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은 어딘가 통과하는 게 아름답다’

2016.05.01 20:50 입력 2016.05.01 20:53 수정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1센티미터 두께의 손가락을 통과하는

햇빛의 혼잣말을 알아듣는다

불투명한 분홍 창이

내 손 일부이기 때문이다

국경선이 있는 손바닥은

역광을 움켜쥐었다만

실핏줄이 있는 종려 이파리는 어찌

얼비치는 걸까

구석구석 드러난 명암이기에

손가락은 눈이 없어도 표정이 있지

햇빛이 고인 손톱마다

환해서 비릿한 슬픔

손바닥의 넓이를 곰곰이 따지자면

넝쿨식물이 자랄 수 없을까

이토록 섬세한 공소(空所)의 햇빛이 키우고,

분홍 스테인드글라스가 가꾸는,

인동초 지문이

손가락뼈의 고딕을 따라간다

- 송재학(1955~ )

[경향시선]‘햇빛은 어딘가 통과하는 게 아름답다’

손가락을 투과하는 햇빛을 보며, 투명한 손가락에서 자라는 나뭇잎 잎맥을 읽으며, 시인은 투명한 몸을 꿈꾸는 모양이다. 엑스레이를 찍듯이, MRI 영상을 찍듯이, “인동초 지문”과 “손가락뼈의 고딕”이 보이는 몸을 완상하는 모양이다. 햇빛을 비추면 “불투명한 분홍 창”이 되는 몸을 잠시 동물적인 육체에서 해방시켜 보려나 보다. 고작 칠팔십 년 사는 몸에서 고생대, 원생대의 지층을 탐사하려나 보다. 식물에서 동물로 갈라져 나온 진화의 시간을 감상하려나 보다. 실핏줄을 잎맥으로 바꾸어 보고 뼈를 뿌리와 가지로 바꾸어 보려나 보다. 그래서 내 몸에서 피어날 꽃과 열매가 어떤 모양일지 상상하려나 보다.

햇살에 온몸을 비벼보고 싶은 5월이다. 들숨을 크게 쉬면 하늘이 통째로 몸으로 들어올 것 같은 5월이다. 이 푸른 5월에 할 일. 생각과 욕심과 스마트폰 정보가 가득한 몸에 햇빛과 바람을 넣어 주기. 햇빛이 투과시켜 몸을 한껏 투명하게 하기. 내 몸에서 넝쿨식물의 줄기처럼 뻗어가는 식물성 뼈와 핏줄과 신경을 느끼기. 털구멍마다 가지와 뿌리가 돋아나는 식물성 육체 되기. 그래서 육식과 잡식으로 생긴 동물성 비린내 대신 풋내와 향기가 나게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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