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셰프님

2016.11.10 21:16 입력 2016.11.10 21:18 수정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할머니 셰프님

서울 서대문구 연남동 경성고 앞에 유명한 밥집이 있다. 둘 다 ‘할머니’라는 말이 들어가는 집이다. 생선구이를 기본으로 하고, 반찬 몇 가지를 더 낸다. 맛 좋고 소박한 분위기도 마음에 든다. 바쁜 점심시간을 피하면 느긋하게 한 상 받아 즐길 수 있다. 생선은 그때그때 달라지는데, 요즘 물 좋은 고등어나 삼치가 자주 올라온다. 대개 두 가지 생선을 함께 담아낸다. 생선 양이 많아 이렇게 받아서 뭐가 남나 싶다. 생선을 굽는 건 공력이 필요한 일이고, 이런 반찬을 성실하게 만들어내는데 단돈 6000원은 참 미안한 값이다. 카드로 내면 주인 손에 쥐는 돈은 5000원 조금 넘으리라. 그 돈의 일부(아마도 원가 비율로 보면 2000원을 절대 넘을 수 없는)로 한 상 보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이런 걸 마술이라고 해야 하나. 생선값은 알다시피 요즘 상당히 비싸다. 폭염이다, 한파다 늘 비싼 채소와 양념값은 또 어떻게 맞추시는지.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할머니 셰프님

요즘 셰프의 전성시대라고 한다. 매니저를 두고 있는 셰프들도 있다. 셰프란 본디 주방장을 말한다. 영어의 치프(chief)가 바로 불어로 셰프(chef)다. 당연히 저 ‘할머니 생선구이집’의 주방 책임자들도 다 셰프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셰프란 하얀 옷 빼입고 높다란 모자 쓴 사람을 일컫는 것으로 오해한다. 이런 오해는 그 ‘할머니 셰프’들의 내부에서 먼저 일어난다. 찬모니, 식모니 하여 봉건시대 노비의 직급으로 그들을 부른다. 그들의 낮은 자존감과 연결지어 이런 호칭이 예사롭지 않다. 누구보다 진짜 셰프처럼 일하면서도 요리사로서의 직업적 자긍심이 높지 않다. 외국 음식이야 그런가보다 하고 먹어도 우리나라 손님들이 한식에는 얼마나 까다로운가. 다 자기 입맛이 있고, 한식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런 손님을 만족시키는 저 수많은 할머니 셰프들이야말로 얼마나 대단한 솜씨인가.

밥집의 단출한 값, 그러니까 5000원이며 6000원은 어쩌면 ‘셀프 착취’의 다른 면모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직접 운영하는 작은 밥집의 여성 주방장들은 자기 몸을 쉼없이 굴려서 모자란 밥값을 벌충한다. 워낙 시장에 진입해 있는 밥집이 많으니 경쟁이 치열해서 값을 올리기도 버겁다. 몸으로 때울 수밖에. 나는 오래된 밥집을 취재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하고 있는데, 아주 특이한 공통 장면이 있다. 그 여성 셰프들은 인터뷰를 하면서도 뭔가 끊임없이 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늘을 까거나 파를 다듬고 열무를 손질한다. 손마디는 거칠고 굵어서 고단한 요리 일의 단련을 입증한다. 이런 진짜 요리사들, 셰프님들에게 우리가 바쳐야 할 헌사는 아직도 모자라다. 미슐랭 가이드가 우리 세금으로 집행한 광고비를 받으며 마지못한 척 한국에 상륙해서 책을 냈다. 물론 할머니 ‘셰프’들은 단 한 명도 미슐랭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욕쟁이 할머니가 아닌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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