위가 지난달 31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시민감시단 시상식에서 디딤돌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송이 기자

이하나 경위는 피의자 추적이 어려운 디지털 성범죄를 적극적으로 수사해 디딤돌에 선정됐다. 이 경위는 피해자 사진이 게임 관련 해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포돼 욕설·성적 모욕·명예훼손을 당하던 사건에서 빠르게 피의자를 특정해 조사를 진행했다. 누가, 어떻게 촬영물을 퍼트렸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불안에 떨어야 하는 피해자의 고통과 불안을 줄이는 데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민감시단은 “이 경위는 유포된 피해자의 디지털 성폭력 촬영물을 (협력기관에) 직접 삭제 의뢰하기도 했다”면서 “삭제지원이 시급하게 필요한 디지털 성폭력을 적극적으로 사건화해 이끌어가는 수사관의 태도는 피해자에게 큰 안정을 주었다”고 했다.

이 경위는 “디지털 성폭력 범죄 수사는 신속하게 불상의 범인을 추적·검거하는 것부터 범인의 영상물을 압수하고 유포된 영상물을 삭제하기 위해 협조를 구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피해자 보호를 위한 노력은 당연한 일이었다”며 “앞으로도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피해자들이 다시 범죄 피해 이전의 자기 삶을 찾아갈 수 있도록 피해 회복에 도움 줄 것을 다짐하게 됐다”고 했다.

장애인 피해자가 사건 넘어 온전히 자립하도록

이기림 활동가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시민감시단 시상식에서 특별디딤돌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송이 기자

이기림 활동가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시민감시단 시상식에서 특별디딤돌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송이 기자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소속 이기림 활동가는 여성 발달장애인을 마을 주민 13명이 상습적으로 반복 강간한 사건에서 피해자 지원을 맡았다. 사건을 수사한 전남경찰청은 성폭력을 인정한 피의자 1명과 사망한 2명을 제외한 10명에 대해 전부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이 활동가는 경찰 수사에 이의제기하며 피해자 조력인 연대체를 꾸렸고, 이에 검찰은 보완 수사 명령이 아닌 직접 지휘를 결정했다.

이 활동가가 사건 지원 외에 장애인 피해자의 자립을 지원한 것도 공로로 인정됐다. 피해자를 자립생활 센터와 연계해 의사소통을 돕거나 이동 수단을 지원해 안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이 활동가는 “가해자 측이 명예훼손을 하는 등 사건이 이어지고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해자들의 유죄를 받아내겠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 ‘걸림돌’로 선정된 이들은 오지 않았다. 시민감시단은 2023년도 걸림돌로 전남경찰청 여청수사팀과 천안문 전주지검 검사 등을 선정했다. 전남청은 이기림 활동가가 지원한 사건을 수사하며 장애인 권익옹호 기관에 사건을 연계하지도 않고 장애에 대한 몰이해로 피해자의 권리보장을 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성폭행 피의자 10명을 불송치하면서 “피해자는 피의자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데도 회피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며 2차 가해를 하기도 했다.

천 검사는 직장 내 강제추행 사건을 가해자 관점에서 해석해 수사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천 검사는 피해자가 추행을 성폭력으로 인지했음에도 가해자를 폭행으로만 기소하며 불송치 이유서에 “고소인이 피의자의 언동에 불쾌감을 느낀 나머지 신체접촉 부위와 유형력 행사 정도를 다소 과장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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