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새로운 장정에 올랐다

2014.10.30 21:13 입력 2014.10.30 21:37 수정
홍인표 국제에디터·중국전문기자

중국 인민해방군 전신인 홍군의 장정 출발(1934년 10월) 80주년을 맞아 관련 유적이 많은 중국 남부 장시(江西)성을 찾았다. 장시성에 자리 잡은 징강산(井岡山)은 마오쩌둥(毛澤東)과 주더(朱德)가 힘을 합쳐 홍군을 창설해 국민당 국군에 맞섰던 천혜의 요새였다.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베이징에서 징강산까지는 하루에 단 한 편의 비행기밖에 없었다. 공항에 내려서도 자동차로 한참을 가야 했다. 장정의 출발지인 위두(于都)현을 비롯해 중앙소비에트정부가 들어섰던 루이진(瑞金)시, 징강산 모두 관련 유적을 잘 보존하고 있었다. 징강산 기슭 혁명박물관 앞에는 마오쩌둥이 1965년 5월 다시 찾아온 것을 기념해 세운 대형 동상이 있었다. 징강산 열사릉이나 루이진 열사기념관, 홍군이 2만5000리 장정길에 올랐던 출발지인 궁장(貢江) 강변에도 대형 기념관이 있었다.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초기 홍군 활동 시절 농민들의 헌신은 대단했다. 루이진은 장정 당시 전체 24만명 주민 가운데 11만3000명이 홍군에 참전해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 부녀자들은 앞다퉈 패물을 홍군에 희사했다. 마오쩌둥을 비롯한 공산당 지도부가 농민들과 잘 어울렸다는 점도 있었겠지만 공산당에 대한 농민들의 기대는 컸다.

[홍인표의 차이나칼럼]시진핑, 새로운 장정에 올랐다

홍군 지도부의 과거 사무실이나 침실을 보면 아주 소박했다. 마오쩌둥의 숙소나 사무실이라고 해봐야 단칸방에 불과했다. 루이진에는 마오쩌둥이 직접 판 우물이 있다. 농민들은 우물을 파면 용이 노한다는 미신을 갖고 있어 더러운 개울물을 마시고 있는 걸 보고는 마오쩌둥이 1933년 4월 직접 우물을 팠다. 용이 노하면 본인이 책임을 지겠다면서 말이다. 우물 고사는 바로 중국 공산당 초기 지도부가 얼마나 농민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 중국 사회의 지식인과 농민들은 분명한 신분차이가 있었다. 지식인들은 농민들과 대화조차 꺼렸다. 장군들이 사병들을 상대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공산당 지도부는 농민들과 직접 어울리면서 호흡을 함께했다.

그런데 과거 홍군 활동지역의 경제가 너무 낙후했다. 장정 출발지인 위두현은 인구가 100만명이나 되는 곳이지만, 정부가 지정한 빈곤현이었다. 1인당 연간 수입이 2300위안에 불과했다. 35만명이 외지로 돈벌이를 나가고 있었다. 위두현은 루이진에서 자동차로 4시간 거리에 있었다. 일단 교통이 불편했다. 고속철도나 고속도로가 없었다.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덩샤오핑이 주장한 선부론은 먼저 돈을 벌 수 있는 곳부터 돈을 벌어 파이를 키우자는 이론이다. 덕분에 동부연해지방은 무역을 하면서 눈부시게 성장했다. 서부내륙지방은 서부대개발이라는 국책 사업 덕분에 혜택을 봤다. 중앙정부도 뒤늦은 감은 있지만 2012년 6월, 과거 홍군 활동 지역에 대한 지원 강화를 정책으로 확정했다. 루이진은 시내 곳곳에 재개발 아파트 건설공사가 한창이어서 그나마 징강산이나 위두현보다는 사정이 나아보였다.

장정은 1934년 10월 장시성 위두현을 떠나 1936년 10월 서북지방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에 도착한 2만5000리(9700㎞) 행군을 말한다. 홍군은 처음에는 8만명이 출발했지만 7000명까지 줄었다. 뒤에는 국민당 국군이 쫓아오고 앞에는 진사(金沙)강의 급물살과 설산을 넘어가면서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겼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장정을 마친 뒤 불과 13년 만에 중국 대륙을 휩쓸었다. 장정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씨앗이나 자양분이었다.

지금 중국은 제2의 장정을 떠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서방 민주주의가 아닌 중국식 민주주의를 유지하면서 경제력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겠다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80년 전 장정처럼 수많은 산과 강이 가로막을 것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개혁을 하겠다고 하지만 기득권을 갖고 있는 이익집단의 반발도 거셀 것이다. 반부패 정풍운동을 한다고 해도 모두가 납득하는 결과가 아니면 자칫 안 하니만 못한 후폭풍도 예상된다. 이번 장정은 과거 장정과 달리 목표는 있지만 종착역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시진핑 주석은 저장성 당서기 시절이던 2006년 장정 도착 70주년 기념 전시회에 참석해 “장정은 중국 공산당이 승리로 향한 위대한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혁명전통을 계승하고 이상과 신념을 갖고 새로운 업적을 이룩하자”고 강조한 바 있다. 중국 최고 지도자가 된 시진핑 주석은 이제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목표를 세운 채 새로운 장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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