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피아] 🎓지하철 의자가 사라진 날 : 의자는 ‘사치’인가?

인스피아

🎓지하철 의자가 사라진 날 : 의자는 ‘사치’인가?

19분 2024.01.17

출퇴근 교통 지하철 의자 최선

지하철 의자가 사라진 날 : 의자는 ‘사치’인가?

The day seats disppeared from subway trains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112), 2024.1.17,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Archive)

웹에서 보기 Web link

※레터 하단에 빅토르 바자렐리 전시회 티켓 당첨자 관련 공지가 포함되어있습니다.

키워드: 출퇴근, 교통, 지하철, 의자, 최선

1.머리말

2.바퀴 위에서 달리는 인생의 몇시간들 : 출퇴근의 역사

3.출퇴근 시간도 ‘삶’이다 : 출근할 때 우리가 얻는 것

4.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5.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연구자님께선 새해를 잘 맞이하셨나요?

2024년 첫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2024 갑진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최근 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 4호선 일부 열차에서 ‘의자 없는 칸’ 시범 운영을 시작해서 주목을 모았습니다.(링크)

혼잡도가 높은 4호선에서 시범적으로 의자가 전혀 없는 칸을 시범 운영해보겠다는 것인데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지옥철’이 되는 시간대에 혼잡도를 줄이고 단위 시간 당 더 많은 승객을 싣기 위한 취지라고 합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지하철과 버스 위주의 통근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 소식을 접하고 나서 ‘왠지 모르게’ 기분이 여러번 착잡해졌습니다.

그 ‘왠지 모르게’에 대해 곰곰 생각해봤습니다. 아마도 핵심은, 직접 그 난장판 속에서 직접 부대끼는,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대책이라는 점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만약 대중교통 통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의자가 있지만 앉지 못하는 것’과 ‘의자가 아예 없는 것’은 다르다는 점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의자가 있는 것만으로도 아주 잠깐은 앉아서 조금 졸거나 책을 펼쳐보는 등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기는데요.

엄동설한 속 외투 없이 털모자만 쓰고서 울상이 되어 있는 사람에게 ‘넌 어차피 추우니까’라며 모자마저 벗겨가는 느낌이랄까요.

한편 꼭 저의 ‘실낱같은 희망’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런 정책은 출근 시간대엔 의자가 필요한 사람이 타지 않을 것이라는 무언의 전제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10일 4호선 일부 열차에 ‘의자 없는 칸’을 시범 운행했습니다. 출근 시간에 의자 없는 칸을 이용하고 있는 통근 승객들의 모습 (왼쪽) 퇴근 시간대 열차가 꽉 찬 모습 / 연합뉴스, 경향신문

과연 ‘사람을 많이 태우면 좋으니 의자를 없애자는 해결책’은 누구의 관점에서의 해결일까요? 그것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의자를 없앤다는 것은 단지 사소하고 좀 번거로운 구조물을 없애는 문제에 국한될까요? 우리가 통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 통근 경험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선 과연 어떤 관점의 접근이 필요할까요?

오늘 레터에서는 <통근하는 삶>(데이비드 비셸)과 <출퇴근의 역사>(이언 게이틀리) 등을 지팡이 삼아 ‘통근하는 시간’에 대한 해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바퀴 위에서 달리는 인생의 몇시간들 : 출퇴근의 역사】

매년 새해가 되면 몇몇 언론사들은 ‘버스 첫차 타기’ 르포를 하곤 합니다.(링크)

새해의 꼭두새벽부터 졸음과 희망을 안고 첫차에 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인데요. 다르게 말하면 ‘첫차를 타는 통근자들의 출근길 인터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굳이’ 고단한 출근길에 나서게 하는 것일까요?

미국 저술가 이언 게이틀리가 쓴 <출퇴근의 역사>는 ‘제목 그대로’ 19세기 출퇴근의 탄생부터 현재까지를 다룬 책인데요.

우선 우리에겐 너무나 친숙한, 장거리 ‘출퇴근’의 대중화는 19세기 이전엔 딱히 존재하지 않았던 현상입니다. 19세기부터 철도 등 교통이 발달하면서 먼 거리를 금세 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요.

19세기 초중반엔 1년치 열차 정기 탑승권 가격이 무려 ‘1년치 노동자 평균 급여 수준’(!)이었지만 가격이 내려가면서 기차 이동이 보편화되고1), 또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집에서 직장으로 먼 거리를 이동하게 된 것은 불과 100여 년 남짓 된 일입니다.

이언 게이틀리 <출퇴근의 역사> 책 표지 (왼쪽) 1869년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철도 앞에 모여든 사람들이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람 수송을 주된 목적으로 한) 철도 붐은 다른 나라로도 퍼져가기 시작하며 ‘출퇴근의 시대’를 열어젖혔습니다. / 책세상, Wikipedia

그런데, 사람들은 왜 출퇴근을 하게 되었을까요?

