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IB, 아직 중국의 ‘승리’ 아니다

2015.04.08 20:48 입력 2015.04.08 21:25 수정
이일영 | 한신대 교수·경제학

중국이 주도해 설립하고 있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급속히 세를 확대하고 있다. 작년 10월 베이징에서 21개국이 모인 가운데 AIIB 양해각서 체결을 할 때는 반신반의하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반전의 계기가 지난 3월12일 영국이 가입을 공식 선언하면서 가시화됐다. 이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이 잇따라 가입 의사를 밝혔으며, 3월27일에는 드디어 한국 정부도 참여를 결정했다. 미국과 일본 내에서도 AIIB 가입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제와 세상]AIIB, 아직 중국의 ‘승리’ 아니다

정치군사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아시아 전략이 일정하게 갈등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AIIB를 중국과 미국의 패권 싸움의 장으로 보고 미·일 연합군이 중국에 ‘패배’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매사를 아군·적군으로 가르고 미국·중국에 대한 콤플렉스가 강한 일본 극우파식 사고방식이다. 영국은 물론 한국도 사안별로 수지타산을 생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미국도 세상 모든 일을 주관하고 불변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AIIB 자체도 여러 얼굴을 지니고 있다.

기본적으로 AIIB에는 아시아 전체의 인프라 정비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역할이 있다. 기존의 세계은행(IBRD)과 아시아개발은행(ADB) 같은 국제금융기관은 빈곤 대책을 중시하는 편이다. ADB 자금이 인프라 건설에 투입되는 규모는 연간 약 100억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ADB의 추계에 의하면, 2010~2020년의 10년간 아시아의 인프라 정비에 필요한 자금은 8조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AIIB는 참여한 국가들의 잉여 자금을 자금이 부족한 국가·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이 일차적 역할이다.

중국의 국가전략 측면에서 보면, AIIB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금융인프라의 일환이다. ‘일대’(一帶)는 중국의 중서부 개발과 중앙아시아 진출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경제벨트를 말한다. ‘일로’(一路)는 중국 남부지역 개발과 동남아 진출을 연계하는 21세기 해양 실크로드를 의미한다.

중국은 1980년대에 연해지역을 점·선·면으로 우선 개방하는 불균형발전을 추진한 바 있다. 2000년 이후 서부대개발, 동북진흥계획, 중부굴기를 차례로 천명하면서 개방을 내륙으로까지 확대했다. 중국이 2013년부터 공식화한 ‘일대일로’ 구상은 종래의 국내 거점 차원의 성장전략에서 나아가 중국과 아시아 지역을 연결하는 공간 형성을 성장 축으로 삼으려는 발전모델이다.

‘일대일로’ 전략은 영토문제를 안고 있는 인근 국가·지역들과의 경제협력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중국의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증대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2014년 말 이후 AIIB 설립이 급진전된 것은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갑자기 높아져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중국 내부에서도 상당히 절박한 요구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2015년 중국의 양회(兩會·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보고된 ‘일대일로’ 전략은 일종의 경기부양책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국내에 건설 중이거나 건설 예정인 인프라 규모는 1조400억위안이며, 해외 투자 규모는 524억달러이다. 2015년 신규 투자에는 4000억위안 정도의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를 통해 2015년 중국 GDP 성장률 0.25%포인트 정도의 상승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뉴 노멀’(新常態)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성장전략의 전환’을 공식화하고 있다. 과거 10%대의 높은 성장률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으므로 7%대의 성장률을 용인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상보다 성장률 감속이 빠르다. 2015년 1~2월 공업 이윤은 전년 대비 4.2% 축소되었는데, 그 와중에 산업간·지역간 수익성 격차가 커지고 있다. 석유·석탄 등 자원과 철강·시멘트 등 중공업 의존도가 높은 지방의 경기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AIIB와 ‘일대일로’는 글로벌 불황과 과잉 설비에 대응하는 중국의 새로운 발전전략이다. 중국은 아직 ‘승리’한 것이 아니다. 미국이 경제적으로는 위기와 대결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이에 대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월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공표하면서, 미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했다”는 자신감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러면서 미국의 경제력이 더 이상 압도적이지 않고 세계경제의 성장을 견인하지도 못한다는 점도 인정했다. 미국은 아직 ‘패배’한 것이 아니고 불황과의 싸움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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