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을 논한다는 것

2017.05.12 20:21 입력 2017.05.12 20:24 수정

5월은 다양한 기념일들이 참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비롯해 스승의날, 성년의날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지만 월경의날도 있다. 보통 5일 정도 월경을 하고, 28일 주기로 순환되기에 5월28일을 월경의날로 지정했다고 한다. 어린이날에는 아이와 놀러가고, 어버이날에는 부모님을 찾아뵙는다. 이렇게 보통 ○○의날에는 무엇을 할지 떠오르는 시나리오가 있는데 월경의날은 좀 모르겠다. 보통은 월경의날이 있는지도 모르니, 나는 마을에서 수다회를 열어 수다를 떨기로 했다.

[별별시선]월경을 논한다는 것

수다라면 별 주제 없이도 카페 의자에 앉으면 몇 시간이고 이어지고, SNS와 온라인 메신저로도 시도 때도 없이 하는 것이지만 그 주제가 ‘월경’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직도 생리대를 사면 으레 새까만 비닐봉투에 담아준다. 여전히 생리라는 말을 꺼내지 못해 공산당이니 그날이니 홍장군이니 하는 말을 쓴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식약처 고시에는 생리대를 ‘위생처리용 위생대’라고 빙빙 돌려 표기한다. 인류의 반인 여성이 40년 동안 생리를 하는데, 이렇게들 똘똘 뭉쳐 생리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 일이다.

월경에 대해 다 같이 입을 다물었기에 아직도 사회는 월경에 대해 너무나 모른다. 광고에서는 몸에 꼭 붙는 하얀 스키니진을 입은 모델이 웃으며 뛰어논다. 이렇게 포근하고 산뜻하다고 저마다 강조하지만 일회용 생리대를 한번이라도 사용해본 여성에겐 딴 세상 이야기다. 생리대를 사용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재난상황에서도 필요한 생활필수품이라는 점을 이제라도 알아야 한다.

학교에서 다양한 월경용품에 대해 가르쳤으면 좋겠다. 월경 중에도 탐폰을 사용하면 다양한 신체 활동을 할 수 있지만 쇼크증후군을 조심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알려주었으면 한다. 건강에 해가 없고 쓰레기도 나오지 않는 면월경대를 손바느질로 같이 만들어보고 다양한 모양과 재질의 월경컵을 수업시간에 만나볼 수 있다면 어떨까. 일회용 생리대가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초경을 맞은 친구에게는 월경기간 동안 호르몬에 따른 몸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알려주길 바란다.

기업은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해주면 좋겠다. 독성물질이 어디서 왜 들어갔는지, 우리의 건강과 관련해서 우려되는 상황은 무엇이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공개해주면 소비자로서 막연한 불안감을 버리고 소신껏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안전한 생리대는 여성의 인권이다.

한참 깔창 생리대가 이슈가 되면서 많은 기업과 공공단체가 후원을 시작했고 개인들이 힘을 보탰다. 응급구호세트에서 은근슬쩍 빠질 뻔했던 생리대가 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구급약품 박스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 것도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 덕분인 것 같아 기쁘다. 지난해 6월부터 뉴욕시가 공립학교에서 생리대를 무상으로 제공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우리에겐 더 많은 상상과 수다가 필요하다. 향기나는 생리대가 꼭 필요한 것인지, 더 저렴한 생리대는 만들 수 없는 것인지. 나의 가난을 증명하는 대가로 보건소에서 생리대를 받아와야 하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월경컵은 언제쯤 우리나라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인지, 여성청결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서로에게, 기업에, 정부에 끊임없이 질문해보아야 한다. 월경(月經)은 성경, 불경과 같이 말씀 경자를 사용한다. 월경을 터부시하는 문화 속에서 매직이 되고 빨갱이가 되어 버렸지만 여성의 몸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지혜의 말씀인 셈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만 슬픈 게 아니다. 월경을 월경이라 부르지 못하는 여성들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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