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감증의 위계

2013.04.11 21:20
정희진 | 여성학 강사

지난 한 달 동안 북한과 미국은 한반도 주변을 무대로 거침없는 전쟁 협박 정치를 했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라 한국 사회는 뉴스의 순서를 달리했다. 김정은 체제의 리더십 연습과 미국의 무기 실험에, 왜 한국 사람들이 전쟁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새삼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6일 뉴욕타임스는 한국 사회의 전쟁 불감증을 보도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전쟁에 대한 공포와 위기감이 없어 보이는 한국인의 일상이 이상했나 보다. 하지만 전쟁 불감증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는 전쟁에 대비하지 않는다는 안보 불감증과 다르다. 사실 현대전, 특히 한반도처럼 좁은 지형에서는 전쟁의 공포에 떨 필요가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레이더나 자외선으로 목표물을 감지해서 정확히 타격하는 유도(guided) 미사일과 핵이 날아다니는 첨단무기전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총알이 사람의 체온을 쫓아오는 시대. 피란을 가도 소용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식수나 라면 사재기는 전쟁 대비가 아니라 멍청한 혼란일 뿐이다.

[정희진의 낯선사이]불감증의 위계

전쟁 불감증은 개탄할 일도 신기한 일도 아니다. 의미 없는 단어다. ‘불감증(不感症)’은 뭔가 느껴야 한다는 당위를 전제한다. 예를 들어 흔히 인간의 3대 욕구를 식욕, 수면욕, 성욕이라고 하지만 이는 일부 남성의 ‘소견(小見)’일 뿐이다. 프로이트는 섹스를 인간의 본질적 행위로 파악했기 때문에 “유일한 변태는 섹스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지만, 이는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수면과 음식물 섭취와 달리 섹스는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지 않다(성 불감증, 섹스리스 부부 모두 정상이다).

전쟁 불감증은 문제가 아니지만 불감증 담론은 우리 사회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는 중요한 현상이다. 전쟁 불감증 원인은 역사적·문화적으로 다양할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의견은 ‘양치기 소년’론이 아닐까. 이제 국민들은 어느 정도 남북한 정부의 ‘정치쇼’에 면역되어 있다. 특히 오랜 세월 동안 남한 기득권 세력의 색깔론, 전쟁 위기론, 간첩 사건 조작을 통한 공포정치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였다. 서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보물 칼도 녹슬기 마련이다.

약 15년 전 영화 <간첩 리철진>(1999)에는 남한에서의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간첩이 자수하자 경찰이 “네가 간첩이면 나는 김정일이다”라며 비웃는 장면이 나온다. 최근 영화 <의형제>(2010)에서는 국가가 임명한 대남 활동가(간첩)와 탈북자가 남한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인다(현재 남한의 경제력은 북한의 33배다).

전쟁보다 생계가 두려운 사람. 이들뿐일까. 전쟁 불감증의 가장 큰 원인은 “먹고사는 게 전쟁”이기 때문이다. 매일매일이 전투,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삶이다. 전쟁이 없어도 입시, 실업, 질병, 경쟁, 외로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살로 목숨을 ‘빼앗기고’ 있다. 구타, 모욕, 불편, 고통이 일상인 여성과 장애인,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에겐 ‘지금, 여기’가 바로 전쟁터다. 사회적 약자의 일상이 아니더라도, 어떤 이에겐 “북핵보다 엔화 약세가 더 심각”하고 “전쟁보다 빚이 더 무섭다”.

여성주의는 지속적으로 전쟁과 평화의 이분법에 도전해왔다. 기존의 전쟁 개념은 국가 간에 벌어지는 정치다. 교과서는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외적의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전쟁 전후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은, 기민(饑民)이 다수 국민이라면 전쟁과 평화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를테면 노예의 입장에서는 노예제도가 존속되는 한 외세의 침략이든 혁명이든 주인이 바뀌는 것일 뿐 삶에는 변화가 없다.

쟁점은 전쟁 불감증 여부가 아니다. 불감이든 민감이든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의 본질은 위기의식과 경각심을 가져야 할 사안과 ‘가벼운’ 사안이 있다면 그것을 누가 정하는가이다. 당사자는 평생 불안과 공포에 떨지만, 사회 통념상 사소하게 취급되거나 드러나기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사회는 성폭력이나 성희롱 등 성과 관련한 폭력의 원인이 남성 중심 문화가 아니라 여성의 ‘예민함’과 ‘피해의식’이라고 간주한다.

국민들이 절실하게 느끼는 현안에 대한 집권세력의 무감각. 이것이 진짜 전쟁, 즉 내부의 전쟁을 만들어낸다. 무감한 정도가 아니라 국민들의 절박함과 두려움을 부정하고 공권력을 행사할 때 전쟁이 시작된다. 한국은 고위공직자 비리에 대해 둔감한 정도가 아니라 너그러운 사회다. 표절, 병역비리, 탈세,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학력 위조 등이 ‘종합세트’가 아니라 한두 건만 해당하면 “청렴한 편”이라는 여론이 나온다.

국가 간 전쟁 연습, 군사적 긴장 고조의 목적은 전쟁이 아니라 내부 통치전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모르는 국민은 없다. 전쟁 불감증이 당연한 이유는 두 가지다. 승부도 출구도 없는 공멸의 현대전, 그리고 당장 일상의 삶이 ‘더’ 다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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