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그러운 사회

2017.06.16 21:04 입력 2017.06.16 21:10 수정

[별별시선]너그러운 사회

피아니스트 백건우씨 공연 중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한 자폐성장애인이 갑자기 무대로 올라 피아노 건반을 누른 것이다. ‘지적장애인을 위한 음악여행’ 공연이었기에 어느 정도의 돌발 행동은 예상했어도 무대 난입은 무척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백씨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자신 옆에서 건반을 치는 지적장애인을 향해 미소 지었다. 안내원이 그를 객석으로 인도할 때까지 온화한 얼굴로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공연을 마친 일흔의 거장은 “무대에 오른 지적장애인과 같이 놀 수도 있었는데 음악회라서 그러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객석이 소란스럽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소리를 지르는 건 그 아이들의 표현”이라며 지적장애인들을 감쌌다.

탈권위적 자세, 친절과 매너, 무대에 난입한 지적장애인과 관객 양쪽 모두를 배려하는 아량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그를 더 빛나게 한 것은 ‘당연한 권리를 방해하는 간섭’에 대처하는 자세다. 온전히 자기 것인 무대 일부를 타인에게 내어주면서, ‘건반 위의 구도자’는 희생과 관용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보여주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 관한 추억 중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 강원 원주 섬강으로 온 가족이 피서를 갔다. 자갈밭에 텐트 치고 삼겹살과 라면 만찬을 즐기는 중이었다. 행색이 남루하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한 사내가 다가오더니 가족들이 앉은 돗자리에 진흙투성이 운동화를 신은 채 올라왔다. 땀 냄새와 온갖 악취가 진동했다.

어눌한 말투로 “배가 고프다”고 했다. 지적장애인으로 보였다. 모처럼의 가족 여행이 불청객에 의해 방해받는 상황, 손짓이나 험한 말로 쫓아낼 수도 있었을 텐데 아버지는 그를 자리에 앉히고 라면을 새로 끓여주었다. 한 개로는 부족하다며 두 개를 끓여서 고봉밥, 김치와 함께 내어주었다.

분식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고등학생 때 일이다. 낯선 주소로의 배달이라 한참 헤맸다. 도착한 곳은 쪽방촌, 어둠과 습기로 가득 찬 계단을 올라 단칸방 문을 두드렸다. 한눈에 보기에도 기력이 쇠약한 여자가 문을 열었고, 그녀 남편은 가래 기침을 뱉으며 비쩍 마른 몸을 이불에서 막 일으켰다. 곰팡이 냄새 진동하는 방바닥에 음식을 내려놓으며 나는 머리를 숙였다. 쫄면과 짬뽕라면이 불어터져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찾아오느라 고생했을 텐데,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 미안함과 고마움, 안쓰러움이 뒤섞인 얼굴로 눅눅한 계단을 내려왔다. 몇 시간 후 그릇을 찾으러 갔을 때, 나는 울었다. 깨끗하게 설거지 된 그릇이 계단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내 권리가 타인에 의해 방해받을 때, 완전하게 계획된 어떤 순간이 계획된 바 없는 우연한 간섭에 의해 헝클어질 때 백건우씨와 아버지, 가난한 쪽방 부부는 자신의 것 일부를 타인과 나눔으로써 불청객의 방해를 반가운 방문으로, 간섭을 뜻밖의 기쁨으로 바꿨다. 불편을 감수하는 희생, 약자에 대한 배려, 실수를 용서하는 관용은 더불어 삶을 가능하게 하고, 인간의 위엄은 거기서 비롯된다.

충격적인 일이다. 한 남성이 아파트 외벽 작업자의 휴대폰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며 옥상으로 올라가 밧줄을 끊어버렸다. 작업 밧줄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목숨과 다섯 자녀를 둔 가정의 행복이 매달린 생명줄을 끊은 것이다. 단지 시끄럽다는 이유로, 잠을 방해받는다는 이유로 저지른 극악무도한 미친 짓이다. 분노조절장애나 폭력성은 개인의 문제이지만, 내 권리가 간섭받을 때 한 발 양보하는 것에 인색한 사회 풍조를 돌아보게 된다.

약자에게는 희생을 강요하면서 정작 자신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기득권과 ‘갑’의 놀부 심보가 사회 전체에 암처럼 퍼져 있다. 강자에게 당당히 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 ‘을’과 약자에게는 내 것 일부를 양보해 함께 풍요로워지는 ‘너그러운 사회’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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