저자에 따르면 출퇴근의 핵심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움직임’입니다. ‘사는 곳(A)’에서 멀리 떨어진 ‘직장(B)’으로 매일같이 이동하는 것이죠. 대체로 최선의 직장과 최선의 주거지가 같은 곳에 있을 확률은 낮기 때문에, 여러 꼭지점들 사이에 최선의 타협을 하는 것이죠. 같은 조건이라면 조금 더 나은 주거 환경을 위해 더 긴 통근시간을 감내하거나 하는 식으로요.

교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이런 장거리 분리가 불가능했지만 19세기 이후 영국을 중심으로 철도 등 교통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집’과 ‘좀 더 나은 직장’을 함께 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사업 장소를 (런던) 중심가에 두고, 그곳에서 2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게 되었다[…]철도가 연결된 곳이면 대도시의 사방팔방 어디나 거주자가 곱절로 늘어났다”

-디오니시어스 리드너, <철도 경제학>(이언 게이틀리 <출퇴근의 역사>에서 재인용)

즉, ‘출퇴근의 역사’란 철도, 도시 발전의 역사와 맞물려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사람들의 열망의 역사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책에서 제가 흥미롭게 본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요. 핵심을 간단히 추려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더 나은 출퇴근’을 위한 노력의 역사 : #즐거운(?) 출퇴근

2) 출퇴근은 반드시 지옥인가? : #이동 본능

1) 우선 이 책에는 19세기 통근자, 여행자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출퇴근을 하면서도 - 동시에 ‘출퇴근’ 자체마저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이야기들이 담겨있습니다. 마치 삶이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사람들처럼요.

<출퇴근의 역사>에서 저자가 풀어놓는 출퇴근에 얽힌 이야기들은 꽤 흥미진진합니다. 일단 19~20세기엔 스마트폰이 없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매일같이 거주지에서 직장 사이를 옮겨다녀야 한다는 점과 이를 위해 정기적으로 일정 시간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 공간에서 보내야 한다는 점에선 본질적으로 오늘날의 출퇴근과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 동안 어떻게 해서든 그 시간을 덜 지루한 방법으로 채우기 위해 창의적으로 노력해왔죠.

저자는 19세기 미국의 통근 열차 풍경을 아래와 같이 묘사합니다.

미국의 통근자들은 이동 중 대화만 즐긴 것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놀이에 몰두했다[…]옷을 잘 차려입은 승객들이 책을 읽거나, 파이프 또는 시가를 피우거나, 아령을 들거나, 카드 놀이를 한다[…]중요한 카드 한장을 마무리하느라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언 게이틀리, <출퇴근의 역사>(이하 동일)

통근 열차에서 아령을 들었다니, 깜짝 놀랄만한 일이지만 조금 솔깃해지기도 합니다.

1862년 영국에서 출간된 <철도 여행자 안내서The Railway Traveller’s Handy Book>(정기권 이용자, 통근자 포함)에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기차의 엔진소리에 맞춰 콧노래를 부르거나, 다른 손님들과 대화를 하는 방법, 대화를 하지 않는 방법, 바람을 쐬러 나갔을 때 굴러 떨어지지 않고 바깥 풍경을 안전하게 감상하는 방법, 시끄럽게 하는 사람을 꾸중하는 방법, 친구 혹은 낯선 사람과 카드놀이를 하거나, 꿀잠자는 방법(1부터 1000까지 숫자를 세어 보세요...) 등의 팁이 가득합니다.

영국에서 1862년 철도 여행자들을 위한 에티켓, 팁 등을 꼼꼼하게 담은 실용서 <철도 여행자 안내서Railway Traveller’s Handy Book>. (왼쪽) 영국에서 1935년부터 간행되기 시작한 펭귄북스 역시, 출판인 알렌 레인이 애거서 크리스티 부부와 함께 열차 여행을 하던 중 ‘적당한 읽을거리’를 찾다 착상한 일화로 유명합니다. Amazon, Penguin books

물론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그 시대에도 ‘무언가를 보는’ 것이 지루함을 이기기 위한 좋은 방법이었고요.

이 때문에 철도 여행과 통근의 보편화는 기차에서 읽기 딱 좋은 판형의 ‘철도 문고’의 탄생과 문학의 유행, 심지어 나아가 문맹 퇴치에 커다란 공헌을 하기도 했죠.

