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의 이름

2016.06.28 21:43 입력 2016.06.28 21:48 수정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무왕이 폭군 주왕을 정벌하려고 나서는데 처음 보는 두 사람이 말고삐를 당기며 만류한다. “부친의 장례도 치르기 전에 전쟁을 일으키니 효성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까? 신하로서 군주를 시해하려 하니 어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무왕의 통치를 거부하고 굶어죽은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다. 고결하게 절의를 지킨 인물의 대명사로 오늘 우리에게까지 잘 알려진 이들이지만, 목숨을 건 전쟁을 치르려 비장하게 출발하는 군대의 입장에서는 권위를 무너뜨리고 사기를 해치는 방해꾼일 뿐이다. 무왕 곁의 군사들이 백이와 숙제를 죽이려 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왕을 보좌하던 강태공이 나서 말리고 보호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허망하게 죽고 말았을 것이며 그 이름이 후세에 전해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들을 죽여서는 안되는 이유를 강태공은 한마디로 표현했다. “이분들은 의인이다.”

[송혁기의 책상물림]의인의 이름

사마천은 왕과 제후들의 역사로 이미 연대기적 기록이 완료된 <사기>에 다시 개별 인물들의 삶을 다룬 70편의 <열전>을 더하면서 백이와 숙제 이야기를 머리말처럼 얹었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어떤 이들은 자손 대대로 잘 먹고 잘사는데, 이처럼 훌륭한 의인은 왜 그리 비참하게 굶어죽어야 했는가? 도대체 하늘의 올바른 뜻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각자도생의 무한경쟁사회를 살아내야 하는 오늘,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의인의 소식을 접하면 우리는 무한한 존경심과 부끄러움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의인은 이상적인 인간이지만, 많은 의인을 필요로 하는 사회는 결코 이상적이지 않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있다면 누군가의 뼈저린 희생이 아니라 정상적이고 적절한 시스템에 의해서 충분한 도움을 받아야 온전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재난이나 참사와 관련해 의인이라는 말이 유독 많이 들리는 것은, 그만큼 국가의 기능이 온전치 못함을 의미하는 셈이다.

묵자(墨子)는 의인이 윗자리에 있으면 세상이 안정된다고 했다. 자신을 희생하며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한 의인이 그에 합당한 대우는커녕 가장 낮은 자리에서 고통과 수모 끝에 쓸쓸히 숨져갔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국가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민간잠수사 고 김관홍님. 의인의 이름을 기억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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