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마저 오싹하게 만든 비극

2018.07.20 20:56
성원 스님 신제주불교대학 원장

폭염이 일상의 모든 대화 주제를 삼켜버린 듯합니다. 정말 이번 여름은 시작부터 더위의 기세가 너무나 당당해서 넋을 놓아버릴 지경인 것 같습니다.

[사유와 성찰]폭염마저 오싹하게 만든 비극

어제 1학기 마지막 수업을 마치면서 학생들에게 겨울이 좋은지 여름이 좋은지를 물었더니 답변 내용이 반반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추위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많았던 것 같은데 약간 의아했습니다. 저를 두고 여름을 좋아할 것 같은지 겨울을 좋아할 것 같은지를 물으니 겨울을 좋아할 거라고 답하는 이들이 월등히 많았습니다. 평소 열을 잘 받으니 그 모습을 보고 시원한 겨울에 열을 잘 식히라고 질타하는 것 같아 웃었습니다. 실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대해 좋거나 좋지 않은 호불호의 감정을 가지는 것은 자신이 처한 시간적·공간적 현실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말미에 한파가 몰아치는 한겨울에는 여름이 좋고 찜통 속 같은 열대야를 겪을 때는 겨울이 좋다고 하니 모두 웃었습니다.

최근 이 찜통 같은 무더위조차 오싹하게 느껴질 정도로 참담한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경기 동두천에서는 어른들의 부주의에 의해 4세 아이가 이 무더운 날씨에 어린이집 통학차량 속에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되었다가 숨지고 말았습니다. 잇따라 서울에서는 보육교사가 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후 11개월 된 영아를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두 사건은 비단 저뿐만 아니라 모든 어른들의 마음을 한없이 움츠러들게 합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큰 죄를 지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을 넘어 복지국가로 급속히 변화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동양육시설, 어린이집, 노인요양시설, 장애인복지시설 등 각종 복지시설의 현장에서는 많은 모순들이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두 사건에서 보듯 학대가 일어나거나 어른의 부주의에 의한 참혹한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복지활동의 순수성이 너무나 훼손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왜 이러한 일들이 2018년 대한민국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어쩌면 그것은 복지시설을 운영하겠다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그러한 일을 영리를 목적으로 한 사업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접근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일반인들이 복지사업을 한다는 사람들을 사회봉사자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 때문일 겁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복지현장에는 여전히 건강한 생각을 지닌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그런 젊은이들을 현장에서 목격하며 놀랄 때가 많습니다. 제가 그들 나이 때는 마음과 몸을 써서 타인에게 헌신한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영업적 마인드로 복지사업이 심하게 왜곡되어가는 현장에서도 이들 젊은이가 바른 태도로 종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우리의 미래가 그렇게 암울하지만은 않다는 위안과 함께 청량감을 줍니다. 이 젊은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의 모습으로 남으려면 복지시설을 운영하거나 경영하는 사람들의 바른 자세와 책임감, 사명감이 참으로 절실히 요구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령은 복지가 순수케어가 아니라 일종의 배당 영업의 개념으로 운영되겠끔 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노인요양시설이든, 아동양육시설이든, 어린이집이든, 장애인복지시설이든 복지사업에 종사하는 분들도 영업적인 생각을 바탕에 두지 않고는 그 일을 지속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 결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지금 발생한 사건을 직면하고는 당장 관리 소홀을 지적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이러한 일이 두번 다시 발생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비슷한 사건을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도 숱하게 겪었습니다. 2016년 광주에서 일어난, 폭염 속에서 어린이집 통학차량 안에 오랜 시간 방치됐던 아이는 지금까지도 의식불명 상태라고 합니다. 그때도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아야 한다며 정부와 전문가들이 나서서 각종 대책을 이야기하며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도 못해,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어서는 안됩니다. 돌아올 수 없는 아이들 생각에 호흡이 멎을 듯한 현실을 우리들이 어떻게 다시 딛고 일어나야 할지 먹먹하기만 합니다. 지혜를 모으고 모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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