파리의 출판인 루이 아셰트는 대화보다 인쇄물을 읽는 것을 선호하는 승객들의 습관을 보고 1852년 기차역에서의 책 판매 계획을 주요 철도 회사들에 제시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승객은 여정의 단조로움으로 인해 지루함을 느끼게 마련이고, 그런 지루함으로 인해 “마치 짐짝처럼 기계에 실려가는” 현실에 분노를 품게 되며 그 분노는 결국 철도 회사를 향하게 될 거라고 했다[...]선별된 읽을거리가 있으면 승객 역시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20세기 초중반부터는 교외와 도시를 잇는 기차 외에도, 교외에서 기차를 타고 유입된 노동자들을 도심의 각 공장, 일터로 실어나르는 ‘도심 순환선’(지하철, 버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아래의 대목을 보면서는 오늘날 출근 시간 가산디지털단지역이라든지 여의도역, 광화문역 등에서 일제히 내리는 각기 다른 차림의 직장인들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영국) 버밍엄의 8번 노선인 ‘내부 순환 노선’은 이 시기(1950년대)에 “가장 상징적인 버스 노선”이라 할 만했다. 이 노선에는 “이른바 ‘노동자 특별 노선’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다수의 공장과 작업장을 지나가기 때문이었다” 이 노선 인근에는 솔틀리 가스 공장, 앤셀스 양조장, HP소스 공장 같은 산업시설들이 있어서 “냄새 만으로도 지금 8번 노선의 어디에 와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2) 이어 저는 ‘출퇴근은 반드시 지옥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저자의 참신한 답변에 주목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람들은 실은 통근을 꽤 좋아하기도 했다(?)”란 점을 다양한 연구, 문헌을 통해 언급하고 있는데요.

당연히 머리가 갸웃해지는 낯선 이야기입니다만, 로알드 달은 <달리는 폭슬리>(1953)에서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빌어 아래와 같이 ‘통근의 즐거움’에 대해 예찬하기도 했습니다. 요는 ‘직주분리’를 통해 일과 여가를 확실히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죠.

“나는 언제나 통근을 좋아했다. 그 짧은 여정의 모든 단계가 나에게는 기쁨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일에는 습관을 지키는 사람이 동의할 만하고 편안하게 느낄만한 규칙성이 있었다. 게다가 그 일은 나를 매일의 업무 일과라는 물속으로 부드럽지만 확실하게 진수시키는 일종의 경사로 노릇을 해주었다.”

-로알드 달, <달리는 폭슬리>

어쩌면 이런 ‘정기적인 통근’은 인간의 본능일 수도 있습니다.

물리학자인 체사레 마르케티는 ‘마르케티 상수(링크)’라는 개념을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고대 그리스 시대건, 어떤 이동수단을 이용하건 - 역사적으로 인류가 하루에 ‘집’과 ‘일터’를 오가는 시간은 약 1시간 정도로 동일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르케티 상수는 국가를 불문하고 대체로 오늘날의 출퇴근 시간에도 적용된다고 하네요.

2001년 베이 에어리어Bay Area 통근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이상적인 통근 시간은 0보다 큰 시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도 하고요.

다만 국내외 통근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통근 시간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만족도가 크게 하락하는 반비례 그래프가 나타나곤 합니다. (링크)

즉, 통근 자체를 싫어한다기보다는 ‘어떤(얼마나 긴) 통근’이냐가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죠.

1)19세기 영국에서 기찻삯이 저렴해진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엄연히 1등석, 2등석, 3등석의 구분이 보편적이었고요(1862년 출간된 <철도 여행자 안내서>에 따르면, 1등석 티켓 값은 2등석의 약 1.3배 정도고, 3등석의 2배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3등석 티켓도 결코 저렴했다곤 볼 수 없었겠죠.).

다만 <출퇴근의 역사>에 따르면 19세기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도시의 생활환경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또 더 많은 노동자가 필요해지면서 도시의 인구를 교외로 이동시키는 동시에 더 많은 노동자들을 도심의 직장으로 유입시킬 필요성이 높아져, 1883년 영국 정부는 ‘염가열차법’을 만들어 등급 구분을 억제하고 노동자들을 위한 저렴한 통근 열차를 확보하기 위해 고심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민간업체를 설득하는 것에 한계가 있어 정부 차원에서 이런 열차들을 운영하기 시작한 게 공공교통의 시초라고 하죠.

【3.출퇴근 시간도 ‘삶’이다 : 출근할 때 우리가 얻는 것】

이처럼 역사적으로 ‘출퇴근 선배’들은 통근 시간을 어떻게 지루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즐겁게 보낼지를 고민해왔습니다. 덜컹거리고 시끄럽고 정신없는 와중에서도요.

오늘날 수도권 통근자들은 하루 평균 83분을 출퇴근을 하며 보낸다고 합니다.(출처)

그렇다면 우리 역시 매일같이 반복되는 이 ‘삶’을 ‘어떻게 잘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순 없을 것입니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비셸은 ‘출퇴근 지옥’이라는 고단하고 딱딱한 판넬에서 ‘출퇴근하는 삶’을 건져내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데이비드 비셸이 쓴 <통근하는 삶>은 시야를 현재로 돌려 ‘통근하는 삶’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다룬 흥미로운 책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50명이 넘는 각양각색의 통근자들을 심층 인터뷰하고 현장조사를 하는 것을 통해 현대 통근자들의 다채로운 삶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았는데요.

