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쁨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 아무리 두어도 무를 줄을 모르는 홍시와 대봉시를 급기야 사과와 함께 스티로폼 박스에 가두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게 답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채로요. 사과가 에틸렌을 내뿜어 다른 과일을 익게 한다는 얘기를 들어서요. 효과가 있긴 했던 것 같습니다.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도 단단하기만 하던 감들이 꽤 말랑해졌더라고요. 떫은 맛은 여전히 남은 채로, 겨울이 왔습니다. 지난주에 끼니어님들께 파티 음식에 대해 여쭤보았는데요. 식구들 모일 때 준비하는 음식으로 느티나무 님께서는 '갈비찜'을, 슬렁함성 님은 '편백찜'을 꼽아주셨어요. "크리스마스 때 집에서 편백찜을 해먹었던 게 생각납니다. 각종 야채와 차돌박이를 찜기에 차곡차곡 쌓아요. 찜기 2개에 미리 세팅해 놓고, 먼저 한 판을 쪄서 나눠 먹고, 또 한 판 쪄서 나눠먹고 하면서 정말 좋았어요. 요리하는 한 명이 미리 세팅만 해 놓으면 먹는 동안 왔다갔다 분주하지 않아도 되고요. 야채를 듬뿍 먹을 수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슬렁함성님) 생각만 해도 너무 기분 좋네요. 역시 사람이 모일 땐 보글보글 끓이는 음식, 큰 판에 나눠먹는 음식이 많이 생각나나 봐요. 맛있는 주머니를 함께 만들기 저는 둘러 앉아 뭔가를 돌돌 말아서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월남쌈이나 파히타 같은 것이요. 맛있는 재료들을 수북하게 쌓아 놓고 쑥쑥 줄어드는 것을 보는 게 좋습니다. 여러 재료 가운데 누가 무엇을 선택하는지 은밀하게 관찰하는 것도 재밌어요. (누구는 파프리카는 손도 안 대는 구나🤣) 그리고 가급적이면, 그 습관을 기억에 저장해 두려고 합니다. 주머니에 든 음식도 좋아합니다. 만두나 송편 같은 것이요. 저희 집에는 만두 빚는 문화가 없어서, 만두 빚기를 연례 행사로 가진 분들을 항상 부러워해왔어요. 요즘에는 친구끼리 모여서 만두를 빚거나 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저는 채식을 하니까, 고기를 넣지 않은 나만의 만두소 조합을 한번 개발해 봐야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답니다. 가까운 이들과 둘러 앉아 맛있는 주머니 만들기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오늘 윰마토 셰프님이 소개해 주시는 탕위안 수프도, 여럿이 둘러앉아 나눠먹기에 딱 좋은 음식 같습니다. 끼니어님도 연말에 누군가와 따뜻한 밥상을 공유할 계획을 세워 보고 계신가요? 약속을 앞두고 식당을 예약하는 것이 귀찮다면 귀찮은 일이지만 한편 아주 설렌 일이기도 합니다. 식당을 예약하는 즐거움 어릴 적 우리 집은 외식을 거의 하지 않았어요. '식당을 예약한다'라는 개념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갖추게 되었습니다. 해보니 이게 너무 좋은 거예요. 어디 갈지 고민하고 전화를 걸어서 미리 이런저런 사항을 당부하는 일이 마치, 미래의 나를 위해 기쁨을 예비해두는 작업처럼 느껴져요. 전화기 너머의 사장님 혹은 직원 분과 소통하는 일에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인도 음식점이라든가 중국 음식점에 전화를 걸어 보면, 한국어가 약간 서툰 분들이 응대하시는 날도 있잖아요. 여러 번 이름을 말씀드리는데(도토리요, 도, 토, 리!) 방문해보면 살짝 다르게(목도리?) 써있어서 '풉' 하고 웃음이 나옵니다. 육류와 달걀, 우유를 안 먹게 된 후로는 처음 가는 식당에는 꼭 먼저 전화를 걸어 메뉴를 상의합니다. 고기를 빼고 만들어 주실 수 있는지, 육수가 없이도 조리가 가능한지 같은 것들을요. 메뉴판에 없는 것을 기꺼이 만들어 주겠다거나, 새로운 메뉴를 내어주겠다고 하는 분들께는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자영업을 하면서, 이런저런 요구에 신경 쓰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고 짐작이 되어서요. (착한 사람처럼 말하지만, 사장님하고 다투는 일도 왕왕 있습니다🙈) 이런 노력이 쌓이다 보면, 모두를 위해 더 많은 선택지가 생겨 나게 되겠지요. 다투고 얼굴 붉히는 일 말고, 서로의 마음을 잽싸게 알아채 챙겨주는, 작은 따뜻함이 쌓이는 연말이면 좋겠습니다. 저부터 환하게 웃는 얼굴이면 좋을 텐데, 누구에게 날카롭게 모진 말을 하고는 돌아서서 후회하는 일이, 역시 없을 수는 없습니다. 스트레스와 긴장에 저를 내맡기지 않기로 다짐해 봅니다. 잡아둔 약속들, 맛있는 음식, 따뜻한 식당,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요. 올 한해 수고한 내가 예비해둔 많은 기쁨을 연말에 누린다고 생각하고, 좀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 보려고 합니다. 단 것, 짠 것, 살찌는 음식도 좀 넉넉하게 허락해 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