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라는 ‘을’

2018.09.14 20:48 입력 2018.09.14 20:54 수정

10여년 전 나는 호주의 한 뷔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가난한 워홀러였다. 새로운 경험을 쌓으러 떠났으니 다양한 모험을 해보고 싶으면서도 도시에서 얻은 이 깃털보다도 가벼운 일자리마저 놓기가 두려워 더 큰 도전은 망설이던 상황이었다. 그 모든 고민에는 돈이 중심이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진 뜨내기 동양인을 고용하는 곳은 정말 드물었고 당시 식당에서 받은 주급으로 집세와 공과금을 비롯해 한 주 살림을 살고 나면 보통은 2달러, 정말 아껴서 잘 살았다 싶은 주에는 5달러 정도를 저금했다. 이 푼돈을 모으며 언젠가 저기 유명한 관광지에 가봐야지 혹은 저곳에서 액티비티를 해봐야지 하고 애꿎은 가이드북만 닳아서 찢어질 때까지 들여다보곤 했다.

[시선]청춘이라는 ‘을’

그러던 어느날 일본인 친구가 자기가 있는 리조트로 빨리 와서 면접을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친구는 거기가 얼마나 고급 리조트이며 경치가 예쁜지를 말했고 일정 기간을 채워서 일을 하면 앞으로 그 리조트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유혹까지 곁들여 함께 일하자고 졸라댔다. 최고의 체인리조트, 마음 맞는 친구를 다시 만날 기회, 새로운 일 경험 이 모든 것이 나를 설레게 했지만 결국 떠나지 못했다. 내가 있던 브리즈번에서 리조트까지는 1000㎞가 넘었다. 면접을 보려면 찾아오라는데 어떤 교통수단을 생각해봐도 왕복 여행 비용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기회를 날려버렸지만 아주 오랫동안 마음이 헛헛했다. 내가 가보았다면 어땠을까. 혹시 붙었을까. 적성에 맞았을까. 나도 오래오래 일해서 그 리조트를 공짜로 이용할 기회를 얻었을까. 한국에는 돌아왔을까 하는 괜한 상상을 끝없이 펼치곤 했다.

호주에서 돌아온 그해 나는 대학졸업반이었다. 본격적으로 구직 활동을 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이력서를 새로 쓰고 적성검사와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리고 보통은 떨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메일로, 문자로 불합격을 통보받다 보니 사회의 잉여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불합격과 탈락이 반복되면서 위염과 식도염을 앓았고 스트레스로 얼굴이 돌아갔다. 한의원에 누워 침을 맞는 동안 서러움이 밀려와 한참이나 눈물을 쏟기도 했다. 불합격이란 말이 꼭 ‘너는 별로 필요하지 않은 존재야’라는 뜻인 것만 같아 매번 들어도 들어도 새롭게 마음이 아팠다. 그러다 가끔은 면접비를 주는 회사를 만나면 하얀 봉투에 들어있는 몇 만원이 그렇게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그저 얼마간의 돈이 생겼다는 즐거움이 아니라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곳이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나는 원래 귀한 존재이고 내가 투자한 시간 역시 허튼 것이 아니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 상처받은 마음에 새살이 돋았다.

얼마전 모 영화사에서 지원자들에게 오디션 참여비용을 요구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영화감독은 그 돈이야 김밥과 주스를 사는 데 다 썼고, 사정상 낼 수 없다고 하는 사람에겐 받지 않았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영화에 출연할 기회를 얻으려 기꺼이 시간을 내고 어쩌면 합격을 위해 옷을 새로 사 입거나 헤어와 메이크업에도 돈을 썼을 그 무명배우들의 간절함은 김밥값보다도 작게 보였나 보다. 100명이 넘는 지망생을 한데 모아놓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만든 대가를 고작 그만큼도 치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맞다. 감독의 설명대로 좋은 배우를 많이 발굴하기 위해 오디션을 진행한 것이라면 당연히 그 비용도 감당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럴 비용이 없다면 그냥 힘 닿는 선에서 아는 사람을 배우로 써야 한다. 류승범이란 배우가 탄생했던 것처럼. 사람을 모아놓으면 돈이 들어가는데 나는 요만큼도 손해보고 싶지 않으니 그 비용마저 청춘의 을에게 넘기자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 거두시라. 어떤 훌륭한 작업도 인간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예술로 마무리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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