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받는 과학자와 미래사회

2018.08.15 20:46 입력 2018.08.15 20:53 수정
최형섭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서울과기대 교수

[미래 오디세이]신뢰받는 과학자와 미래사회

1986년 2월11일 오전 10시, 워싱턴 미국과학아카데미 강당에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사고에 대한 대통령위원회(로저스위원회)’ 청문회가 열렸다. 당일 소환된 증인은 미 항공우주국(NASA) 매니저 로런스 멀로이였다. 그는 폭발이 시작된 부위로 지목된 고체 로켓부스터(SRB)를 담당했다. 멀로이는 우선 SRB가 어떻게 구성되고 조립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설명했고, 이어 여러 위원들이 질문을 던졌다. 멀로이의 증언 순서가 끝나갈 무렵 한 위원이 발언을 요청했다. 칼텍 물리학과 교수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이었다.

[미래 오디세이]신뢰받는 과학자와 미래사회

윌리엄 로저스 위원장의 허락을 받은 파인만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미리 준비한 얼음물이 담긴 컵을 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결 부위를 밀폐하기 위한 고무 실을 얼음물에 넣었습니다. 여기에 압력을 가했다가 제거했을 때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다시 말하면 이 소재는 0도일 때, 적어도 몇 초 이상 동안 회복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현상이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중요한 함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발사 당일의 낮은 온도 때문에 ‘오링(O-ring)’이라고 알려진 고무 실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고, 그것이 챌린저호 사고로 이어졌다는 지적이었다.

저명한 노물리학자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고 원인을 설명하는 장면은 미국 전역으로 방송돼 대중의 뇌리에 각인됐다. 같은 해 6월에 발간된 로저스위원회 보고서는 1월28일 챌린저호 사고의 원인은 SRB의 연결 부위를 밀폐하는 ‘오링’이 저온상태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부스터 내부의 고온고압의 기체가 새어나오면서 폭발에 이르게 됐다고 결론내렸다. 나아가 파인만은 NASA 직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엔지니어와 매니저의 위험 인식에 큰 격차가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줬다. 이 결과는 ‘우주왕복선의 신뢰성에 대한 개인적 관찰’이라는 제목으로 로저스위원회 보고서 부록F로 수록되었다. 파인만은 위원회 활동이 끝나고 2년 후 지방육종이라는 희귀암 진단을 받고 사망했다.

2018년 8월6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저동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 회의실에서 선조위 활동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창준 위원장은 6명의 위원들이 의견 조율에 실패해 두 개의 결론을 담은 종합보고서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의견은 선체 자체의 문제를 강조한 ‘내인설’과 외력의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열린 안’으로 갈려 팽팽하게 맞섰다. 내인설은 기기 결함으로 인한 급선회와 그 이후 발생한 화물 이동으로 복원성이 불량한 세월호가 과도하게 기울었다고 설명했다. 열린 안은 세월호의 복원성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았고, 기기 결함을 사고 원인으로 보기에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으며, 화물 이동 역시 사고원인이라기보다는 급선회의 결과로 보는 입장이었다. 선조위는 복원력 계산, 선박의 항적 데이터에 대한 보정, 시뮬레이션 결과에 대한 해석 등 기술적 문제를 둘러싼 이견을 결국 넘어서지 못했다.

동등한 위상을 가진 두 개의 결론을 담은 종합보고서는 세계 재난보고서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로저스위원회라고 내부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로저스 위원장은 파인만이 ‘골칫거리(pain)’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고, 일부 위원들은 NASA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세월호 사건이 챌린저호 사건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라고 보기도 어렵다. 뒤늦게나마 선체 인양을 통해 배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었던 세월호와는 달리, 챌린저호가 남긴 물리적 증거는 공중폭발 후 땅으로 떨어진 잔해뿐이었다. 두 위원회의 차이는 대형 재난을 조사하기 위한 특별위원회의 목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차이를 반영한다. 여러 제약하에서 진행된 잠정적 조사결과를 일단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의심이 가는 지점들이 충분히 만족스럽게 확인되기 전까지 판단을 유보할지에 대한 입장의 차이다.

둘 중 어느 한쪽이 반드시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사고원인을 규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재발방지를 위한 각종 대책을 만들어낸다는 재난조사위원회의 목적을 상기해볼 때, 두 개의 결론으로 마무리된 선조위 활동은 아쉬움이 남는다. 재난보고서는 미래사회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준거점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세월호 참사의 원인규명은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로 넘어갔고, 명쾌한 기준을 바탕으로 대책을 마련하는 일 역시 그 최종결과가 나온 이후로 미뤄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파인만처럼 폭넓은 신뢰를 받는 과학자의 존재가 아쉽다. 파인만이 TV화면에 등장해 ‘오링’의 회복력과 기온의 관계를 설명했을 때, 그 장면을 지켜보던 수많은 시청자들은 궁금증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을지 모른다. 조사 개시 첫 주에 나온 파인만의 발언은 이후 몇 달 동안 진행된 조사활동으로 검증됐다. 하지만 1986년 1월28일 사고 당일 챌린저호 SRB에서 정말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100%의 확신을 갖고 재현해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파인만에 대한 신뢰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가 20대 대학원생 신분으로 원자폭탄프로젝트에 참여하고, 1965년에 노벨상을 받은 천재 이론물리학자라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을까. 그가 NASA의 이해관계와는 무관한 독립된 지식인이라는 요인이 중요했을까. 한국사회가 신뢰받는 과학자 집단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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