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의 경제학

2013.07.01 21:32
박민영 | 문화평론가

이런 질문을 해보자. 우리는 유행을 거부할 자유가 있는가? 이에 대해 ‘그렇다’고 답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에는 유행을 따라야 하는 거대한 압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직자가 유행에 뒤떨어지는 차림새를 한다면, 취업에 실패할 수 있다. 영업사원은 고객을 놓칠 수 있고, 정치가는 유권자를 잃을 수 있다. 반대로 유행을 따르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인상, ‘멋있다’는 인상, 신뢰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

유행을 따르는 것은 개인적 기호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패션이나 상품이 유행하면 그것을 따라야 할 강제성이 생긴다. 유행을 못마땅해하는 사람이나, 유행에 둔감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촌스럽다’는 눈총을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외면당한다. 유행에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시장에서는 유행하는 스타일 외에는 살 수 있는 것이 드물다. 유행은 산업이 정해놓은 소비규범이다. 그 규범에서 벗어나기란 매우 어렵다.

[별별시선]유행의 경제학

유행은 소비를 습관화한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전자제품이 쓸 만한데도 신제품으로 바꾸고, 멀쩡한 옷과 가방을 두고 새것을 사는 것은 유행 때문이다. 모든 습관은 시간이 지나면 데카당스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유행만은 예외다.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고 유행을 좇는다. 유행은 반복이되, 늘 ‘새로운 반복’이다. 그러므로 싫증이 나지 않는다. 유행은 소멸하지 않는다. 다른 유행으로 교체될 뿐이다. 여기에 유행 고유의 생명적 가치가 있다.

사람들은 올해 나온 제품이 작년 것보다 세련되다고 생각해 유행을 따른다. 그러나 세련됨에는 마땅한 기준이 없다.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이렇게 썼다. “똑같은 여성용 모자를 두고 올해 나온 모델이 작년에 나온 모델보다 우리 감수성에 훨씬 더 강한 호소력을 발휘하는 것을 사람들은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25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전망한다면 나는 두 모델 중 어느 것이 본래 더 아름답다고 판정하기란 극히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행은 세련됨의 상징조작이다.

유행은 타인의 쇼핑 행태를 수집하는 행위다. 우리는 ‘쇼핑’ 하면 시장, 대형마트, 백화점, 인터넷에서만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직장, 길거리, 지하철, 학교 등 거의 모든 공간에서 물건을 고른다. 여기저기 노출된 광고를 보고 ‘저 물건을 살까말까’를 고민할 뿐 아니라, 마주치는 모든 사람의 차림새와 소유물을 관찰하고 자신의 것과 비교하기도 한다. 그러고는 ‘저 신발 예쁘네’ ‘저런 가방은 어디서 팔지?’ 하며 궁금해한다. 사실상 모든 활동공간이 ‘시장화’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사회는 기본적으로 낭비 경제다. 경제가 유지·발전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많이 사서 빨리 버려야 한다. 포화상태에 있는 소비시장을 재형성하고, 그를 통해 낭비체제를 지속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유행이다. 유행은 상품 소비의 유효기간을 분할한다. 그럼으로써 거대한 소비의 회전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스타일의 상품이 유행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전국적으로, 나아가 세계적으로 그것을 찾는 소비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 만약 유행이 없다면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제는 붕괴할 것이다.

유행은 불특정 다수가 우연에 의해 형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행에 참여하는 주체들은 평등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유행을 만들어내는 장본인은 대기업과 대중 미디어다. 주지하다시피, 대기업은 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그런 까닭에 대기업이 만든 상품들은 나오자마자 시장을 장악한다. 여기에 연예인과 미디어를 동원한 광고와 마케팅 세례, 중소기업의 베끼기가 가세한다. 물론 특정 스타일의 중소기업 제품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도 대기업이 그 흐름에 동참하지 않으면 유행이 되지 않는다.

유행은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구별짓기’의 기능을 한다. 유행에 발맞추려면 많은 돈이 소요된다. 더구나 요즘 유행의 변화는 빠르다. 자신의 지위를 입증하기 위한 소유물도 급증했다. 유행을 따르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 많을수록 유행이 가진 등급화 기능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부자들은 유행을 통해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확인하고 과시한다. 신분상승의 욕구가 많은 사람, 주류로부터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더욱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어디엔가 소속되고 싶다는 인간의 공동체적 욕구는 근원적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 욕구조차 기업의 이익 논리에 이용되고 있다. 공동체적 감성은 상업화되었다. 사람들은 유행에 맞춰 소비함으로써 소속감과 동질감을 느낀다. 우리는 유행의 기능과 의미에 대해 깊이 숙고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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