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 사케르

2016.08.31 20:51 입력 2016.08.31 20:53 수정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의 수하한화]몬스 사케르

언제라고 딱 점칠 수는 없지만, 이대로 가면 머잖아 이 나라가 망할 것 같다. 설령 완전히 망하지는 않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절망적인 상황이 닥치는 게 아닐까, 그런 불길한 예감이 날이 갈수록 짙어진다. 지금 이 나라 지배층과 그들을 에워싼 이른바 ‘엘리트’들의 정신상태는 120년 전 조선왕조 말기의 지배층의 그것과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나라를 살리겠다고 일어선 백성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그 진정한 요구가 무엇인지 귀 기울여 들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외국 군대를 불러들여 제 나라 백성들을 무참하게 학살하는 방식을 선택했던 그 조선의 지배층 말이다.

지금은 120년 전과는 다른 세상이라고 말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든든한 ‘동맹국’ 미국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그리하여 그저 미국에 순종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아니, 이 나라 주류 기득권층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엊그제 청와대와의 갈등 때문에 사표를 낸 모 신문사의 주필이라는 사람이 그동안 어떤 글을 썼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가장 최근에 쓴 칼럼의 제목이 ‘미국이 화내는 건 무섭지 않나’였다. 즉 ‘사드’ 배치를 둘러싼 논쟁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우려하는 ‘어리석음’을 비판하는 글이었다. (그러니까 미국을 섬기고 사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동류들이 지금 우리가 잘 모르는 이유로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짜 걱정해야 할 사태는 무슨 전쟁이 아니라 내부적인 붕괴와 몰락이다. 국가나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경제력과 군사력이 아니라 도덕적·윤리적 기반과 최소한도의 합리적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날마다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세월호 사태의 진상규명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이 정부의 파렴치한 행동, 맹독성 녹조가 창궐하고 있는 4대강 물의 수질이 문제없다고 천연스레 거짓말을 하는 환경부의 뻔뻔스러움 등등,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정부 사람들뿐만 아니다. 입만 열면 ‘애국’을 말하고, 미국의 ‘은혜’를 이야기하는 대한민국 기득권층 사람들의 실제 행동을 보라. 그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공익 내지 국익으로 끊임없이 위장, 은폐하면서 상습적인 거짓말을 한다는 점이다.

국가기관 고위직에 내정되어 인사청문회에 오른 인물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심히 부도덕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출세를 해온 자들로 드러나는 것을 우리는 지겹게 보아왔다. 하지만 가장 경악할 것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자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썩을 대로 썩은 상류층 사회에서 길들여지다 보면 진실과 허위, 선악, 미추를 분간하는 감각 자체가 마멸돼버리는지 모른다. 자신의 손으로 정직하게 먹고사는 가난한 백성들이 ‘개·돼지’로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깰 수 있을까?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지배층의 자발적인 선의나 양보에 의해서 민주적인 사회, 보다 평등하고 인간적인 사회가 열리는 일은 없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 역사적으로 매우 오래된 흥미로운 선례가 있다. 그것은 옛날 로마공화국 초기에 발생한 ‘총파업’ 사태이다. 원래 고대 로마는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면서 ‘원로원과 로마 인민’의 나라로 정의했다. 원로원은 로마라는 도시국가를 건설한 귀족들의 후예로 구성되었지만, 여기서 ‘인민’이라는 것은 로마 전체 주민이 아니라 건국 이후 여러 형태로 공적을 쌓거나 큰 재산을 축적한 부르주아계층을 뜻했다. 대다수 민중, 즉 농민, 장인, 소상인, 사무원, 해방노예 등은 ‘인민’에서 제외됐고, 따라서 참정권도 없었다.

이 무렵의 로마 평민들은 계속되는 전쟁에 끌려 나가는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전쟁이 끝난 상태에서도 삶은 절망적이었다. 그들은 항용 빚으로 살았고, 빚을 갚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채무노예가 되어 가혹한 처우를 당하거나 노예시장에서 팔려도, 죽임을 당해도 불평을 할 수 없었다.

이 상태를 개선하고자 그들은 떼를 지어 광장에 나가 부채의 탕감, 토지의 재분배, 참정권을 요구하며 소동을 벌였다. 그러나 로마 지배층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이에 기원전 494년 어느 날 평민들은 일제히 자신들이 하던 일을 중지하고 로마로부터 5㎞ 떨어져 있는 산(‘몬스 사케르’ = ‘거룩한 산’)으로 올라가 자기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내려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다급해진 원로원이 여러 차례 사자(使者)를 보내 로마가 외적의 침입 때문에 위험한 상태라고 설명하고, 제발 내려오라고 요청했다. 어떤 귀족은 평민들을 설득할 목적으로 우화를 지었다. 즉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손발이 위장에 원한을 품고 먹을거리를 입으로 운반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 때문에 영양실조로 위장이 죽어버렸지만, 결국 손발도 힘을 잃고 죽어버렸다,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평민들은 완강히 하산을 거부했다. 그래서 결국 원로원이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채무노예의 해방, 부채 탕감 이외에 평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2명의 호민관을 두는 제도를 신설할 것을 결정하였다. 로마의 유명한 호민관제도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로마의 평민들이 ‘몬스 사케르’로 올라가는 일은 그 뒤에도 여러 번 있었지만, 어쨌든 이 비폭력적인 투쟁을 통해서 평민들은 그때마다 민주적 권리를 쟁취해냈고, 이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로마는 보다 안정되고 질서 있는 사회로 존속하는 게 가능했다.

주목할 것은 로마의 평민들이 죽창이나 쇠스랑을 들고 귀족들에게 대항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비폭력적인 비협력·불복종을 통해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이다. 따져보면 민중이 민주적 권리를 쟁취하는 데에 이것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온갖 합법적·불법적 장치와 탄압 밑에서 노동자와 시민들의 단결된 행동이 조직적으로 차단된 사회에 살고 있다. 이 상황이 계속되면 민중은 물론 궁극적으로 지배층도 공멸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현대식 ‘몬스 사케르’ 투쟁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가장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계급투쟁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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