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모호함의 힘

2016.12.23 20:52 입력 2016.12.23 20:53 수정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칼럼]밥 딜런, 모호함의 힘

고매하고 영예로운 노벨문학상이 지금까지 노래하는 사람한테 돌아간 적은 없다. 스웨덴 한림원은 이런 전통을 깨고 대중가수 밥 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을 시상했다. 당연히 노벨문학상 116년 역사상 ‘최대의 파격’이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결과’라는 보도가 잇따랐다. ‘인쇄’ 문학작가가 아닌 ‘레코딩’ 가수를 선정했을 경우 문학계에서 나올 법한 비판을 의식한 탓인지 한림원은 밥 딜런의 노래를 ‘귀를 위한 시’라고 그리스 시인 사포와 호머까지 들먹이면서 두둔했다.

물론 노벨문학상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파괴력이 떨어지면서 한림원이 관심마케팅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이렇게 뒤따를 논란을 감수하고 그럴듯한 선정 이유를 붙여가면서 상을 준다고 하면 밥 딜런은 감격에 날뛰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감사의 뜻은 즉각 전했어야 했다. 그게 예의이자 도리일 것이다. 그가 어떤 소감을 내놓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는 좋다 안 좋다 한마디 없이 무려 2주간이나 침묵했다. 언론과의 연락도 끊었다.

노벨상 위원회는 당황했고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공식논평은 아니었지만 한 한림원 회원은 “무례하고 건방지다”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물론 나중에 편지로 밥 딜런은 영광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고 한림원도 친절한 답변을 받았다고 해 그것으로 끝인 듯했다. 하지만 또 한 차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소식이 이어졌다. 시상식 현장에는 가지 못하는데 그 이유가 ‘선약이 있어서’라는 것이다.

불참 사유가 미리 정한 약속 때문이라는 ‘해괴한’ 답을 제도 시상식이나 행사에서 들어본 바 있던가. 다시 그의 심기에 대한 다양한 추측들이 쏟아졌다. ‘못 가는 거야, 안 가는 거야?’ 수상을 기뻐하는 것인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인지 그 속내를 누가 알겠는가. ‘문단에 대한 경멸과 모욕’, ‘노쇠한 히피의 소싯적 모습’이라는 부정적 평가와 함께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그의 반응을 놓고 ‘수상 선정만큼이나 신선하다’고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다.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동(?)을 보면서 다시금 ‘논란’이 그의 고유영역임을 확인한다. 발표가 보도되면서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한 것은 ‘밥 딜런은 노벨문학상을 받지 말아야 했다’와 ‘노벨문학상 역사를 바꿨다’는 찬반양론식의 논란이었다. 선정 자체에도 의견이 엇갈렸다. 한쪽은 ‘문학의 고정관념을 깼다’고 손을 들어준 반면 안티 쪽은 ‘가사가 어찌 문학인가?’라며 깎아내렸다. 한림원의 선정 배경에 대해서도 ‘시대정신’이라는 해석과 ‘대중성에의 굴복’이라는 비판이 충돌했다.

어떤 형태든 의견대립이 불거지면 당사자는 진위를 해명하거나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밥 딜런은 이제껏 자신의 행보와 노랫말의 의도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떠들어대고 싸워도 개입하지 않는 태도를 취해왔다.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듯 내버려두곤 했다. 논란이 일어나도 마치 이것도 맞고 저것도 된다는 식으로 일관하는 것이다. 대화를 통해서 속 시원히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매체와의 인터뷰도 매우 인색하다.

그가 남긴 명작 중의 명작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의 경우만 해도 한 여자의 허세에 대한 맹공이니 베이비붐 세대의 자유를 향한 변이니 해석이 분분했지만 진의는 확실하지 않다. 워낙 고도의 은유와 난해한 언어의 배치로 인해 오래전부터 철학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어도 어떤 상황에서 무슨 심정으로 곡들을 써냈는지 정작 본인의 딱 부러진 설명은 없다. 한때 ‘밥 딜런 노랫말의 의미를 정확히 아는 사람’을 찾는 벽보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의 세계는 모호함이다. 이런 것 같기도 하도 저런 것도 같은 게 문학 혹은 예술의 영역 아닌가. 밥 딜런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손광수 작가는 밥 딜런의 존재를 ‘모호함의 미학’이라고 묘사한다. 그게 분명한 입장을 강제하고 명확함을 생명으로 하는 법, 정치, 경제, 사회와 예술이 다른 것 아닐까. 그 모호함이 문화다양성을 잉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밥 딜런이 노벨상 시상식에 안 간 건지 못 간 건지 알 수 없다. 그 사이일 수도 있다. 어쨌든 예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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