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의 말랄라

2014.10.21 20:50 입력 2014.10.21 20:58 수정
김봉선 출판국장

마침 <나는 말랄라>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직후였다. 파키스탄의 ‘그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올해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해에도 후보에 올랐던 만큼 ‘올해는…’이라고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가벼운 흥분이 일었다. 잘 알고 지내는 이의 영예라도 되는 것처럼.

[김봉선칼럼]오슬로의 말랄라

2012년 10월9일. 파키스탄 밍고라에 살던 15세 소녀 말랄라는 끔찍한 사건을 겪는다. 하굣길에 탈레반이 쏜 총탄에 맞아 머리와 목에 치명상을 입었다. 11세 때부터 영국 BBC방송 블로그 등을 통해 여성교육에 반대하는 탈레반을 고발해온 데 대한 보복이었다. 영국으로 이송된 말랄라는 수차례의 대수술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살해 위협은 계속되지만, 소녀는 더 강해진다. 이듬해 7월 유엔에 나가 전 세계 여자 어린이의 교육권을 외쳤다. “펜은 칼보다 강합니다. 극단주의자들은 책과 펜을 두려워합니다. 교육이 그들을 겁먹게 합니다.” 올 7월에는 나이지리아를 찾아 무장단체에 납치된 여학생 200여명의 무사 송환을 호소하고, 파키스탄에 무인기를 보내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선 ‘무인기 대신 무상교육에 힘써달라’고 일침을 놨다. 유엔은 소녀의 생일인 7월12일을 ‘말랄라의 날’로 선포했다.

처음부터 ‘투사’는 아니었다. 블로그 활동에 나서던 2009년 1월3일 말랄라의 일기는 ‘나는 두렵다’로 시작한다. 탈레반의 포고령 때문에 늘 주위를 살펴야 했고, 학교를 오가는 일 자체가 위험천만하던 시절의 기록이다. 귀갓길에 한 남자가 누군가에게 ‘내가 너를 죽일 거야’라고 소리치는 걸 듣고 공포에 떨기도 했다. 소녀의 표현대로 ‘일 년 내내 협박을 받고 있었다’. 그런 말랄라가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왜 교육이 필요한가’에 대한 확신이었다. “저들은 날 막을 수 없어요. 집에 있든, 학교에 있든, 어디에 있든 교육을 받을 거예요.” 세계의 다른 곳에 사는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어 게으름 피울 때, 말랄라는 학교에 가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말랄라에게 “학교에 간다는 것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저 시간을 보내는 하나의 방식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였다.

소녀의 용기는 확고한 신념에서 비롯했지만, 기저에는 인권운동가인 아버지의 절대적 사랑이 깔려 있었다. 아버지의 양성평등 신념은 남달랐다. 아버지의 옷 주머니에는 나치를 겪은 마르틴 니묄러의 시 ‘처음 그들이 왔을 때’가 언제나 들어 있었다. 시인이 읊조렸듯이, ‘침묵’으로 부조리에 동조할 때 공동체가 무너지고, 이웃이 무너지고, 결국 자신마저 무너지게 된다는 게 아버지의 믿음이었다. 아버지는 늘 말했다. “말랄라는 새처럼 자유롭게 살 거야.” 말랄라가 시장통에서 아몬드를 욕심내자 얇은 주머니를 털어 몽땅 사줌으로써 물욕을 경계한 일도 있다. 집 밖에선 학교를 세우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목숨을 내걸다시피 했다. 어느 자식에게나 부모는 첫 스승이자 마지막 스승일 터이다.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는 이제 도저한 인간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소녀가 보여준 불굴의 용기는 물론, 열과 성을 다해 꺼져가던 생명을 구해낸 의료진,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지구촌의 많은 시민들 또한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입증했다. 책의 말미에서 밝힌 대로 말랄라가 “ ‘탈레반에게 총 맞은 소녀’가 아닌 ‘교육을 위해 싸운 소녀’로 기억되길” 기도한다. 더 많은 아이들이 배움을 통해 전쟁과 가난, 성차별에서 해방돼 빛나는 삶을 개척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다만 지난해 후보에 올랐을 때 “너무 어린 사람에게 주면 인생을 영원히 바꿔놓게 된다”며 보류했다는 노벨위원회 관계자의 말이 걸린다. 노벨상 수상자라는 무게에 치여 젊음과 개인적 삶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최신형 휴대전화를 갖고 싶어 하고, 가끔 ‘미드’(미국 드라마)도 즐기는 지금의 말랄라 모습을 간직했으면 싶다.

책을 다시 뒤적이다보니 ‘여기까지 읽었다’는 의미로 그어놓은 슬래시(/)가 눈에 많이 띈다. 시간을 쪼개 읽은 데 주된 원인이 있겠으나, 아마 한 단락, 한 구절이라도 빠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 시상식장에 설 말랄라를 생각하니, 14년 전 김대중 대통령이 평화상을 받을 때 수행취재단으로 노르웨이 오슬로를 찾은 기억이 새롭다. 말랄라는 CNN의 앵커 크리스틴 아만푸어와의 인터뷰에서 “그들(탈레반)은 내 몸을 쏠 수 있을 뿐 내 꿈을 쏠 수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12월 오슬로에서 울려퍼질 말랄라의 외침이, 그 외침이 빚어낼 파장이, 그 파장이 만들어낼 변화가 기다려진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