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과 성매매

2013.05.09 21:27
정희진 | 여성학 강사

성산업은 워낙 많은 이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경찰은 과중한 단속 업무와 비난에 동시에 시달린다. 성매매가 제대로 적발되지 않는 이유는 수십가지겠지만 흥미로운 사정이 있다. 최근 읽은 책에서 경찰의 하소연에 공감했다. “선진국은 야간에 할 일이 없다. 야간 취객이 적다. 우리처럼 취객에게 시달리지 않으니 다른 일을 할 여유가 생긴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 아닌가.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시위 진압에 경찰 병력이 집중되면서 연쇄 살인 성폭행 용의자를 눈앞에서 놓치는 장면의 기시감. 두 가지 사례는 남성 문제 혹은 남성들 사이의 문제 때문에, 국가 권력(남성)이 남성을 관리하기에 바빠 국민(여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정희진의 낯선사이]취객과 성매매

많은 한국 남성에게 술은 일상의 동반자다. 게다가 음주문화에 지나치게 너그럽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무례나 사회적 물의, 범죄 행위에도 관대하다. 술은 모든 상황의 알리바이다. 술만 마시면 아내를 구타하든, 성폭력을 하든, 공공장소에서 용변을 보든 모든 상황이 참작(參酌), 감안된다. 정상참작(情狀參酌). 이 단어 자체에 술을 붓는다는 ‘작(酌)’이 포함되어 있으니, 술은 인간 행위를 판단하는 필수적 고려요소인 듯하다.

주지하다시피 최근 경찰은 전국적으로 상습 만취 상태의 폭력, 줄여서 주폭(酒暴) 사범 검거와 캠페인에 주력하고 있다. 술주정을 넘어 지역사회와 주거지역, 가족에게 술로 ‘인한’ 폭력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한국 남성은 왜 그토록 술을 많이 마실까. 폭탄주 강요 등 음주문화는 왜 그리 폭력적일까.

그런데도 다른 사회에 비해 알코올 중독자가 많다는 논의는 별로 없다. 나는 실제로도 ‘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코올 중독은 혼자 주기적으로 마시는 경우를 말한다. 한국 남성은 사회생활과 업무의 연장에서 집단적으로 마시기 때문에, 더 마신다 해도 병리 용어인 ‘중독’ 개념 사용을 기피하는 심리가 있다.

술과 성매매는 두 가지 직접적 관련이 있다. 경찰의 억울한 호소대로 “야간 취객 때문에 단속 인력이 모자란다”는 것과 룸살롱 등지에서 주류 판매와 성매매가 같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일부(?) 남성은 술만 ‘여자를 끼고’ 마시는 것이 아니다. 노래방, 호프집, 업무상 출장, 골프장, 이발소, 목욕탕, 아예 성 구매를 목적으로 하는 관광…. 움직일 때마다 여성의 ‘위안’이 필요한 것일까.

음주 상태에서 인간 행동의 변화 양상은 자연과학의 의제일지 모른다. 그러나 술로 ‘필름이 끊긴’ 사람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술을 마셔도 남녀가 성별을 바꿔 행동하지는 않으며, 모르는 외국어를 갑자기 구사하지도 않는다. 술을 마셔도 아무나 때리지 않는다. 대개는 ‘집에 와서, 가족’을 구타한다. “술을 마셔서 때리는” 게 아니라 “때리기 위해 술을 마신다”가 더 정확하다.

술과 여자. 나는 남성들이 이 둘(?)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남성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무능력, ‘인생고’의 상징이자 단기 해소책일 뿐이다. 술은 물건이고 여성은 사람인데 언제나 동격으로 취급된다. 남성에게 술과 여자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성매매는 남성 연대의 대표적 관행이다. ‘에이전트’(포주)의 성별과 관계없이 판매자 혹은 ‘판매 상품’과 구매자는 절대적으로 성별화되어 있다. 여성을 상품으로 상정하고 남성 사이에서 여성을 교환하는 것이 성매매의 기본 구조다.

‘성접대’ ‘성상납’이 가장 직접적인 사례다. 상납(上納). 글자 그대로, 무엇인가를 윗사람에게 바친다는 것인데 대개는 상품권이나 돈, 과일, 술을 주지 않나? 성상납은 성(性)을 바친다는 것이다. 여자 상납인데, ‘여’를 생략하고 ‘성’만 사용하는 것은 여성=성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드문 경우겠지만 남성이 여성에게 뇌물을 바쳐야 할 상황이라면, 보석을 주지 남자의 몸을 가지라고 할까? 한편, 남성의 성이 상납되지 않는 것은 동성애 금기 때문이다.

성매매가 가능하려면 여성의 인격은 물화(物化)되어야 한다. 여성의 몸은 남성 세계에서 ‘윤활유’ ‘범퍼’ 역할을 위해 판매, 대여, 유통된다. 남성들 사이의 갈등을 여성의 몸을 통해 해소하는 것이다. 남성의 시각에서 보면 성매매에서, 여성은 이용 대상일 뿐 여성과 무관한 남성의 문제다. 취객과 주폭 현상은 성매매 단속을 방해함으로써 자신의 처지-상납의 연쇄에 끼지 못한 약한 고리(루저)-에 대한 ‘작은’ 분풀이가 아닐까.

세상은 남성들끼리 싸우고 화해하고 연대하고 복수하는 그들만의 세상이다. 문제는 나머지 시민들은 남자들 사이의 ‘전쟁과 평화’ 때문에 평안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서부 영화의 고전인 <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the ugly)>은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the weird)>으로 진화했지만, 실은 ‘놈놈놈’이라는 축어처럼 언제나 그들은 같은 진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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