핵심은 “(우리는 대체로 어쩔 수없이 통근하지만) 통근을 통해서 수많은 의식적, 무의식적 경험을 얻고 교류하고, 또 이를 바탕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통근은 그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가? 일상의 이동이 우리의 삶을 수개월, 수년 그리고 일생동안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의 문제는 여전히 적절한 답이 필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이 책의 의도는 우리가 통근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통근을[...]피해야 하는 하찮음으로 상상하기보다 이 책은 통근에서 마주치는 사건과 조우가 이 경계선 혹은 사이의 영역에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핵심적 요소임을 조명한다. 그 경계의 지역에서는 우리의 삶 자체인 긴장과 모순, 다양한 영향력과 욕망이 때로는 화려하게, 때로는 수수하게, 하지만 항상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전면에 등장한다.

-데이비드 비셸, <통근하는 삶>(이하 동일)

이 때문에 통근을 단순히 ‘지옥’으로만 보기보다는, 실질적으로 통근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섬세하게 바라보아야 ‘통근을 실질적으로 더 낫게’ 만드는 올바른 정책과 실천들을 제안하고 실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죠.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우리가 통근 과정에서 시도하고 받아들이는 행동과 경험들에 대한 것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출퇴근 길에서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시간을 다양한 경험으로 채운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우선 의식적으로 시간을 채우는 것에 대해서 짧게 짚고 넘어가보자면, 출퇴근 시간에도 할 수 있는 할 일들(하루 회상, 스마트폰 보기, 독서, 딴 생각 등)을 하는 것이죠. 혹은 각별하게 관찰을 하거나요.

1960년대 뉴욕 지하철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는 한 연주자, 그리고 사람들은 구경하거나 신문을 보는 등 제각기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왼쪽) 과거 지하철에서 책 읽기 플래시몹을 진행한 한 독서단체 회원들의 모습. 이들은 “지하철의 미세한 움직임과 사람들의 말소리가 책 읽는 데 집중력을 높인다”며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는 측면이나 독서공간으로, 지하철만한 곳이 없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 Walker Evans(링크), 책읽는지하철

이동시간이 반드시 낭비되는 시간은 아니다. 개인용 휴대 기기의 대중적 보급은 이동 중에 수행될 수 있는 일들의 한계를 변경하여, 우리의 통근 시간 경험까지 변화시켰다[…]”본질적으로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1시간 반입니다[…]사회경제적 배경에서 제가 관심이 있는 것, 종교 대 과학 같은 것을 보려고 합니다.”[…]어떤 사람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 테스트나 과제 채점같은 집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한다고 했다. 미디어 이론가 멜리사 그렉Melissa Gregg은 모바일 기술의 등장이 가정과 직장의 경계를 침범하고 모호하게 만들지만,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이 가정과 직장을 분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그녀는 기차를 타는 동안 가장 긴급하고 기차를 타지 않았다면 집에서 처리했어야 할 일을 처리한다고 말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저는 과거 한 작가가 독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휴일에도 일부러 지하철을 타서 책을 읽는다는 에피소드가 떠올랐습니다. 아예 출퇴근 시간에 엄지로 틈틈이 쓴 글들로 책을 낸 작가도 있다고 합니다.(링크)

저는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출퇴근길 버스에선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보거나, 딴 생각을 곰곰 떠올려보기도 합니다. 만약 앉을 수 있다면 가끔 메모를 해야 하는 책을 읽기도 하는데, 여튼 이처럼 출퇴근 시간은 생각보다 이런저런 일들을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물론 지나치게 붐비면 이런 생각 대신 ‘생존모드’로 돌입하기도 하지만요.

이어서 무의식적인 시간 채우기에 대해서입니다.

우리는 의식하진 않지만 통근길은 사실 우리가 많은 의도하지 않은 정보들을 흡수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통근 과정에서 굳이 만날 일이 없는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나이대와 국적, 유형의 사람들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풍경이나 광고를 보고, 옆 사람이 어떤 웹툰을 보는지를 보고, 어떤 대화는 귀에 들어와 박히는 등...혹은 그저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죠. 이런 것들은 부지불식 간에, 우리의 경험과 사고 형성에 큰 영향을 줍니다.

저는 이런 대목을 읽으며 이전에 읽었던 데이비드 색스의 책 <디지털이 할 수 없는 것들The Future Is Analog>이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그는 이 책에서 독특하게도, 재택근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무실’ 뿐 아니라 ‘사무실 가는 길’에 대해서도 주목한 바 있습니다.

Diana Wu David는 아날로그 일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부분은 바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출퇴근길이라고 했다. “출퇴근 길에는 어떤 일을 깊이 생각할 시간,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주어집니다[…]부지불식간에 들어오는 무수한 정보가 우리의 뇌를 자극하고 아이디어를 끌어내고 외부 세계에 대한 감각을 제공합니다[…]이런 정보는 동떨어진 사물과 사람 사이의 점들을 연결해서 우리의 가능성을 일깨워줍니다.”

- 데이비드 색스, <디지털이 할 수 없는 것들> 중

사무실 가는 길이 단순히 ‘길바닥에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평소와 다른 리듬으로 낯선 정보를 받아들일 기회가 된다는 것이죠.

