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시대

2014.06.22 20:55
정끝별 | 시인·이화여대 교수

▲ 성공시대

어떻게 하지? 나 그만 부자가 되고 말았네
대형 냉장고에 가득한 음식
옷장에 걸린 수십 벌의 상표들
사방에 행복은 흔하기도 하지
언제든 부르면 달려오는 자장면
오른발만 살짝 얹으면 굴러가는 자동차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기만 하면
나 어디든 갈 수 있네
나 성공하고 말았네
이제 시만 폐업하면 불행 끝
시 대신 진주목걸이 하나만 사서 걸면 오케이
내 가슴에 피었다 지는 노을과 신록
아침 햇살보다 맑은 눈물
도둑고양이처럼 기어오르던 고독 다 귀찮아
시 파산 선고
행복 벤처 시작할까

- 문정희(1947~) 부분

[경향시선 - 돈 詩]성공시대

△ 누군가는 함께 나누는 사랑을, 누군가는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또 누군가는 삶에 대한 만족감을 성공의 조건으로 정의했으나, 뭐니뭐니해도 머니(money)야말로 성공의 가장 확실한 조건임을 부인할 수 없는 시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으로 총이나 돈이 아닌, 시와 음악을 꼽는 사람을 여럿 알고 있다. 시와 음악이 있어 세상은 살 만하다는 사람들 말이다.

이 시의 맛은, 값비싼 것들을 선망함으로써 조롱하고, 돈에 쏠리는 스스로를 반성함으로써 고발하는 반어적 진술에 있다. ‘시 폐업’과 ‘불행 끝’, ‘시 파산’과 ‘행복 벤처’가 동의어고 그것들이 곧 ‘성공’을 보장하는 ‘시대’를 사는 시인의 아이러니한 고백이랄까. 노을과 신록, 맑은 눈물, 고독을 귀찮아하고 대형냉장고, 명품 옷, 자동차, 진주목걸이를 갈망하는 우리들 삶을 질타하고 있다.

성공한 사람이 시인이 되는 건,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인가 보다. 물질적 풍요 앞에 영혼은 헐벗고, 돈 앞에서 시는 옹색스럽기 그지없다. 밤바다를 환히 밝힌 집어등이 제 무덤인 줄 모르고 달려가는 오징어들처럼, 저 휘황한 마천루들이 제 무덤인 줄 모르고 우리는 캄캄한 도시 속을 폭탄처럼 성공시대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그러니, 경계하라, 돈으로 밝힌 저 허황한 불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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