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쉬라고 도입하는 ‘상병수당’…신청하다 더 아플 지경

2024.02.04 08:00 입력 2024.02.05 13:18 수정

④ 이대로도 괜찮은, 아픈 몸

13년 전 류마티스 관절염 진단을 받은 이혜정씨가 대학병원에서 처방받은 약과 건강보조제를 복용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13년 전 류마티스 관절염 진단을 받은 이혜정씨가 대학병원에서 처방받은 약과 건강보조제를 복용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살면서 한 번도 안 아플 수는 없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아프다고 밝히기는 쉽지 않다. 아프면 참는 게 먼저다. 아프다고 해도 도움을 받기 힘들고, 오히려 ‘잘못된 몸’ ‘쓸모없는 몸’으로 여겨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잘 아플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구성원의 인식이나 문화의 변화와 함께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보건의료·노동계에서는 잘 아플 수 있는 사회, 아프면 쉴 수 있는 사회를 위한 기본적인 제도로 ‘상병수당’을 꼽는다.

상병수당은 ‘부상이나 질병으로 아플 때 받는 돈’이다. 아파서 일을 못할 때,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정 부분 소득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이 제도는 여러 국가에서 시행 중이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2019년 기준 상병수당 제도가 있는 나라는 163개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한국과 미국만 이 제도가 없다. 다만 미국에선 뉴욕 등 일부 주 차원에서는 운영 중이다.

한국에서 상병수당 도입 논의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6년 도입을 권고했고, 2014년 국회에서 ‘상병휴직법’ 입법 시도가 있었지만 무산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치면서 이 제도의 도입 필요성이 다시 부각됐고, 정부는 2022년 ‘한국형 상병수당 제도’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3년의 시범사헙을 거쳐 내년에 본격 도입할 예정이다.

시범사업은 3단계로 진행 중이다. 여러 모형을 시험해 보고 결과를 최종 설계에 반영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시범사업 단계에서부터 우려가 쏟아졌다.

우선 상병수당 금액이 너무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든 모형에 적용하는 수당 금액은 최저임금의 60%(지난해 기준 하루 4만6180원)이다. 상병수당 제도를 도입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최저임금이 아닌 종전 소득의 50% 이상을 보장하는 것과 대비된다. 보장 기간도 90~120일로 상대적으로 짧다. 180일 이상 보장하는 국가가 대부분이다.

지원 대상도 너무 협소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1단계 지급 대상은 건강·고용보험 등에 가입된 취업자 등이다. 비정규직이나 5인 미만 영세 사업장 일부 노동자는 대상이 아니다. 2단계는 소득 조건이 추가돼 대상이 더 좁아졌다. 2단계 지원 대상은 ‘가구 합산 건강보험료 기준 중위소득 120% 이하’로 설정됐다. 지난해 기준 1인 가구는 월소득 249만3470원, 4인 가구는 648만1157원 보다 많으면 제외된다. 건강보험 급여는 소득과 상관없이 지급하는 것과 대비된다. 실효성 없는 보상, 까다로운 요건에 홍보도 제대로 되지 않아 지난해 책정된 시범사업 예산의 절반이 남았다.

어렵게 첫발을 뗀 상병수당 제도가 성공적으로 도입되려면 전반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홍조 건양의대 교수는 “지난해 시범사업 지역을 순회했는데 상병수당이 있는지도 모르는 노동자들이 많았다”라면서 “제도 취지나 의미뿐 아니라 상병수당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라는 걸 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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