이는 비단 생산적인 활동 뿐 아니라 타자, 사회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교통Traffic>을 쓴 미국 저널리스트 톰 밴터빌트는 “무작위의 사람들을 격리되고 관찰 가능한 환경에 모이게 하는 지하철은, 인간 행동을 연구하기 위한 완벽한 실험실”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링크).

물론 이런 ‘의도하지 않은 맞닥뜨림(조우)’ 가운데 우리에게 안전하고, 영감을 일으키는 것만 있을리는 없습니다. 저자는 어떻게하면 출퇴근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에 부딪히며 생겨나는 갈등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주목하는데요.

우리는 ‘멍’ 때린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대중교통을 타거나 거리를 걸으며 굉장히 많은 ‘정보’들을 해찰하게 됩니다. (왼쪽) 지하철 의자에서 숙면을 취하고 있는 한 승객의 모습. 도시사회학자 송도영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시간은 이제 ‘자투리 시간’이나 ‘버리는 시간’으로 넘겨버리기에는 너무 중요한 것이 되었다”며 지하철 풍경에 돋보기를 가져다대기도 했는데요.(링크) 우리는 대중교통에서 다양한 타자를 접하고, 또 거기에 반응합니다. / Unsplash, 경향신문

예를 들어 이 책에서 꽤 인상적으로 읽었던 대목은 자전거 통근자를 위한 ‘현명한 자전거 타기Bikewise 강좌’와 관련된 이야기였는데요. 간단하게 말해, 어떻게 통근길에 다른 운전자들과 정확히 소통하고, 도로의 한 주체로 움직일 수 있는지와 관련된 스킬입니다.

관련 대목을 짧게 옮겨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길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 말할 거예요[…]적개심과 갈등에 대한 많은 서사들이 있어요[…]누군가의 실수를 악의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화를 내게 되지요. 화난 상태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갈등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냅니다. 거기서부터 상승작용이 일어나요[…]현명한 자전거 타기 강좌를 듣기 전과 후의 큰 차이는 ‘우아하게 자전거타기’라고 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롭은 이것이 예의바르거나 자동차에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성향을 키워 나가는 것이라고 즉시 덧붙인다[…]’근본적인’ 교통 기반 시설의 변화가 많이 필요함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의 강좌가 유용한 점은 “갈등의 많은 부분은 내가 통제할 수 있고 내 선택을 통해 경감시킬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자신감을 보이면 사람들은 우리를 신뢰하게 됩니다.”

-데이비드 비셀, <통근하는 삶>(이하 동일)

이는 ‘운전’의 이야기지만(그리고 물론 운전으로 통근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본질적으로 대중교통 통근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도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통근하는 동안 다른 동료 시민들과 갈등을 겪고, 나름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스킬을 익히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무조건 양보만 하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나의 의사를 표현하고 타인을 존중하며 서로 타협해가는 과정입니다.

이런 기술은 직접 서로 어울려보지 않는 이상 익히기가 어렵겠죠.

【4.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철도 여행의 전체 시스템이 겨냥하는 대상은 서두르는 사람, 따라서 결국에는 비참해질 사람 뿐이다[…]철도는[…]여행자였던 인간을 졸지에 살아있는 소포로 변모시켰다.”-존 러스킨, (1849)

이상의 책들에서 제가 주목한 핵심 메시지는, ‘출퇴근도 삶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으며, 상황에 따라 다양한 빛깔을 품고 있죠. 누군가는, 그리고 어느 때는 출퇴근을 하며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거나 친절한 사람의 호의를 받는 즐거운 경험을 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곤죽이 된 기분으로 현관 신발장에 쓰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연 ‘출퇴근도 삶’이라는 말이, ‘출퇴근엔 좋은 점도 있으니까 아무리 나쁜 조건이라도 버텨!’라는 이야기로 연결될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출퇴근도 삶이다’라는 관점으로 볼 때, 우리가 커다란 정책 안에서 우리를 한개의 ‘짐짝’으로 여겨지지 않고 -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한 정책적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출퇴근도 삶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 삶을 의미있게 만들 수 있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 기본은 승객들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대중교통 안에서도 안전과 다양한 활동을 할 권리를 보장받는 일입니다.

새벽 네시 경 버스 첫차에 오른 승객들은 제각기 웅크려 앉아 부족한 잠을 살풋 청하거나 냉기어린 창문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항상 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앉을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은 늘어납니다.(왼쪽) 한국은 전체 인구 대비 수도권 인구 비중이 절반을 넘어갑니다. 밀집도가 높을수록 통근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강래 교수는 이 때문에 기존 수도권이 아닌 다른 지역에 메가시티를 조성하는 것을 통해 균형발전, 교통혼잡 완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링크) / 경향신문

이와 관련해 제가 <통근하는 삶>을 읽다가 인상적으로 보았던 한 대목을 옮겨보겠습니다. 통근 기차의 좌석이 바뀐 것과 관련해 불만을 표출하는 한 탑승객의 한탄입니다.

