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간첩 사건’ 억울한 옥살이…51년 만에 누명 벗은 고 최창일

2024.05.23 21:31 입력 2024.05.23 21:34 수정

박정희 정권 때 고초 겪어

재심 “인권침해” 무죄 선고

딸 “재판부 사과에 감사”

박정희 정부 때 재일동포 간첩으로 지목돼 장기간 옥살이한 고 최창일씨가 51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었다. 서울고법 13형사부(재판장 백강진)는 23일 ‘재일동포 간첩사건’ 주범으로 지목돼 복역했던 최씨의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사건에 대해 유죄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최씨의 재심 사건은 검찰이 상고하지 않으면 무죄로 확정된다.

최씨는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재일동포 2세로 태어났다. 도쿄대학교 자원개발공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한국의 탄광기업에 취업해 서울에서 근무하다 1973년 6월 육군 보안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에 끌려갔다. 보안사는 최씨에게 간첩활동을 하려고 입국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최씨의 신문조서에는 ‘북한에서 지령을 받았다’ 등의 자백이 담겼다. 법원은 1974년 최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최씨는 약 6년간 옥살이를 하고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돼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는 1998년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백강진 재판장은 선고에 앞서 “이 사건은 남북 분단이 빚어낸 이념 대립 속에서 한 사람의 지식인이자 성실한 가장이었던 최씨가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그가 간첩으로 기소돼 형이 확정되는 과정에서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가 돼야 할 사법부는 그 임무를 소홀히 했다”며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했던 대한민국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백 재판장은 “오늘 판결이 망인이 된 최창일 선생과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치유의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백 재판장은 사죄와 위로를 전하면서 잠시 목이 메기도 했다.

재판부는 최씨가 수사기관은 물론 법정에서 한 모든 진술에 대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최씨의 법정 진술은 수사기관에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본인의 뜻이 아닌 진술이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이에 대한 검사의 증명이 없다고 판단된다”며 “최씨의 1·2심 법정 진술도 증거능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씨의 딸 최지자씨(43·나카가와 도모코)는 2020년 1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지난해 11월 재심을 결정했다. 재심 사건에서 검찰은 당시 보안사가 불법수사를 했다고 하면서도 확보된 증거의 능력이 인정된다고 주장했고 최씨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오사카에 거주하는 딸 최지자씨는 이날 직접 재판정을 찾았다. 지자씨는 선고 뒤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재판장님께서 판결문을 읽기 전 저희 아픔에 대해 사과를 해주셨는데 대단히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자씨는 “판결 결과만으로 가족의 아픔이 치유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국가 차원에서 시민 한 명 한 명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지난 14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도 ‘재일동포 최창일 인권침해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하고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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