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단체 정당 공천 폐지

2013.08.01 21:42 입력 2013.08.01 21:59 수정

기초단체장·기초의원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문제가 정치권의 뜨거운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달 25일 정당공천제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했고, 새누리당도 대선 공약 사항임을 들어 당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폐지를 찬성하는 쪽은 지역구 국회의원이 쥐고 흔드는 공청권, 지역정치의 중앙 예속화, 지방의회의 기능 왜곡 등의 폐단을 없애기 위한 새로운 실험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정당공천제 폐지로 기득권자인 전·현직 지자체장 등의 권력이 비대해지고, 부패한 토호세력의 발호로 지역주의가 심화될 것이라는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 공천제도가 폐단 낳아… ‘정당의 족쇄 풀기’ 새 실험

[지금 논쟁 중]기초단체 정당 공천 폐지

‘기초선거 정당공천 호남 우선 포기’라는 선험적이고 실험적 주장을 피력했던 이유는 지난 대선 당시 대국민 약속이었던 ‘기득권 내려놓기’ 프레임을 민주당이 먼저 선점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민주당 스스로 행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도부의 단호한 결정이면 될 일을 전 당원 투표로 결정한다고 하기에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나’ 했다. 어찌됐든 당내 객관적 동력은 어느 정도 확보했고, 민주당의 ‘정치적 실험’은 시작됐다. 오랜만에 고무적인 선택이 도출된 셈이다.

절실하고 필요한 것은, 선택의 명분과 해법을 찾는 치열한 논쟁과 ‘실험자’로서의 겸허하고 냉정한 도전이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결정에 대한 반론과 우려가 여전하다. ‘위헌 여부’ ‘지역 토호세력의 지방의회 장악’ ‘지역 여당화’ ‘정치적 표현의 자유 및 평등원칙 위배’ 등이 그것이다. 부정할 생각은 없다.

‘명분 있는’ 문제제기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총 선거인단 14만7128명 중 7만6370명이 투표하고 67.7%가 찬성함으로써 공천폐지 당론을 확인했다. 정당공천으로 인해 야기돼 온 한국 정치의 난맥상과 부조리라는 큰 그늘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제도로써 정당공천은 정당정치라는 교과서의 서문과 같다. 취지는 옳았고, 방법 또한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서문을 접기로 했다. 당 내외는 물론 사회적 설득과 합의라는 지난한 숙제가 코앞에 닥친 셈이다. 불과 1년도 채 남지 않은 지방선거에서 이번 ‘실험’의 가시적 성과를 이끌어내야 하는 부담 역시 만만치 않다. 하지만 새로운 실험은 시작됐고, 민주당은 그 길 위에 섰다.

1988년 지방의회의원선거법 제정, 1990년 동법 개정에 의거해 1991년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 이후, 기초선거 정당공천제도는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점이 혼재돼 22년간 지속돼 왔다.

풀뿌리 생활정치에 대한 정당의 책임이라는 합헌적 배경과 기회균등의 원칙이 핵심 취지임에도 불구하고 기초선거 정당공천제도는 다수의 폐단을 야기했다. 물론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한국 정치의 그릇된 습성과 부실 때문이라는 주장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지만, 지역구 국회의원이 쥐고 흔드는 공천권, 지역정치의 중앙 예속화, 지방의회의 기능 왜곡 등 기형적 정치구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논의의 폭을 좀 더 확대해 보자.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담론으로의 확장이다.

현행 기초선거의 투표행태를 보자. 후보자의 면면은 중요하지 않다. 소속 정당에 대한 ‘묻지마 투표’가 일반화돼 있다. 과언이 아니다. 일당일색인 영·호남에서 더더욱 그렇다. 지역공약은 어떤가. 소신보다는 중앙 논리에 입각한 공약이 난무한다. ‘공천권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살 수 있다’는 종속적 습성이 팽배해 있다.

인쇄소에서 찍어낸 듯한 획일화된 공약은 ‘선택의 협소’만을 가져올 뿐이다. 지역 현실이 녹아든 ‘정책 박람회’ 수준의 다양하고 소신 있는 공약이 공유되고 유권자들이 현명하고 합리적 선택을 하도록 하는 장을 마련하자는 것이 정당공천 폐지의 본질이다.

그래서 그 ‘실험’을 하자는 것이다. 정당의 족쇄를 풀자는 것이다. 그러한 선택은 견제와 균형으로 작동될 수 있다. 즉 자치와 분권이라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질적 가치를 구현해내고 해묵은 지역구도의 이반을 꾀할 수 있는 지렛대 역할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긍정적 기대만을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이제 남은 건 ‘확실한 명분과 해법 찾기’다. 민주당의 이번 실험 역시 무엇이 옳다기보다 선택의 문제였던 만큼, 그 선택에 대한 선명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동전 양면 문제의 종식이 결코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과연 지방선거가 지방을 위한 선거였을까. 중앙의, 중앙에 의한, 중앙을 위한 선거는 아니었는지 자문이 필요한 때다. 지방이 주체가 돼 스스로의 운명을 판단하고 길을 결정하는 사회구조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중앙이 관여하고 나서야 한다는 자의적 논리는 접어야 한다. 시대는 힘의 분산을 원하고 있고, 접근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중앙이 해야 할 일, 지방이 해야 할 일에 대한 명료한 구분이 필요하다. 정당공천 폐지는 분권으로 가는 길목의 또 다른 ‘가능성’이다.

