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다가온 디플레이션

2015.04.15 21:28 입력 2015.04.15 21:45 수정
정대영 | 송현경제연구소장

한국 경제는 저성장에 이어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징후까지 나타나고 있다. 생산자물가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3년째 계속 떨어지고 있다. 소비자물가는 2014년 하반기 이후 1% 내외 상승하다가, 2015년 3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0.4% 오르는 데 그쳤다. 올해 초의 담뱃세 인상분을 감안하면 소비자물가도 올해 들어 하락세로 돌아선 상황이다. 통계적으로 소비자물가지수는 작성 과정에서 실제보다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있고 이를 소비자물가지수의 상향편의(upward bias)라고 한다. 한국도 소비자물가지수의 상향편의가 어느 정도 있다면 이미 디플레이션 초기 단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경제와 세상]가까이 다가온 디플레이션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인플레이션은 분배구조 악화, 실물자산에 대한 투기 확산, 경제의 불확실성 증대 등의 부작용이 크다.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디플레이션도 이에 못지않게 국민경제에 많은 피해를 준다. 소비자들은 물가하락세가 지속되면 물가가 더 떨어진 다음에 소비하려 하기 때문에 소비가 계속 위축된다. 기업과 가계가 갖고 있는 부채는 물가가 떨어지면 실질가치가 올라 기업이나 가계의 부채 부담이 커진다. 기업은 같은 물량을 팔아도 가격하락으로 매출액이 감소하고, 인건비 등의 비용을 줄이기 어려워져 수익이 악화된다. 이에 따라 정부의 조세 수입도 늘어나기 어려워 재정건전성이 악화된다.

디플레이션에도 인플레이션과 같이 비용요인과 수요요인 양쪽에서 모두 나타날 수 있다. 최근 국제유가 하락과 농축산물 가격 안정은 비용 쪽에서 물가를 하락시키는 요인이다. 수요 쪽에서 보면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가계의 소득 감소, 고령화와 양극화 등으로 인한 소비 주력 계층의 위축, 전셋값 상승과 미래 불확실성 증가 등이 복합되어 소비를 위축시켜 물가를 떨어뜨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비용요인은 일시적이고 충격이 장기화되지 않는다. 국제유가는 떨어져도 어느 수준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반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농축산물 가격은 작황 등이 나빠지면 상승세로 곧 돌아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수요요인은 장기화되고 구조적인 경우가 많다. 저성장, 고령화와 양극화, 불확실성 등 문제는 쉽게 해결하기 어렵고 계속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면 디플레이션의 이러한 수요 부진요인을 더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많다. 연초 담뱃세 인상과 일부 봉급생활자의 세금을 늘린 소득세 개편은 중·하위 계층의 처분가능소득을 감소시켜 소비를 줄인다. 물가하락을 틈탄 지하철 등 공공요금 인상도 비슷한 효과를 줄 것이다. 또한 정부가 집값 지지를 위해 조장하다시피 하는 전셋값 상승도 소비를 위축시켜 디플레이션을 고착화시키고 있다. 한창 소비가 이루어질 30~40대 가정은 미친 듯이 오르는 전셋값을 마련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을 수 없다.

안심전환대출도 가계의 이자 부담을 조금 줄여주는 것 같지만 실제는 원금까지 같이 갚아야 하기 때문에 당장은 은행에 내야 할 돈이 늘어난다. 이것도 상당 기간 수요 감소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혁도 필요성이 있는 정책이지만 공무원의 노후 불확실성을 키워 소비를 위축시킨다. 가능한 한 빨리 마무리하고, 과도한 혜택을 누리는 고위 공무원을 주요 개혁 대상으로 하여야 한다. 또한 정규직 근로자의 해고를 쉽게 하겠다는 노동시장 개혁도 가계의 불확실성을 키워 소비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다.

한국에서 물가에 대한 기대심리는 아직 물가상승 쪽이어서 디플레이션을 막을 시간은 조금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잘못된 정책으로 디플레이션을 부추기면 디플레이션이 고착화되고 사람의 기대심리도 변한다. 이렇게 되면 가계는 소비를 가능한 한 뒤로 미루게 되고, 이는 다시 물가와 성장을 떨어뜨린다. 경제는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 빠진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침체의 늪에서 고생하고 있는 이유이다. 일본은 선진국이 되고 복지도 어느 정도 갖추어진 상태에서 경제가 위축되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 국민이 겪는 장기침체와 디플레이션의 고통은 일본보다 훨씬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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