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마라토너 강명구의 꿈

2018.07.06 21:11 입력 2018.07.06 21:12 수정

무명의 마라토너가 서유럽에서 한반도까지 평화의 폭풍을 몰아오고 있다. 평화마라토너 강명구다. 작년 8월 그는 내게 “헤이그에서 출발해 판문점을 넘어서 오겠다. 내년 가을쯤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의 바람이 불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북한과 미국이 곧 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으르렁대는 이 판국에 과연 평화라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하고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9월1일 그가 네덜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세르비아, 터키를 달리고 중앙아시아로 진격할 즈음 신기하게도 한반도에 데탕트가 시작됐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고, 온 국민이 흥분을 가라앉힌 지금 적어도 이 땅의 평화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유와 성찰]평화마라토너 강명구의 꿈

현재 그는 스스로 기획한 1만6000㎞ 전 구간 중 1만㎞를 300일을 넘기며 주파하고 있다. 지금은 천산산맥 남로와 고비사막을 가로지르며 막고굴로 유명한 둔황으로 향하고 있다. 온갖 수난을 겪으며, 16개국 중 마지막 나라에 입국한 것이다. 이미 북미대륙 5200㎞를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단 유모차를 밀며 뛰었고, 작년 6월에는 제주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사드철회와 평화협정을 위한 평화마라톤’을 뛰었다. 실향민 아들인 그는 남하한 할머니와 아버지의 슬픔을 등에 지고 뛰고 있다. 그리고 유라시아에서 만나는 시민들과 동포들에게 한반도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평범한 이웃인 그는 왜 이런 극한의 방식으로 평화를 갈구하고 호소하는 것일까.

강명구는 혼자 달린다고 하지 않는다. 별과 바람과 달과 해와 세계의 평화를 원하는 모든 민중들과 함께 달린다고 한다. 또한 달리기로 세계 최고의 대서사시를 쓰는 전위 예술가가 되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뛰고 있는 구간을 살펴보니 실크로드와 거의 겹친다. 그 길은 동서문명이 넘나들던 길이다. 말과 낙타를 이끌고 동서를 횡단하며 양대 문명을 소통시킨 그 길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국지적으로 보지 않고, 인류 문명의 대화와 소통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의 파란 셔츠에는 한반도 지도와 ‘평화통일’이라는 말이 다양한 언어로 써져 있다. 신앙이 되어버린 마라톤에서 그는 대자연과 우주를 향한 자유와 해방을 맛보며, 자신도 놀라울 정도로 평화와 통일운동가로 변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달리면서 유라시아의 역사와 문화 속에 깃든 국가와 권력의 무상함, 영토 야욕과 전쟁의 비참함, 민중들의 노예 같은 삶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비판적 성찰을 하고 있다. 이 평화마라톤을 자신의 몸이 음표가 되어 고통과 환희의 음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사람들의 가슴속에 깃든 사랑의 열정과 평화의 염원을 모아 연주하는 신세계 교향곡에 비유한다. 고통과 즐거움, 불확실과 확실성, 보수와 진보를 인류의 가치 속에 화해시킨다고 한다. 때로는 곳곳의 전설과 동화가 같은 몸에 다양한 옷을 입은 것으로 보고, 그 전파 과정에서 인류가 서로 공유하며 꿈꾸어온 내면의 평화를 발견한다. 때로는 인류가 오래전부터 여권과 비자 없이도 자유롭게 터를 잡고 살았던 거주이전의 자유인 천부인권에 대한 향수를 낯선 사람을 환대하는 모습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평화의 한류 전도사를 자처하는 그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으로 앞만 보고 달리는 톰 행크스의 얼굴 같아 보이기도 하고, 애마 로시난테를 타고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돈키호테의 모습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땅의 고뇌를 짊어지고 뛰는 엄연한 한국인의 표정이다. 조부모·부모 세대가 해결하지 못해 대물림된 분단의 현실을, 하늘과 땅과 세계인들의 힘을 모아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뛰고 있다. 어쩌면 그는 개미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꿈을 대신 꾸고 있는 것이리라. 우리도 뛰고 싶다. 분단의 모순으로 상처받은 온몸의 아픔을 딛고, 일제강점기 손기정이 분노를 에너지 삼아 눈물 흘리며 뛰었듯이 전 세계를 향해 뛰고 싶다.

그는 마케도니아군, 로마군, 고트족, 훈족, 몽골군, 그리고 오스만 튀르크군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위해 달렸을 불가리아의 대로를 뛰며, 한편으로는 예수의 제자들이 평화의 복음을 전파하고 다녔듯이 여행객과 장사꾼들과 이민자들이 언제나 자유롭게 오가는 평화의 길이 되길 기도한다. 그리고 실크로드를 통해 다양한 보물이 오갔지만 가장 큰 보물은 평화라고 한다. 지금 달리는 길은 불법의 유통로다. 신심 깊은 불교인들은 한 걸음 건너 해골을 밟고 인도에서 불타의 경전을 구해왔다. 목숨을 건 구법행은 오직 인간의 마음에 평화를 심기 위해서였다. 강명구는 길 위에서 한반도의 평화라는 구도행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판문점을 넘는 순간, 그의 꿈은 우리 모두의 현실이 되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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