여당에서도 정당공천 폐지 여부에 대한 움직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는 9월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정당공천 폐지를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조속한 입장 정리는 불가피해 보인다. 계산기를 너무 두드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제안하고자 한다. ‘새로운 실험’에 발걸음을 맞춰 가자. 함께 내려놓고 함께 고민하자. 합헌과 위헌 사이의 논쟁 역시 타협과 법 개정을 통해 그 틀을 만들어 가보자.

<홍의락 | 민주당 의원>

■ 폐지보다 정당정치 개혁, 드러난 폐해 바로잡아야

[지금 논쟁 중]기초단체 정당 공천 폐지

얼마 전 민주당에서 당원투표로 기초단체 정당공천제 폐지를 결정하는 과정을 보면서, 그동안 국민들이 기성 정당정치에 느꼈을 실망과 분노의 깊이를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기초단체 정당공천제를 기성 정당정치에 대한 징벌의 수단으로 폐지하기에는 감수해야 할 정치적 손실이 크다. 헌법이 보장한 정당정치의 책임 있는 구현 수단을 제척하기 이전에 보다 정확한 진단과 대안 마련이 필요한 이유이다.

정당공천제 폐지 주장의 배경은 무엇보다 지역밀착형, 생활기반형 정치가 우선되어야 할 시·군·구 단위 기초선거에서마저 권력 줄서기, 지역파벌 만들기, 밀어내기식 공천 강요 등 계파싸움과 권력지향으로 점철된 중앙정치 폐해가 여전히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도를 폐지하고, 개인의 무한경쟁에 맡겨 버리면 정직하고 좋은 지방자치 정치일꾼들이 다양하게 발굴되고 성장할 수 있는 풀뿌리 정치가 살아날 수 있을까?

근원은 정당민주주의와 책임정치, 공명정치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성 정당과 양당구도에 있는 것이지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할 기성 정당의 구습(舊習)은 그대로 둔 채 겨우 첫발을 내디딘 책임정치의 기반을 훼손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2006년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와 비례대표제, 중선거구제가 시행된 이후 기초의원 여성 당선자가 2002년 2.2%에서 2010년 21%로 큰 폭으로 증가하고, 소수정당의 의석비율이 늘어나는 등 기초의회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됐음이 증명되고 있다. 아울러 2003년 이후 헌법재판소를 통해 수차례 기초단체 정당공천제 폐지가 위헌임이 밝혀진 바 있고, 한국정치학회 등 관련 전문가들도 폐지보다는 지방권력 비리 척결, 선거구 담합 중단 등 정치혁신 과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무엇보다 정당공천제 폐지로 인해 오히려 과거 낡은 정치로 퇴행할까 우려된다. 그나마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했던 공천심사가 사라지면서 기득권자라 할 수 있는 전·현직 지자체장 등의 권력이 더욱 비대해질 것이다. 재력과 조직력을 가진 토호세력의 발호로 지역주의는 더 심화될 수 있다. 엄연히 지역에 존재하는 중앙정치의 은밀한 손에 의한 내천(內薦) 비리의 싹도 키울 수 있다. 여성과 청년 정치인, 생명과 사회약자를 대변할 소수정당 등 정치 신인에게는 높은 진입장벽이 되고 정치 다원화의 길이 막힐 우려가 있다.

결국 정당공천제의 폐지는 애초 취지와는 다르게 기존 거대 정당의 기득권과 부패한 지방권력을 공고히 하게 될 것이며, 주민의 삶의 현장 속에 뿌리 내린 풀뿌리정치, 생활정치의 안착에는 오히려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지방자치·민생정치를 원한다면, 정당공천제의 폐지 논란에 앞서 정당개혁, 정치개혁 과제에 대해 거대 양당의 책임 있는 답변과 사회적 약속이 있어야 한다.

첫째, 투명하고 공정한 공천시스템 혁신은 물론 상향식 공천 도입 등 지역 당조직의 책임과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지역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소규모 지역정당의 설립과 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현행 정당법의 개정을 논의해야 한다. 둘째, 현재 10%인 기초의회 비례대표를 50%까지 확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세대, 직능, 계층의 참여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기초의회 구성이 변화돼야 한다. 셋째, 중대선거구제 확대를 통해 현재 2인 선거구를 3~4인 선거구로 개편해야 한다. 그래야만 거대 양당의 지역지배 구도를 깨고, 신선한 정치신인의 발굴과 지역정치의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다.

새누리당이 내세운 일몰제나 민주당이 보완책으로 내놓은 여성명부제, 정당표방제 등은 또 다른 위헌의 소지가 있으며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 오히려 지금 양당이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하는 것은 그동안 지방자치를 훼손해 온 밀실, 부정, 부패 공천에 대한 통렬한 반성문이다. 또한 폐쇄적·중앙집중식으로 유지해 온 정당 혁신 방안이다.

기초단체 정당공천제 폐지 요구에 담긴 국민의 뜻은 명확하다. 바로 삶의 현장이자 국민의 주권이 시작되는 지역부터 이전투구에서 벗어나 주민의 생활과 민생을 보살피고 살리는 책임 있는 풀뿌리정치를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민의를 대표하는 정치인의 책무이자 존재의 의미다. 정당공천제라는 최소한의 책임정치마저 내던지는 정당과 정치인에게 진정한 정치의 소명을 가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제남 | 정의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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