새로운 기차 좌석은 멋지지만, 자기에는 적당치 않다. 푹신한 초록색 가죽 좌석은 바로 잠에 빠져들 수 있는 오래된 “양철 캔” 객차 좌석과 각도가 살짝 다르다. 좌석은 딱딱하고 불편하다. “이 좌석을 디자인한 사람은 분명 여기에 하루 4시간씩 앉아있지 않겠지!”

열차에 좌석이 몇 개 있고, 어떻게 생겼고(링크), 자리가 났을 때 어디에 앉을 것이며(링크), 서 있어야 할 경우 어디쯤에 자리잡을 것이며(링크), 손잡이는 얼마나 갖춰져있고(링크), 무거운 짐을 놓을 수 있는 선반은 얼마나 있고(링크), 줄 서는 곳은 어떻게 되어있고(링크)... 등의 문제는 매일 같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탑승객 입장’에서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정부 차원에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 필요할 것입니다.

<통근하는 삶>에서 한 출퇴근길 교통 라디오 진행자는 인상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은 (도로가 막히는) 피크 시간이 5시부터 시작됩니다. 예전에는 6시, 그전에는 7시였는데 말이죠 […] ”지연의 중요한 부분은 남서부에서 더 먼 서쪽까지 간선도로가 확장됐기 때문이죠.” 그는 이것이 도시의 주택 가격 상승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즉, 교외가 확장될 수록 교통 정체는 더 심해졌고 더 많은 시간을 운전해야만 출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아도, 통근자 수가 2000년 기준 1720만명에서 2329만명(2020년 기준)이 되는 동안 1시간 이상 통근자 비율도 함께 늘었죠. (링크)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교통 정책은 ‘통근자의 삶’보다는 이동량에 더 관심이 많고, 더 도시가 ‘발전’할 수록 통근자의 삶은 최악으로 치닫는 연쇄고리가 이어질 뿐입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길고 험난한 통근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집값이 높은 도심에 살 수 없어 밀려난 이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역시 교외를 더 확장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겠죠.

【5.맺음말】

오늘 레터에서 살펴본 것처럼 실은 출퇴근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해온 역사입니다.

회사와 집이 같은 곳이 아닌 이상에야, 혹은 일을 그만둘 게 아닌 이상에야 출퇴근 자체를 없애는 것은 대체로 불가능합니다.

통상 ‘통근지옥’ ‘출퇴근 시간은 길바닥에 버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만, 저는 오늘 레터에서 ‘출퇴근’을 우리의 ‘삶’의 일부로 바라보는 관점을 채택해보았습니다. 그런 시각이 오히려 우리에게 출퇴근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 모두의 출퇴근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선 어떤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지에 대한 답을 제공해주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또한 이는 ‘의자 없는 칸을 버텨라’라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출퇴근 길의 의자 혹은 그것을 넘어선 무언가를 사수해가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코로나를 거치며 한때 재택근무가 일반화될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지만,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근을 지속해가고 있습니다. 오늘 레터를 쓰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출퇴근 시간은 그저 길바닥에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엄연히 우리의 삶’이라는 것, 그것도 하루를 열고 닫는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완벽한 일자리’나 ‘완벽한 삶’이 존재할 수 없듯, ‘완벽한 통근’이란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통근을 단순히 ‘소모’로만 보고 ‘효율’의 관점에서만 보는 것과, 통근 시간마저도 우리의 삶의 일부로 바라보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통근자가 통근 시간 역시 자신의 ‘삶’으로서 활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통근 시간은 분명 때로 졸리고 고단하고 지루하고, 착잡합니다. 놀이 시간을 제외한 우리의 다른 삶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납작하게 짜부라트려져도 좋은 시간은 아닙니다.

의자가 있고 없고는 단순한 차이가 아닌 것입니다.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이언 게이틀리, 박중서 옮김, 『출퇴근의 역사』, 책세상, 2016.

-19세기 이후 출퇴근의 역사를 다룬 책입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있고 각각 과거 / 현재 / 미래로 나뉜다고 할 수 있는데요. 오늘 레터에선 이중 1부에 주로 집중을 해보았습니다. 실제로 1부를 제가 가장 흥미롭게 보기도 했고요. 오늘 레터를 쓰면서 ‘출퇴근’을 곧 ‘더 나은 삶을 향한 움직임’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어서 느낌표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물론 출퇴근의 본질은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어쩔 수없이’ ‘이것 밖에 선택지가 없어서’인 경우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되겠죠.

오늘 레터에선 주로 대중교통 출퇴근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아래 데이비드 비셸의 책과 이언 게이틀리의 책 모두에서 드라이브 출퇴근(자동차-‘(라디오)청취 공동체’ 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니 흥미가 있으신 분들은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데이비드 비셀, 박광형 외 옮김, 『통근하는 삶』, 앨피, 2019.

