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이 빠트린 맛집

2016.11.17 20:26 입력 2016.11.17 20:27 수정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미슐랭이 빠트린 맛집

서울시 기준으로 식당 숫자가 약 12만개다. 인구가 1000만 조금 안되니 식당이 대략 83명당 하나다. 매일 83명의 손님을 받을 수 있다면 식당도 먹고살겠는데, 식당을 안 가거나 거의 가지 않는 사람도 많으니 이 숫자가 더 절박해 보인다. 식당 숫자가 많은 건 이유가 있다. 먹고살기 힘들어서다. 굽고 삶는 기술만 있으면 -아예 자신없는 이들은 프랜차이즈가 해결해준다고 유혹한다- 식당을 연다. 그러고는 자신의 식당에는 적어도 하루 83명이야 오겠지, 하고 기대한다. 둘째, 실업 문제다. 40~50대에 직장에서 쫓겨나면 다수가 자영업으로 들어가게 마련인데, 식당이 제일 만만해 보인다. ‘레드오션’이라는 건 뒤집어보면 그만큼 시장 자체가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방법이 있겠지, 또는 그 시장의 못난 이들을 꺾으면 먹고는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미슐랭이 빠트린 맛집

여기에 청년 창업의 영향이 크다. 취직이 안되니 부모 도움을 받거나 대출을 하는 식으로 식당을 연다. 한동안 카페와 맥줏집, 서양식이나 일본식 식당 등이 선호 업종이었는데, 이제는 달라졌다. 일반 식당 전반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고깃집, 밥집, 떡볶이 등 가리지 않는다. 생존이 다급해졌다는 뜻이다. 그중에서 고깃집으로의 진출이 커졌다. 돼지고깃집들이 기존의 수수한 대중식당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세련미를 더해가는 건 이들의 영향이 크다. 젊은 감각이 서민적인 고깃집에 접목되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1000만마리가 넘는 돼지를 기르고 있다. 1년 기준으로 생산하는 돼지를 따지면 1700만마리 정도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수입량이 엄청나다. 고깃집의 낮은 가격을 떠받치는 건 바로 수입 고기다. 특히 서양에서 환영받지 않는 삼겹살과 목살, 족발, 갈비 등의 수입이 많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돼지고기를 많이 먹었을까. 본디 돼지고기는 소고기와 가격이 비슷했다. 많이 먹을 수 없었고, 주로 잔칫날에 먹는 고기였다. 현대 기술로 도축까지 기르는 기간이 점차 짧아지고 수출 후 남는 부위(삼겹살, 목살)를 한국인이 유달리 좋아하는 즉석구이로 제공하면서 시장이 크게 커졌다. 1980~1990년대 경제성장도 한몫했다. 이제는 서너 집 걸러 한 집은 돼지고기 구이를 판다. 밥집의 다수가 돼지고기 구잇집으로 전업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밥집도 낮에는 밥, 저녁에는 돼지고기 구이를 하는 집이 태반이다. 맛있는 돼지고기를 싸게 먹을 수 있는 건 다행이지만, 저녁에도 찌개 놓고 밥을 먹기 힘들어졌다. 오르는 임대료 때문에 업태 자체가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돼지고기의 세례 속에서 산다.

얼마 전 프랑스의 식당 안내서 미슐랭 가이드 서울판이 나왔다. 박근혜 게이트 때문에 별 화제를 몰고오지 못했지만, 발표하자마자 뒷말이 무성했다. 특히 서울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가장 많이 먹는 업종인 돼지고기 구이집이 하나도 선택받지 못했다. 우리가 무얼 먹고사는지 모르는 이들이 식당을 골랐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외식집의 핵심이던 돼지갈빗집과 1970년대 이후 대세를 이룬 삼겹살집 중에 소개할 만한 곳이 정말 한 집도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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