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과 멀어진 대중음악

2013.02.01 21:27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는 록밴드의 역경을 그린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10년이 훨씬 지난 작품이지만 모든 음악가들이 두고두고 기억할 명대사를 남겼다. 음악에 삶 전체를 건 극중 인물 성우에게 친구가 던지는 말이다. “너, 행복하니? 그렇게 하고 싶은 음악하면서 살아서 행복하냐고. 우리 중에 지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놈 너밖에 없잖아. 행복하냐고?”

비단 음악하는 사람들뿐이랴.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누구한테 불쑥 삶이 행복하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은 그것을 ‘세상에서 가장 큰 질문’이라고 했다. 지금의 모든 가수, 연주자, 작곡가를 비롯한 음악관계자들 대다수가 이 물음에 영화 장면에서 성우가 그랬듯 분명한 응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임진모칼럼]대중과 멀어진 대중음악

지난해는 우리 K팝이 그야말로 보통명사화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위용의 깃발을 휘날린 해였다. 그래서 ‘아이돌 음악에 관한 한 한국이 일본을 확실히 제쳤다!’는 말도 나왔다. 무엇보다 ‘글로벌 센세이션’으로 수식된 싸이의 ‘강남스타일’ 선풍이 있었다. 외형적 지표로 보면 한국의 대중음악은 급성장의 페달을 밟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선을 그러나 밖에서 안으로 돌리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음악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음악계 전체에 피로감이 짙게 퍼져있다. 이것은 이미 오래전 음반시장은 죽었고 디지털 시장마저 여전히 음악계에 온기를 제공해주지 않아서 좀처럼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기 힘든 경제적 측면만을 두고 토해내는 푸념은 아니다.

가수 지망생은 거대 기획사에 들어가지 않으면 홍보와 마케팅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오디션 프로가 터준 숨통은 빙산의 일각이다. 기획사 가수로 뽑히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렇다고 인디 쪽으로 방향을 잡자니 심리적 안정감이 들지 않아 하기 전부터 숨이 찬다. 왜 한국 음악계만 이러냐고 불평하지도 않는다. 무자비한 IT 침공에 따른 미디어 변화에 음악이 대표로 희생돼 비단 우리만이 아니라 전 세계 음악계가 신음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쯤은 안다. 심각한 것은 현저하게 나락으로 떨어진 음악가들의 사기와 활력이다. 상당수가 음악을 해도 설레거나 신나지가 않는다고 한다. 할 맛이 안 난다는 것이다. 왜 이러는 걸까. 경제적 대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대중적 관심이 후퇴한 것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음악관계자들은 앞으로 전(全) 세대가 듣는 만인의 애청·애창곡은 나올 수 없다는 말을 한다.

‘강남스타일’은 싸이 본인의 말대로 ‘어쩌다 걸린’ ‘만에 하나인’ 경우다. 30대만 돼도 매주 순위가 바뀌는 다운로딩 차트 상위권 노래를 잘 모른다. 짝이어야 할 ‘대중’과 ‘대중가요’의 거리가 한참 벌어져있는 셈이다. 음악이 대중예술을 진두지휘하며 호령한 양상은 과거의 추억이고 지금은 살아가는 데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은 ‘배경음악’ 신세로 전락했다. 영화나 드라마 또는 게임에 삽입되거나 깔려야 겨우 대중이 귀 기울이는 상황이다.

음악이 위축되면 음악인들의 꿈과 희망도 퇴각한다. 가수와 밴드 지망생들한테 간혹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음악을 하고 싶은데, 해도 될까요? 정말 궁금해서 묻습니다.” 그러면 “하고 싶은 것을 해야죠. 젊었을 때 하지 않으면 후회합니다”라는 말을 건네지만 개운하지가 않다. 사회전반이 그럴 테지만 음악계 종사자들이 느끼는 불안의 늪은 깊다.

20대 초반의 한 밴드 멤버가 술자리에서 넋두리를 한다. “K팝이 저렇게 외국에서 떵떵거리는데, ‘강남스타일’은 반년이 다되도록 저렇게 잘나가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흔들릴까요? 음악계가 잘되면 더 음악을 하고 싶어져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네요.” 어쩌면 대중음악의 실제 키워드는 ‘K팝 낙원 그리고 K팝 사막’이 아닐까. 한쪽은 떠들썩하고 다른 한쪽은 허덕이는 이 극심한 콘트라스트가 더욱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우울한 후자 쪽에 당분간 희망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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