-<출퇴근의 역사>가 조금 더 과거에 큰 비중을 두었다면, <통근하는 삶>은 오늘날 (호주 시드니) 실제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 혹은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교통 방송 진행자 등)을 심층 인터뷰해 모자이크를 통해 오늘날 통근이 현대인에게 갖는 의미를 고찰해보게 해주는 책입니다. 비록 시드니의 사례를 주로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상당부분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될만한 내용들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레터에서 많이 다루진 못했지만, 이 책에서는 ‘일정정도(역치)’를 넘지 않는 한에서는 오히려 출퇴근은 인류의 이동 본능과도 연결되어있으며,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출퇴근의 역사>에서도 관련 내용이 짧게 등장합니다) 저는 아무래도 이런 대목을 보면서 계속 노동에 대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실은 노동 역시 적정한 수준으로, 나의 삶과 균형을 이루며 즐겁게 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나쁘다고 볼 순 없지 않을까...이렇게 생각하다보면 결국은 세상의 많은 일들은 ‘균형’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Osprey Publishing, 『The Railway Traveller’s Handy Book』, 1862.(Internet Archive)

-빅토리아 시대 영국 철도 여행자들을 위한, 열차 이용에 대해 다룬 실용서인 <철도 이용자 안내서>입니다. 여행자들이 실제 들고다니면서 간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한만큼 간결하고 평이한 어투로,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팁을 적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상황과 다른 부분들이 눈에 띄어 흥미로운데, 실은 그 안의 사람들의 ‘삶(지루해하거나 졸거나, 망신당하는 걸 싫어하는 등)’은 그렇게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 속 한 문장🖍】

👤주제에 대해 더 읽을 만한 글들을 골랐습니다. 각 사진을 누르면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출퇴근지옥’에 갇힌 사람들

기획 시리즈

🖍글 속 한 문장

정인철 아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논문 ‘한국의 지역 차에 따른 통근시간과 주관적 웰빙의 연관성’(2023)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출퇴근 시간은 58분으로 OECD 국가들 평균의 두 배(26분)가 넘는다. 동시에 한국은 관련 연구의 조사 대상인 23개국 가운데 웰빙지수가 가장 낮고 우울증 유병률이 가장 높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출퇴근 지옥’이라는 제하의 지난해 중앙일보 기획입니다. 출퇴근 관련해서 심도있는 분석을 진행한 기획이고요. 통근자들의 고단한 삶과 그로 인해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들, 정책적 진단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실제로 장거리 통근자들의 경로를 따라가보며, 숨막히는 통근길을 묘사한 기사 등을 통해 장거리 통근의 고단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분명 오늘 레터에서 다뤘듯 통근 동안의 시간 역시 우리의 ‘삶’으로서 존중받아야 하고 또 우리는 그 시간을 어떻게든 활용하지만, ‘일정 정도 이상’의 고단함을 사실상 강요하는 사회가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책이 할 일은 통근자들의 입장에서 감당 가능한 수준의 통근을 보장하는 것이겠죠. 나아가 이는 '교통' 뿐 아니라 도시, 노동, 양육 조건 등 전반에 이어진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는 ‘사무실’ 말고 ‘통근’을 싫어한다

NYT(영문)

🖍글 속 한 문장

“만약 출퇴근 시간을 없앤다면 직장에서의 삶과 그들의 남은 시간 동안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Liberty Street Economics는 작년 미국인들이 통근하는 데 하루 6000만 시간을 덜 쓰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들은 이제 운동하고, 자녀를 돌보고, 조금 더 자고, 하루를 더 일찍 시작하거나 늦게 끝낼 수 있는 데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NYT 칼럼니스트 Farhad Manjoo가 지난해 사무실과 통근에 대해 쓴 칼럼입니다. 통상 재택근무와 관련해 '사무실'이라는 공간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칼럼에서는 '통근'에도 주목한 점이 신선해서 북마크를 해두었었습니다.

칼럼보다도 오히려 댓글이 흥미로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아닌데? 사무실도 싫고 통근도 싫은데?"고요(...) 곰곰 댓글들을 쭉 읽어가다보면 결국 그 기저에는 "나쁜 통근과 나쁜 사무실이 싫다"로 의견이 모이는 부분 역시 흥미롭습니다. ‘통근이 싫다’와 ‘나쁜 통근이 싫다’는 얼핏 보기엔 비슷해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고 저는 오늘 레터에서 그 미세한 차이에 돋보기를 대어보고 싶었습니다.

이 칼럼을 읽으면서는 '사무실'과 재택근무에 대해 해찰해보았던 지난 레터(✉️)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지하철과 비시민...“혹시 시민이세요?”

