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 사이의 한국 경제

2016.09.08 21:09 입력 2016.09.08 21:18 수정

[로그인]G2 사이의 한국 경제

2000년대 초 중국에 처음 갔을 때 받은 인상은 ‘참 형편없다’였다. 수도 베이징은 온통 흙먼지투성이에 도로는 자전거로 가득했다. 쯔진청(紫禁城)을 구경하고 나오니 바나나 뭉치를 들이밀고 “1000원”을 외치는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량들이 짙은 안개로 길이 막히자 ‘그냥’ 역주행해 도로를 빠져나갔다. 도중에 들른 휴게소 화장실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지저분했다. 당시 중국은 개혁·개방으로 본격적인 경제발전 궤도에 오르던 때다. 하지만 이 단편적인 경험들은 ‘중국은 아직 한참 멀었다’라는 우월감, 경시감을 심어줬다. 새로 만든 휴게소의 깔끔한 화장실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앞에 ‘일보전진(一步前進) 문명일진(文明一進)’이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던 것 같다. 한국이라면 ‘남자가 흘리면 안되는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식의 애교 섞인 글귀가 있는 자리다. 소변 볼 때 한발 다가서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하자는 표어에 문명의 진보 운운하는 ‘대륙식’ 허풍이 우스워 보였다.

그랬던 중국이 이제는 초강대국으로 우뚝 서고 있다. 13억명 인구가 일보씩 전진하니 진짜로 중국 문명이 전진한 셈이다. 지난 5일 끝난 항저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요 2개국(G2)으로서의 위상을 인정받기 위해 공들인 이벤트다. 메인 이벤트에 앞서 작지만 상징적인 에피소드가 있었다. 회의 참석차 항저우 공항에 에어포스원을 타고 도착한 오바마 미 대통령은 다른 나라 정상들과 달리 ‘레드카펫’이 달린 이동식 계단이 아닌 비행기 비상용 계단으로 내려왔다. 서방 언론들은 중국이 미국 대통령을 홀대했다고 타전했다. 중국은 이동식 계단을 이용하려다 양국 실무진의 견해가 엇갈려 발생한 우연적 상황이라 했지만, 이 장면은 정치·경제·군사적으로 껄끄러운 미·중 관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의 국제 환경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1930년대와 비슷한 점이 많다. 1929년 미국 주가 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은 전 세계 경제를 침체시켰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자국 경제 회복을 위해 보호무역 장벽을 높이 쌓았다. 자원이 부족한 후발 제국주의 일본은 중국 대륙은 물론, 앞선 강대국들이 선점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식민지도 뺏으려는 영토적 야심을 폭발시켰다. 이를 두고 볼 수 없던 미국은 일본의 목숨줄인 원유 금수 조치를 취했고, 일본은 진주만에 있는 미 태평양함대 사령부에 수백대의 폭격기를 날려 보냈다.

지금의 세계 경제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 나라에서 금융·재정위기가 반복되며 침체 기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후발 강대국인 중국의 급속한 경제적 팽창을 미국이 관세·비관세 장벽을 동원해 견제해 온 지 오래다. 올 연말 대선을 앞둔 미국의 공화당, 민주당 모두에서 보호무역주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미·중은 남중국해 등에서 영토 문제로도 격돌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이 꺼내 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카드는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고 있다. 사드는 좋든 싫든 우리 경제가 가장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중국과 갈등을 촉발할 수밖에 없다. 사드 배치 발표 후 두달 동안 화장품·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중국 관련 기업 10곳의 시가총액이 8조원 가까이 증발했다. G20 정상회의를 우아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참고 있었던 중국이 조만간 경제 보복을 본격화할 거라는 얘기도 있다. 미·중 간에는 갈등 거리 하나를 추가해주면서 세계에는 걱정거리 하나를 더 얹어 줬다.

1930년대에는 일제 강점하에 있던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경제의 이익은 물론, 세계평화를 지키는 데도 기여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독립된 주권을 갖고 있다. 그걸 왜 이렇게 쓰는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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