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속에 피는 희망

2013.03.01 21:09 입력 2013.03.02 00:07 수정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

대중가요는 흔히 사랑과 이별 타령이라고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사랑의 환희보다는 헤어짐의 아픔을 다룬 노래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잘돼서 희희낙락하는 사랑보다는 역시 연정의 대상에게 퇴짜를 맞거나 이별을 당해 보답 받지 못한 사랑이 오래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대중가요는 이러한 관계의 ‘비참 정서’를 반영함으로써 위로의 기능 측면에서 빛을 발한다.

이별의 쓰라림을 담은 노래에 특히 실제로 그런 일을 당한 여성들의 공감지수가 높다. 요정으로 통하는 박정현의 노래 ‘미장원에서’는 이별을 맞은 여자의 기분을 너무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내게 두 가지 삶이 있죠/ 그대 함께했던 인생과 나 홀로 살아갈 인생/ 나 이제 머리를 자르며 그 두 번째를 준비하지만….”

[임진모칼럼]아픔 속에 피는 희망

이 분야의 여왕이라고 할 이소라의 노래는 어떠한가. “까만 눈물과 번진 입술의 사랑은 불결함입니까/ 굳은 잠금과 죽은 닫힘의 고상은 순결함입니까.” 그가 부른 ‘블루 스카이’란 곡의 노랫말을 놓고 이게 도대체 뭔 말이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짝을 잃어본 여성들은 아마 금방 그 의미를 알아차릴 것이다. 그 다음 부분의 가사는 가히 방점을 찍는다. “나 혼자 일어난 미친 아침은 맑아도 눈물입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눈물을 달고 사는 앙상한 ‘이별 여인들’의 심정이 꼭 이처럼 패배적이지만은 않다. 헤어지고 나서 쓰라린 마음을 훌훌 털고 다음을 준비하는 노래도 있다. 미국 여성이든 한국 여성이든 지금도 실연(失戀) 뒤에는 진주가 부른 ‘난 괜찮아’의 원곡 ‘아이 윌 서바이브(I will survive)’를 열창한다고 한다. ‘너 같은 남자 없어도 난 충분히 견디며 살 수 있다’고 다짐하는 뜻에서 이 노래를 선곡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런 재기의 메시지보다 좌절과 체념의 노래가 훨씬 많고 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 대중가요가 고마운 것은 비밀을 풀어주듯 이런 섬세하고 복잡다단한 여심을 살짝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시인 중의 한 명인 에우리피데스는 “사랑에 병들었을 때 여자는 남자보다 더 고통을 겪지만 그것을 감출 줄 안다”고 했다. 애이불비, 즉 태연한 표정으로 아픔을 은폐해버리니 남자들이 그 마음을 알 리가 없다.

빼어난 가창력의 가수 장혜진은 마침 ‘왜 나만 아프죠’라는 노래를 불렀다. “왜 나만 아프죠/ 왜 그댄 괜찮죠/ 우리 함께 사랑한 것이 아니었나 봐요/ 그댄 남자라서 상한 곳 하나 없어서/ 웃음도 질 수 있나 봐요….” 여자의 마음을 누군가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이라고 말했다. 톨스토이도 내밀하고도 감출 줄 아는 여심이 신비로웠던지 여성을 “아무리 연구를 계속해도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묘사했다.

근래 음악계는 전 세계 공히 여가수들 세상이다. 다시 말해 여성들의 실연가가 판친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그래미상을 휩쓸며 최고가수로 등극한 영국 여가수 아델도 이루지 못한 사랑의 비통한 마음을 ‘롤링 인 더 딥(Rolling in the deep)’에 담아냈다. “저 깊은 곳까지/ 너는 네 손안에 내 마음을 가졌지/ 하지만 박동에 맞춰 그것을 갖고 놀았던 거야….”

아델보다 먼저 복고열풍을 자극하며 세계를 석권한 같은 영국 여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음악의 내용물은 비슷하다. 사랑의 상처가 없었더라면 2000년대 명반 중 하나로 꼽히는 그의 ‘백 투 블랙’ 앨범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여가수만 그러랴. 남자가수들의 경우도 실연의 고통으로 가득한 곡들이 부지기수다. 아픈 사람들, 아픈 노래들 천지다. 언제나 그랬지만 요즘은 더욱이나 이별가가 대중가요의 주 종목으로 굳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대중가요의 이별은 이별의 쓰라린 심정, 체념과 좌절을 토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 향하는 희망과 재기로 이어진다.

괴테의 말이 맞다. “앞길에 아름다운 희망이 있으면 이별도 축제와 같다!” 대중음악은 이별 축제가 아니라 실은 이별을 내건 ‘힐링 축제’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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