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되고 못된 너, 사람아

2015.09.18 20:55 입력 2015.09.18 20:59 수정
김인국 | 옥천성당 주임신부

사람은 사람끼리 사람에 대한 기대를 주고받는다. 사람이라면 아무리 못해도 이러이러 저러저러하리라는 대략의 믿음 말이다. 잘된 사람을 보면 흐뭇하고 다된 사람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도, 덜된 사람을 보면 안타깝고 못된 사람을 보면 화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지 남의 서투름과 미련을 통탄하고 남의 성숙과 완덕에 대해 경탄하다니 좀 이상하다. 그가 추하거나 아름답거나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 만일 그 누군가에 대해 속상해하거나 화를 내고 있다면 그것은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자에 대한 실망, 그로 인해 입는 피해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마땅한 품위와 긍지를 드러내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확인하며 아프게 탄식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절로 숙연해지거나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다된, 잘된 사람을 통해 인간이란 과연 우리가 아는 인간 그 이상의 신비로운 존재라는 점을 새삼 실감하며 감사하는 반응인 것이다.

[사유와 성찰]덜되고 못된 너, 사람아

상점에 가보면 진열대의 상품 앞에 하나하나 품질의 등급을 매기고 그에 따라 가격도 제각각으로 표시해두고 있다. 요즘 같아서는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자동차마다 붙어 있는 에너지효율 소비등급처럼 이 사람이 얼마나 먹고, 얼마나 일을 해내는지 그런 딱지만이라도 이마든 뺨이든 어디라도 붙여주었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다. 대대로 무위도식하면서도 거저 살아가는 은혜에 고마워하기는커녕 날로 떵떵거리는 세도가 가소로워 하는 말이다. 사람에게 품질과 가격을 표시하자니 좀 그렇지만 이미 인품, 인격이라는 말이 있다. 인품은 인간의 품질, 인격은 인물의 가격이라는 뜻이 아니던가. 제멋대로 사람을 귀하게 혹은 천하게 대하고, 함부로 사람을 높게 혹은 낮게, 무겁게 혹은 가볍게 구분 짓던데 좋다. 기왕 사람을 차별하고 싶으면 인품이든 인격이든 따져보자. 틀림없이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리라.

어째 세상 돌아가는 꼴이 이렇게 한심하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하지만 함께 살아서 인간이고, 함께 살아야 하는 인생이니 싱겁고 모자란 놈들 탓만 할 수 없다. 때로는 혼을 내주기도 하고, 때로는 얼차려라도 시키면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해야 한다. 혼내기와 얼차려는 화풀이나 앙갚음이 아니다. 혼내는 일은 나의 뜨거운 혼을 덜어서 내어주는 신성한 봉헌이다. 욕망만 이글거릴 뿐 차갑고 어두워진 영혼의 등잔에 내 기름을 보태주면서 꺾인 심지를 바로 세워주는 일, 그것이 혼내주는 일이다.

얼차려도 마찬가지다. 금고는 그득하다만 얼은 텅 비어 있는 비루한 자들에게 나의 맑고 시원한 얼을 아낌없이 덜어내서 한 상 푸짐하게 차려주는 일, 그것이 얼차려다. 얼이 썩어 어리석은 가련한 처지를 외면하지 못하고 손 내미는 일이 얼차려란 말이다.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쳤지만 덜되고 못된, 그래서 불쌍한 놈들을 혼내는 일은 멈출 수 없다. 가만두면 돌이킬 수 없이 나빠질 테니 말이다. 기운을 내자. 자고로 혼내주는 일은 호의호식, 희희낙락하는 자들이 아니라 밤낮 궂은일을 도맡는 밑바닥 성자들의 사명이었다.

덜떨어진 자들의 줄기찬 패악에 경악하고 망연자실하다 보면 투지는 사라지고 무기력해지기 마련이다. 좋아질 세상이 아니라고 슬그머니 물러나 앉은 이들을 알고 있다. 좋아졌으면 벌써 좋아졌지 하는 소리도 사실 억지는 아니다. 다 좋다. 그러나 그렇게 돌아서고 나면 여전히 들끓는 기운을 어디에다 쓸 것인가. 사랑 말고 또 어디에다 우리의 사랑을 쏟겠다는 말인가. 아무리 잘라내도 또 다른 머리를 들고 나타나는 독재가 지겹기도 할 것이다. 번번이 당하면서도 배신을 안기는 민심이 야속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대적이 없으면 진보가 없어요. 오죽 못생겼으면 대적이 없습니까?”라는 말에 귀를 기울여보라. 상대가 큰 적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크기 때문이라는 이 격려는 다된 사람, 잘된 사람의 표상 다석 류영모 선생의 말씀이다. 이런 말도 남겼다. “우리가 있는 동안에 몸을 가졌으면 서로 도와야 해요. 몸이란 순전히 남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 생긴 것이니까요.” 순국으로 의를 일으킨 4·19혁명의 희생자들을 두고 한 말이었는데 이게 어디 어제만의 이야기이랴. 아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그럴 수 있느냐며 혼을 내주느라 쌍용차 김득중이 오늘 단식 20일째를 맞는다.

의를 도탑게 하는 돈의(敦義)의 계절, 가을이다. 사람 때문에 상처입고 세상에 절망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자. 미워할 것을 미워하고 사랑할 것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야 변치 않으셨으리라. 그러면 잠시 쉬어가도 좋다. 모든 사물로부터 해방되는 주말, 부디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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