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역학조사관

2015.07.01 21:24 입력 2015.07.01 21:35 수정
강진구 논설위원

할리우드 영화 <컨테이젼>(2011년)은 감염재난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블록버스터다. 4년 전 개봉했던 이 영화가 최근 다시 주목을 끄는 이유는 한 달 이상 전국을 혼돈으로 몰아 넣고 있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여파 때문일 것이다. 특히 해외에서의 사소한 접촉을 통한 최초감염, 바이러스의 급속한 전파, 정보 차단 상태에서의 공포, 안이한 초동대응까지 메르스 사태를 너무나 많이 닮았다.

<컨테이젼>에서는 미국 질병통제센터 역학조사관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이들이 바이러스뿐 아니라 온갖 소문과 공포가 퍼지는 상황에서 감염현장을 지휘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강력한 행정 통제권한에 있다. 미국은 센터 산하에 역학전문요원 양성과정(2년)을 두고 매년 80여명을 선발한다. 경쟁률이 10 대 1에 달한다. 이 자리에 의사는 물론 역학, 생물통계학, 환경과학, 사회과학, 행동과학, 영향과학 등 다양한 학위소지자들이 도전한다. 카운티 폐쇄와 이동권 제한에 필요한 행정능력은 물론 주민설득과 공포통제를 위한 미디어 대응능력 등 질병수사관으로서 임무수행에 필요한 모든 교육이 실시된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생화학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도입된 역학조사관제는 상시감시체계를 갖추고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감염병 발생과 확산을 차단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01년 탄저테러, 2003년 사스(SARS),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확산 사태 때 드러났듯 이들에 대한 미국민들의 믿음은 거의 절대적이다.

우리 사정은 어떨까. 5월29일 메르스 14번째 감염자를 급히 추적하기 위해 삼성서울병원을 찾아간 역학조사관 3명은 보안요원들이 출입문을 열어주지 않고 응급실 환자 명단도 제때 받지 못해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간병원에서조차 문전박대를 당한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17개 시·도에 걸쳐 역학조사에 동원된 역학조사관 인력 역시 34명에 불과했고 이 중 질병관리본부 소속 정규직은 고작 2명뿐이었다. 지난달 25일 뒤늦게 국회에서 역학조사관 인원을 2배로 늘리고 위험지역 폐쇄, 통행차단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하는 법률이 통과되긴 했지만 ‘만시지탄’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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