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말살’ 3개년 계획

2014.01.22 20:40
홍기빈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창조경제’를 구현하기 위한 정부의 ‘3개년 계획’을 보았을 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은 몇 년 전 한참 유행하던 ‘스티브 잡스 10만 양병설’이었다. ‘뜨거운 얼음’이나 ‘말린 구름’과 같이 양립할 수 없는 두 단어를 붙인 형용모순이라고 할까. 정작 ‘창조경제’를 위해 지금 절실히 필요한 사회 전반의 ‘연성화’와는 정반대의 길이 아닐까 싶다.

[경제와 세상]창조경제 ‘말살’ 3개년 계획

먼저 간단한 경제사 토막 상식. 이 ‘몇개년 계획’은 1928년 소련에서 스탈린이 중화학 공업으로의 전환을 위해 시행한 ‘5개년 계획’이 시초이다. 그 놀라운 성공에 깜짝 놀라 이를 복제한 것은 다름 아닌 독일의 나치와 일본의 파시즘 군부였다. 독일은 1935년부터 ‘4개년 계획’을 통하여 사실상 전시 경제로 전환하며, 일본 또한 1937년 ‘경제기획원’을 설립하여 동일한 노력을 꾀한다. 이것이 박정희 정권 당시 여러 차례 5개년 계획을 선도했던 모델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를 상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몇개년 계획’이라는 것이 ‘창조경제’의 핵심이라고 할 민간의 자발적인 주도성과 창의성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경제 조직 방식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가격 신호라든가 기술 및 사회의 진화 등과 같은 시장 경제 고유의 작동 메커니즘과 무관하며, 거의 순수하게 산업 공학의 논리에 따라 설계되고 집행되는 기계적 과정이다. 각 산업 부문에서의 투입과 산출을 서로 연동시켜서 주어진 시간 안에 산업 구조를 완전히 바꾸어 버리는 것이 그 본질로서, 당연히 계획 주체인 국가가 주도권을 쥐게 된다. 이 방법이 특히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항만이나 대단위 공장 단지 등과 같은 ‘물질적인’ 인프라를 조성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는 중화학 공업으로의 전환의 경우이다. 그 마인드의 핵심은 기초 투입물에 해당하는 인력과 자원과 시간을 ‘때려 박으면’ 어느만큼의 성과가 나온다는 데에 있다. 오늘날의 한국 경제는 효율성으로 보나 산업 구조로 보나 이러한 단계와 수준을 벗어난 지 오래이지만, 1970년대 고도성장기에 의식이 형성된 기성세대의 ‘경제 마인드’는 이런 식의 사고방식에서 쉬이 풀려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3개년 계획’으로 ‘창조경제’를 앞당기겠다는 기묘한 발상이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창조경제’로의 전환에 필요한 것은 물질적 인프라 창출도 아니며 따라서 산업 공학적 합리성에 근거한 국가의 개입과 주도도 아니다. 오히려 이는 구호만 요란한 가운데 엉뚱한 이들이 엉뚱한 명분으로 국가가 뿌려대는 엄청난 눈먼 돈을 받아가는 이상한 잔치판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스티브 잡스도 저커버그도 소위 ‘인재’들을 교실에 붙잡아 놓고 때려가며 가르쳐서 나오는 인물이 아니며, 10만명씩 양성할 수 있는 대량 생산물도 아니다.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인재’ 양성 과정이란 고작 전국의 ‘수재’들을 선생의 몽둥이로 닦달하여 영어 수학 참고서 하나씩 달달 외우게 하고 시험으로 걸러내고 또 걸러내는 과정이다. 이는 1년에 몇 천명씩 쏟아져 나오는 한국의 ‘중저가 엘리트’들을 생산할 수 있겠지만, 정작 ‘창조경제’의 영웅처럼 칭송되는 잡스나 저커버그가 배출되는 과정은 아니다. 오히려 막 자라나던 잡스, 저커버그도 싹이 밟히고 말 것이다.

지금 한국경제가 ‘창조경제’로 전환하는 데에 정작 필요한 것은 사회 전체의 ‘연성화’이다. 개발 경제 시대에 생겨난 한국 자본주의 질서는 대기업과 소수 경제 관료와 금융 기관에 비대칭적으로 경제 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대다수의 나머지 경제 주체들은 맨 아래의 빌딩 청소부 일용직 아주머니까지 위계 서열의 질서에 따라 상명하복 관계로 조직되어 있다. 이 상황에서는 자기보다 위의 경제 권력자들의 마음에 들도록 노심초사하는 것이 경제 생활의 전부일 뿐이다. 개개인들이 무슨 ‘창조적’ 주체가 된다는 것은 물론이고 설령 간혹 창조적 혁신이 나타난다고 해도 이 딱딱한 위계적 권력 구조에서 그것이 현실로 구현될 가능성은 극히 적다. 사회적 경제적 관계의 성격을 더 민주적 수평적으로 바꾸고 사람과 사회의 역량을 더 강화, 개발하는 계획은 없는가. 그런 계획이라면 3개년이 아니라 10개년 20개년 계획이라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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