독서시간: 약 6분 / 글자수: 약 2900자

🖍글 속 한 문장

“경찰관은 내게도 다가와 다그치듯 물었다. “지금 나갈 거요, 여기 있을 거요?” 피켓도 없고 ‘이동권 보장’이라고 적힌 마스크도 쓰지 않은 비장애인. 뭔가 신경이 쓰였는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공손하게 다시 물었다. “혹시 시민이세요?” 생물종으로는 똑같은 인간인데 한쪽은 물건이고 다른 쪽은 시민이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고병권의 칼럼입니다. 오늘 레터는 일단 ‘출퇴근’이라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관련 내용을 주로 다루었습니다만, 오늘 레터를 쓰면서 계속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효율’만 생각하는 태도, 이때 ‘기준’에 못미치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이용 자격을 박탈당하고 또 ‘조금의 불편’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최대한 감내하라는 정책 방향이 - 겉보기엔 달라보일 수도 있는 다양한 많은 문제들을 낳고 있는 근본 원인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정부는 ‘러시아워의 통근자 승객 vs 장애인’이라는 구도를 만들어왔지만, 박경석 대표는 지난 10월 인터뷰에서 지하철 리프트, 엘리베이터의 설치 등의 성과와 이어진 투쟁들을 ‘비장애인에게 주는 선물(링크)’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싱가폴서 실패한 ‘의자 없는 칸’

독서시간: 약 5분 / 글자수: 약 2300자

🖍글 속 한 문장

혼잡도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혼잡한 시간에 지하철 운행 횟수를 늘리는 겁니다. 비용이 문제라고 하는데 개인이 타고 다니는 전기 자동차를 살 때 세금으로 수백만 원의 지원금을 주는 정부와 지자체가 대중교통에 세금을 지원하는 건 왜 그리 아까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싱가포르는 지하철 탑승 시간을 기준으로 오전 7시 45분 이전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모든 승객에게 500원을 할인해 주고 있습니다. 의자를 없애는 식으로 채찍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요금을 깎는 식으로 당근을 주는 겁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2017년 싱가포르는 이미 같은 이유(=피크 시간 혼잡도 낮추기)로 의자 없는 칸 실험을 했었고, 이는 실패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안전상, 승객 편의상 등의 문제였는데요. 접이식 의자가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지만, 사실상 항상 펼쳐져있었기 때문에 유명무실했다고 합니다. 대신 피크시간 외의 시간에 탈 경우 할인을 해서 7%까지 혼잡도를 줄였다고 하네요.

당연히 위험을 막기 위해 혼잡도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접근 관점과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 기사를 읽으며 느꼈습니다.

👥빅토르 바자렐리 전시 당첨자 공지

지난 레터에서 공지한 빅토르 바자렐리 전시회 티켓 당첨자 분들을 공개합니다.

(이름 혹은 닉네임 일부 / 전화번호 뒷자리)

<당첨자>(총 20명 * 1인 2매)

김*기 6059
얼 1936
정*현 8156
러**릭 1620
김*우 3885
정*원 8365
조*민 5151
최*림 6600
김*헌 1826
강*호 3082

이*중 3307
달***음 5612
승* 5175
오*진 0418
조*영 2833
김*운 8197
옝 2171
서*비 5578
A***n 6844
이*지 8581

당첨자분들께는 문자로도 따로 공지가 갈 예정입니다만, 당첨자분들은 이후 문자 회신이나 이메일(khnewsletterkh@gmail.com)을 통해, 확인용 본인 성함(혹은 닉네임)과 전화번호 / 실물티켓을 받으실 주소를 오는 22일(월)까지 적어주시면 취합 후 일괄 배송하도록 하겠습니다.

업체를 통해 일괄 배송을 해야하기 때문에, 22일까지 받으실 주소를 회신하지 않으실 경우 증정이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오늘 레터는 어떠셨나요? 아래 ‘💌편지보내기’ 버튼을 눌러서 오늘 레터에 대한 감상이나 질문 등을 보내주세요. 간단한 한줄 감상도 좋고, 연구자님이 떠올리신 독특한 해찰거리도 좋습니다 :) 레터를 통해서 보내주시는 작은 격려와 의견들이 레터를 쓰는 데 큰 힘이 됩니다. 흥미로운 해찰은 레터를 통해 함께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인스피아에서 차후 다뤄볼만한 주제나 좋은 콘텐츠 등의 추천도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1.혹시 지난 회차 가운데서 '아, 이 회차에서 이 책(혹은 영화 등)을 다뤘었으면 좋았을텐데, 아깝다!'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지난 회차의 주제에 대한 책이라도 추천해주시면 검토 후 레터에서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신간도 구간도 상관 없습니다. 회차명과 책 이름, 그리고 짤막한 추천 이유를 적어서 아래 '💌편지 보내기' 버튼을 통해 보내주세요. 지난 회차의 레터 내용은 아카이브 페이지(💬링크)를 참조해주세요.

SNS나 커뮤니티 등을 통해 주변에 레터를 추천해주시면 창작에 큰 힘이 됩니다. 친구에게 레터를 소개해주시려면 '구독하기' 버튼을 눌러 나오는 주소를 복사 붙여넣기 하시면 됩니다.

오늘도 레터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호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