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불씨된 나철의 순교

2018.08.03 20:38 입력 2018.08.03 20:41 수정

해마다 이맘때면 생각할수록 가슴이 저려오는 한 인물이 있다. 홍암 나철이다. 나라 잃은 비분강개의 심정으로 민족해방의 구심점을 삼기 위해 자결한 이분의 고결한 정신에 나는 얼마나 은혜를 갚고 있는가. 우리는 이웃의 작은 은혜에 대해서는 잊지 않으면서도 영육의 안식처인 이 나라가 남의 나라 식민지가 되어 영원히 지도에서 없어질 뻔한 통한의 시대에 온몸을 바친 열사들의 큰 은혜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노예로 전락해도 노예인지조차 모른다.

[사유와 성찰]독립운동 불씨된 나철의 순교

나철은 1916년 8월15일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 자결했다. 기록에 의하면 수행에 의한 폐기법(閉氣法), 문자 그대로 스스로 숨을 거둔 것이다. 그는 유서에서 세 가지 이유를 밝혔다. 첫째, 자신은 죄가 무겁고 덕이 없어 능히 하느님의 큰 도를 빛내지 못하며, 한겨레가 망함을 건지지 못하고 도리어 업신여김을 받으므로 한 목숨을 끊음은 대종교를 위하여 죽는 것이다. 둘째, 자신은 대종교를 계승한 지 8년 동안 감응을 얻고 원하는 대로 하느님의 사랑과 도움을 입어서 장차 뭇사람을 구원할 것 같더니 마침내 정성이 적어 거룩하신 은혜를 만에 하나도 갚지 못하므로 이제 한 목숨을 끊음은 하느님을 위하여 죽는 것이다. 셋째, 자신은 이제 온 천하동포가 참됨의 길을 잃고 잘못된 길에 떨어져서 고통과 어둠에 헤매므로 이들의 죄를 대신 받기 위해 한 목숨을 끊음은 천하를 위하여 죽는 것이다.

예수가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것과 다름이 없다. 그의 사후 수많은 순교자가 나오고 마침내 로마를 정복했듯이 나철의 사후 수많은 애국지사가 나와 마침내 광복을 맞이하게 됐다. 나철은 대종교와 하느님과 인류를 위해 순교했다. 나철과 대종교의 뜻을 따른 일제 치하의 우국지사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주시경·지석영 등의 한글운동은 물론, 박은식·신채호 등의 민족주의 사학, 이동녕·조소앙 등의 사상투쟁, 중광단·북로군정서·신민부 등의 무력투쟁, 상해임시정부의 태동과 활동 배경에는 단군과 대종교의 정신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총체적인 항일운동에 다름이 아니다. 최남선은 <조선독립운동사>에서 나철의 순교를 민족의 해방 전선에 정신적 통일을 가져온 육신제(肉身祭)로 표현한다.

그가 순교한 삼성사는 옛날부터 환인·환웅·단군을 모신 사당이다. 대종교는 이들 삼신을 모시는 한민족 전래의 종교다. 불교·유교·기독교가 들어오기 아득한 세월 전에 이 땅 민중의 심성에 뿌리박힌 고유의 종교인 것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도로써 다스린다는 홍익인간·이화세계는 이 종교의 정신세계를 말한다. 개천절이며 예전에는 신문에도 표기했던 단기(檀紀)는 단군이 즉위한 해를 기원으로 한다.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서 과거에 급제한 인물인 나철은 비밀단체인 유신회를 통해 구국운동은 물론 을사늑약 체결 직전 일본에 건너가 동양 평화를 위해 한·일·청 삼국이 친선동맹을 맺고 한국에는 선린의 교분으로써 도울 것을 요청하는 내용을 일본 정객들에게 보내고 단식투쟁을 했다. 귀국 후 을사오적 암살 계획으로 체포되어 10년 유배형을 받았다. 고종의 특사로 풀려나고, 1909년 서울 재동에서 단군의 신위를 모시고 제천의식을 올린 뒤에 ‘단군교 포명서’를 공표했다. 그리고 이름을 대종교라고 바꾸었다. 환인·환웅·단군의 삼신을 조화·교화·치화의 역할을 하는 삼위일체로 하는 <신리대전>을 발행하였다. 1915년에 일제가 포교규칙 등으로 대종교를 비롯한 민족종교에 대한 불법화를 시도하자 다음해에 조천(朝天)했다.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는 평소에 ‘국망도존(國亡道存·나라는 망했어도 정신은 존재한다)’과 ‘이신대명(以身代命·나의 목숨으로 남의 목숨을 대신한다)’을 국난극복을 위한 살신성인의 대의로 삼았다. 나철 사후 대종교는 철저한 비밀결사로 움직였다. 만주에서는 대종교에 30만명이나 몰려들었다. 대종교는 무엇보다도 일제의 국가종교인 신도에 대항, 그 근원이 오히려 이 민족에게 있다는 자부심을 비롯해 민족혼의 맥을 잇기 위해 국교·국어·국사를 확립했다. 박은식과 신채호가 찾던 국혼(國魂)과 국수(國粹)가 대종교다.

살아 있을 때보다 죽어서 이름의 가치가 높아지고, 산 자들의 가슴에 더욱 뜨겁게 살아 있는 자를 불멸의 존재라고 한다. 나철이 그렇다. 백범 김구는 해방 후에 “배달민족으로서 대종교인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광복 이후 이 민족의 정기가 무너지고, 백성의 고통이 하늘을 찌를 때, 몸을 던짐으로써 항거했던 수많은 애민과 애국지사들은 감히 말하건대, 나철의 혼을 계승한 이들에 다름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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