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점박이물범

2017.11.20 21:15 입력 2017.11.20 21:25 수정
김성호 | 서남대 의대 교수

백령도 점박이물범.  김성호 교수 제공

백령도 점박이물범. 김성호 교수 제공

관찰의 첫걸음은 다가섬입니다. 관찰의 대상이 자연에 깃들인 생명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저들이 내게 와주지 않으니 내가 저들에게 가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점박이물범을 만나러 백령도로 향하는 길입니다. 점박이물범은 상괭이 종류를 제외한 서해안 유일의 해양 포유류이며, 서해 바다를 상징하는 깃대종으로 천연기념물 제331호와 멸종위기야생동·식물Ⅱ급의 생명입니다.

[김성호의 자연에 길을 묻다]백령도 점박이물범

백령도는 따라붙는 수식어가 많습니다. 서해 최북단의 섬, 기암괴석이 장관인 서해의 해금강, 고대소설 심청전의 무대, 천안함 침몰 해역, 점박이물범 국내 최대의 서식지 등입니다. 백령도에서 몽금포타령으로 널리 알려진 장산곶은 10㎞ 남짓 떨어져 있습니다. 가까이 보일 정도의 거리입니다. 하지만 장산곶은 갈 수 없는 북녘이기에 백령도 땅을 밟으려면 인천에서 출발하여 230㎞의 먼 뱃길을 지나야 합니다.

서해와 남해의 뱃길은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남해의 뱃길은 어디를 가더라도 다도해를 지나기 때문에 크기와 모습이 다양한 예쁜 섬들을 만나게 됩니다.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그러나 백령도에 이르는 서해의 뱃길은 단순합니다. 뭍을 벗어나면 섬 하나 나타나지 않는 그야말로 망망대해입니다. 하지만 고생 끝에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백령도 뱃길은 꼭꼭 숨겨둔 보물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매력이 있습니다. 3시간 반가량의 덤덤한 시간이 지나면 그림같이 아름다운 소청도가 불쑥 나타납니다. 소청도가 아득히 멀어지는 것이 아쉬워 자꾸만 고개를 뒤로 돌리다 앞을 보면 이번에는 대청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대청도는 뱃길에 지친 나그네에게 이제 백령도가 멀지 않음을 알려주며 등이라도 토닥여주듯 온유한 느낌을 지닌 섬입니다. 대청도가 일러준 대로 얼마 지나지 않으면 범상치 않은 섬이 나타납니다.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선 섬, 백령도(白翎島)입니다. 백령도는 흰 깃(白翎)을 펴고 비상하는 따오기가 많아 붙여진 이름인데, 안타깝게도 따오기는 우리 땅에서 멸종했습니다.

배는 바닷물이 빠지며 물범바위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 출발합니다. 백령도 물범바위는 북방한계선(NLL) 바로 아래에 있기 때문에 현지의 어민조차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입니다. 미리 승인을 얻었지만 출입에 대한 몇 가지 절차를 더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배에 오릅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 때, 배의 속도가 갑자기 느려지더니 마침내 엔진이 꺼집니다. 무엇을 발견한 선장이 배를 멈춘 것입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점박이물범이 작은 무리를 이루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물범 종류는 호기심이 많은 편입니다. 누가 오는지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잠시 기다리니 한 친구는 배에 접근하여 어떤 사람인지 탐색까지 하고 갑니다. 귀엽고 사랑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배는 다시 물범바위를 향해 먼 바다로 나갑니다. 잠시 뒤, 선장은 다 왔다며 내릴 준비를 하라는데 내릴 곳이 보이지 않습니다. ‘설마 바다 가운데 살짝 고개를 든 바위인 저곳에 내리라는 말인가?’ 했는데 정말 그랬습니다. 접안도 쉽지 않은 곳입니다.

주변으로 점박이물범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고개만 내밀고 잠시 쳐다보고 있다가 다시 물속으로 숨어드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물이 빠지며 제일 먼저 드러나는 바위이니 저들의 휴식공간이 열린 것인데, 내가 먼저 차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떻게 모퉁이에라도 올라와 쉬고 싶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공간이 너무 좁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며 1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바위 꼭대기가 슬쩍 드러나자 그 주변으로 수십 마리의 점박이물범이 모여듭니다. 드러난 바위 꼭대기에 한 마리가 먼저 올라가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합니다. 무리의 우두머리입니다. 공간이 조금 더 생기자 또 하나가 올라갑니다. 그다음 서열입니다. 점박이물범 무리는 서열이 엄격합니다. 다시 물이 차올라 바위가 물속에 잠기기 시작하면 이번에는 서열이 낮은 순서부터 바위를 떠납니다.

바람이 매섭습니다. 백령도 점박이물범이 우리나라를 떠날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 친구들은 12월에 서해를 따라 올라가 발해만에서 겨울을 지낸 다음, 이듬해 4월에 다시 옵니다. 왕복 1600㎞의 여정을 반복하는 셈입니다. 발해만에서 겨울을 나는 까닭은 번식을 위해서입니다. 새끼를 낳아 키우는 일정은 유빙 위에서 이루어지는데, 발해만은 염도가 낮아 서해 중에서 유일하게 겨울에 얼어붙는 지역입니다. 또한 물범바위를 중심으로 하는 백령도 일대는 북방한계선의 인접 지역으로 사람의 접근이 통제될 뿐만 아니라 다시마밭이 발달하여 점박이물범의 주요 먹이인 조피볼락을 비롯한 어족자원이 풍부한 지역입니다. 이처럼 백령도 점박이물범은 발해만과 백령도를 번식지와 서식지로 공유하며 살아가는 생명입니다.

1940년대 8000, 1980년대 2000, 2002년 340, 2011년 246, 2017년 190. 백령도 점박이물범의 숫자입니다. 환경학자 일각에서 현재 지구는 6차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6500만년 전 공룡의 대멸종 이후로 가장 심각한 상황이 지금이며, 향후 50년 내에 현존 생물종의 30%에서 50%가 멸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습니다. 같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대멸종의 순서에서 인간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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